영화 · 2025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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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지 않을 때 우는 척이라도 한다
고백부터 하겠다. 나는 남이 우는 자리에서 잘 울지 못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슬픔보다 먼저 배가 고프고, 그게 들킬까 봐 고개를 남들보다 더 깊이 숙인다. 네 문장 안에 끝내기로 했으니 하나만 더 보태면, 그 연기를 꽤 잘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뫼르소를 보는 게 좀 그랬다. 저 사람은 연기를 안 한다.
1930년대 알제리, 흑백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은 젊은 사무원이 양로원으로 간다. 관 앞에서 울지 않는다. 어머니 얼굴을 보지 않고, 대신 커피를 마신다. 다음 날에는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고,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와 코미디 영화를 본다.
이 네 가지가 나중에 법정에서 전부 죄목이 된다. 검사는 그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보다 왜 울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왜 커피를 마셨는지, 왜 다음 날 극장에 갔는지. 살인 재판이 어느새 장례 예절 재판이 되어 있다. 내가 그 법정에 앉았다면 유죄다. 배고팠던 것까지 들췼을 테니까.
여기서 얄미웠던 건 뫼르소가 아니라 뫼르소를 맡은 배우다. 두 시간 동안 얼굴에 거의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비어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내 눈에는 안 우는 얼굴과 못 우는 얼굴과 울 이유를 모르는 얼굴이 다 다르게 보였는데, 눈썹 하나 안 움직이고 그 셋을 오간다. 나는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데. 부럽고, 부러워서 얄밉다.
영화는 중반까지 그의 속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없다. 카메라가 그의 눈이 되어 보는 것만 보여 준다. 속말이 목소리로 들어오는 건 후반, 감옥에 간 뒤부터다. 그러니까 전반의 관객은 검사와 같은 처지다. 저 사람이 뭘 느끼는지 겉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나는 판단했다. 아무것도 안 느끼는 사람이라고. 후반에 목소리가 들어오고 나서 좀 창피했다.
그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다면 더위다. 흑백인데 덥다. 햇빛이 화면을 하얗게 날려 버릴 만큼 세고, 영화는 그 빛을 예쁘게 찍지 않는다. 사람 말에는 꿈쩍 안 하는 사람이 햇빛에는 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그는 아무것도 안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느끼는 것의 종류가 남들과 다른 사람이었다는 게 내 풀이다. 그걸 알아보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느린 건지 영화가 그렇게 짜 놓은 건지는, 아마 후자일 것이다.
두 번째 행동은 재판에서다. 그는 자기를 변호할 기회를 받는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적당한 말을 하면 된다. 후회한다, 그날 정신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는 하지 않는다. 살인에 관해 무엇을 느끼느냐는 물음에는 일종의 권태 같은 것이었다고 답한다. 경찰에게는 재판이란 걸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다고 말한다. 자기 목이 걸린 재판을 구경 온 사람처럼.
그가 나와 다르게 한 것은 이거다.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는 척하지 않았다. 그 대가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나는 느끼는 척을 하고 그 대가로 아무 일도 없다. 어느 쪽이 더 못났는지 영화 보는 동안 계산을 해 봤는데, 답이 내 쪽으로 기울어서 중간에 그만뒀다.
다시 고백. 영화가 끝나고 내 장례식장 연기를 돌아봤다. 고개 숙이기, 손 모으기, 유족 앞에서 숨 고르기. 다 거짓말은 아니다. 슬프긴 하다. 그런데 슬픔의 크기보다 연기의 크기가 늘 조금 크다. 그 조금이 뫼르소에게는 없다. 그래서 그는 죽고 나는 산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걸 흑백으로 두 시간 보고 나오니, 바깥 햇빛이 좀 뻔뻔해 보였다.
투덜댈 것도 있다. 후반이 길다. 재판과 감옥이 이어지면서 전반에 없던 말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말 없던 전반이 그리워진다. 흑백도 가끔은 너무 곱다. 더러운 이야기를 너무 깨끗한 화면으로 본다는 느낌이 한두 번 들었다. 그래도 그 고운 화면 속 얼굴이 두 시간 내내 아무것도 안 하는데 눈을 뗄 수 없었으니, 투덜은 여기까지다.
영화는 피해자에게 이름을 준다. 원작에 없던 이름이다. 뫼르소의 무표정만 두 시간 보다가 마지막에 그 이름을 보면, 이 영화가 누구 얘기였는지 한 번 헷갈린다. 그 얘기는 따로 길게 할 수 있지만 오늘은 내 못난 얘기를 하러 왔으니 여기까지만.
아무튼 이방인을 봤다. 투덜댔지만 졌다. 뫼르소, 당신처럼은 못 살겠지만, 다음 장례식장에서는 고개를 조금만 덜 숙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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