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나의 사적인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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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환 생각을 안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화환 생각만 했다. 낭독회 자리에서 노시인의 머리에 얹히는 그 화환 말이다. 화면에 그게 등장한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저건 누가 샀지, 저건 어디서 샀지, 저건 집에 어떻게 가져가지' 하고 떠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영화의 대사가 반쯤은 귀에 안 들어왔다. 예술이 어쩌고 명성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나는 혼자서 꽃값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다 화환 때문이다.
영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주인공 에드 색스버거는 뉴욕의 우체국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해 온 사람이고, 사십 년쯤 전에 시집 한 권을 낸 적이 있다. 제목은 「너무 지난 길」. 그 뒤로는 시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이어스라는 청년이 집으로 찾아와서는 그 시집을 아주 좋아한다고, 자기네 모임에 와 달라고 한다. 모임 이름은 열의의 사회. 이름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지 않나.
우체국 안쪽을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편지 분류 선반이 벽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종이 상자가 쌓여 있고, 그 틈의 낮은 스툴에 에드가 앉아 무언가를 읽는다. 목에는 신분증이 걸려 있고 옆에는 종이컵이 하나 놓여 있다. 나는 이 그림을 한참 봤다. 하루 여덟 시간을 남의 글씨를 분류하면서 보낸 사람의 자리가 저렇게 생겼구나 싶어서다. 세상에서 글자를 가장 많이 만지는 직업인데 그 글자가 전부 남의 것이라는 점이, 조금 이상하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이 소동의 시작은 청년 하나가 남의 집 문을 두드린 일이다. 사십 년 전에 나온 시집을 어디선가 구해 읽고, 주소를 알아내고, 찾아가서, 당신 시가 좋다고 말한 것. 그 행동 자체는 사실 굉장히 다정하다. (나도 예전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다가 세 번째 줄에서 접은 적이 있다. 그러니 문 앞까지 간 사람은 일단 대단하다.) 이 영화가 얄궂은 건, 그 다정한 행동의 속을 열어 보면 꼭 다정만 들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써먹고 싶은 마음은 생각보다 자주 한 봉투에 들어 있다.
모임 사람들은 극작가고 시인이고 배우고 평론가다. 집도 넉넉하다. 옛날 예술은 대단하다고 하고 요즘 대중문화는 못 봐 주겠다고 한다. 나는 이런 조합을 보면 일단 긴장한다. (고등학교 때 교실 뒤쪽에서 자기들끼리만 아는 밴드 이야기를 하던 애들이 떠올라서다. 나는 그 밴드를 몰랐고, 모른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 에드를 대하는 태도에는 뭔가 이상한 공기가 있다. 다정한데 다정하지 않다. 정확히는 다정의 모양만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백 년도 더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쓰인 소설에서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는 또 한 번 멈췄다. 그러니까 백 년 전 빈에도 이런 모임이 있었다는 뜻이다. 옛날 예술을 찬양하고 요즘 것들은 못 봐 주겠다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의 거실이, 그때도 어딘가에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기도 하고 조금 아득하기도 했다. 젊음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리메이크된다.
그 공기의 정체를 알려 준 게 호칭이다. 단골 술집의 오랜 친구들은 그를 그냥 '에드'라고 부른다. 에드, 여기 앉아. 에드, 뭐 마실래. 그런데 모임 사람들은 꼭 '색스버거'라고 부른다. 성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잠깐 멈췄다. 성으로 부르기란 존경을 입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고, 동시에 그 사람을 사람 말고 다른 무엇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름 대신 성을 받는 순간 에드는 사람이 아니라 항목이 된다. 존경계의 프리사이즈 같은 호칭이랄까.
에드가 변해 가는 과정도 눈에 밟혔다. 처음에는 칭찬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몸이 자꾸 의자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 조금씩 들뜨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굴기 시작한다. 가장 아픈 건 그다음이다. 오래된 친구들을 전과 다르게 대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화환보다 친구들 쪽이 더 걱정됐다. 사십 년을 그냥 에드라고 불러 온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성으로 불리는 사람이 된 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낭독회 준비가 시작된다. 새 시를 써야 하는데 에드는 쓰지 못한다. 사십 년 동안 안 하던 일을 몇 주 만에 하라는 것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한데, 본인은 그게 당연하지 않은 모양이다. 낭독회 전날 그는 결국 시를 쓰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청년들의 온도가 훅 내려간다. 나는 이 장면에서 화환 걱정을 했다. 이미 주문했을 텐데 어쩌지. 환불이 될까. (영화에 화환 환불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거의 봤다.)
여기서 글로리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모임의 유일한 여자이고 배우인 사람. 다른 멤버들은 이 언니를 은근히 아랫사람처럼 대하는데, 정작 이 영화에서 남 앞에 서서 자기 예술을 꺼내 보이는 사람은 글로리아뿐이다. 작은 바에서 들뜬 채로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 무대에서는 혼자 길게 독백을 한다. 다들 예술에 대해 말할 때 혼자 예술을 한다. 나는 이 설계가 좀 얄궂으면서도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글로리아가 쓰고 나오는 모자 이야기도 해야겠다. 챙이 둥글게 내려오는 검은 모자에 깃털이 꽂혀 있다. 그걸 쓰고 길에서 에드와 마주 서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모자 하나로 이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가 다 설명된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무대 위에 있고 싶은 사람. 배우를 연기한 배우가 모자까지 연기하게 만든 셈이다. 깃털 각도가 정말 조금 과한데, 그 조금이 정확하다.
낭독회는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다. 새 시가 없으니 에드는 옛날 시를 읽는다. 사십 년 전의 자기 목소리를 사십 년 뒤의 입으로 다시 읽는 일이 어떤 기분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화환이 등장한다. 축하의 물건이고, 존경의 물건이고, 솔직히 말하면 치우기 곤란한 물건이다. 나는 그게 에드의 머리 위에 얹히는 순간 기어이 웃어 버렸다. 저 사람 저거 쓰고 지하철 타야 하는데.
그다음에 영화가 조용히 칼을 꺼낸다. 그 모임 사람들 대부분이 에드의 시집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 줄도 안 읽었다. 읽지도 않은 책을 사십 년 만에 발굴해 내고, 재발견된 천재라고 부르고, 화환까지 주문한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화를 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잠깐 헷갈렸다. 결국 둘 다 했다. 웃으면서 좀 화가 났다.
참고로 이 영화는 아흔여섯 분짜리다. 요즘 기준으로는 짧은 편인데, 보고 나면 계절 하나가 지나간 것 같다. 사건이 크게 터지지 않고 모임이 생겼다가 식는 일만 일어나는데도 그렇다. 감독이 원래 영화에 대해 글을 쓰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면 조금 납득이 간다. 남의 작품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 만든 영화라서인지, 누군가를 추앙했다가 식는 마음의 온도 변화가 지나치게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영화가 그 사람들을 혼내지는 않는다. 그게 이 영화의 제일 이상한 점이자 제일 좋은 점이다. 청년들은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꿈에 바빴을 뿐이고, 에드도 그 꿈에 잠깐 같이 탔을 뿐이다. 다들 각자의 환상을 안고 스쳐 지나간다. 누가 누구를 속였다기보다, 아무도 상대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로 몇 달이 지나간 쪽에 가깝다.
마지막에 에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우체국이 있고, 오래된 친구가 있고, 귀에는 펜이 꽂혀 있는 자리. 공식적으로 시인인 사람은 더 이상 아니다. 그런데 친구와 둘이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무대도 없고 화환도 없고 성으로 불러 주는 사람도 없다.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울 장면이 아닌 것 같은데 울었다.
그리고 화환이 돌아온다. 영화 끝에 가서 그 화환은 에드의 머리에서 다른 사람 머리로 옮겨 간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비로소 내가 왜 한 시간 반 내내 화환만 쳐다봤는지 알았다. 화환은 머리 크기를 따지지 않는다. 누구 머리에나 얹히고, 아무 머리에서나 내려온다. 그 물건이 잠깐 당신 위에 있었다는 사실이 당신에 대해 말해 주는 건 거의 없다. 사십 년 전에 쓴 시가 당신에 대해 말해 주는 것보다 훨씬 적다. 에드가 그걸 미련 없이 넘기는 손짓을 보면서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저 사람은 저걸 쓰고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나는 책장 맨 아래 칸을 뒤졌다. 거기에 고등학교 때 쓰다 만 공책이 하나 있다. 표지에 제목까지 적어 놨던 것 같은데 뭐라고 적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 두기는 했다. 아직 펴 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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