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14
트루 디텍티브 시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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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한 명으로 끝났다」는 불만에 되묻는다
이 드라마의 결말을 두고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둘이다. 하나, 여덟 회 내내 거대한 어둠을 암시해 놓고 결국 범인 한 명을 죽이고 끝났다. 목사와 보안관 집안, 학교와 교회 조직은 배경으로 흘려보냈다. 둘, 허무를 설교하던 러스트 콜이 마지막 몇 분에 갑자기 빛을 말한다. 급하다. 미국 평자도, 한국 게시판도 대체로 이 두 줄 안에서 아쉬움을 적었다. 수사물로 보면 보상이 빈약하다는 평이 있었고, 다 끝나고 보니 우리가 너무 깊이 읽었다는 자조도 있었다.
통념은 성실하다. 여덟 회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아쉬움을 안다.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다르게 보았다.
먼저 이 드라마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부터 되묻고 싶다. 이 드라마는 1995년의 수사를 2012년의 심문실을 거쳐 보여 준다. 두 형사가 따로 불려 와 17년 전 일을 말하고, 우리가 보는 1995년은 대부분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누가 죽였나」가 아니라 「두 사람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보지 못했나」를 다루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범인의 정체는 그 질문의 재료일 뿐이다.
그 증거가 5회에 있다. 두 사람은 숲 속에서 레지 르두의 은신처를 찾아낸다. 러스트가 르두를 제압한 사이 마티가 트레일러에서 갇힌 아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티는 붙잡힌 르두를 쏜다. 르두가 「카르코사」를 입에 올린 직후였다. 두 사람은 현장을 꾸민다. 총격전이 있었던 것으로, 정당방위였던 것으로. 그 거짓으로 마티는 승진하고 러스트는 표창을 받는다. 가정도 잠시 좋아진다.
이 장면을 다시 보자. 거대한 어둠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은 것은 범인이 교활해서가 아니다.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인공이 직접 닫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로 상을 받았다. 12년 뒤 술집에서 러스트가 마티에게 하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르두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네가 죽였으니 너는 내게 빚이 있다고. 드라마는 조직을 잡지 못한 이유를 한 번도 숨기지 않았다. 통념이 「놓쳤다」고 부르는 것을, 드라마는 「주인공이 저질렀다」고 적어 두었다.
두 번째 장면은 마지막 회 병실이다. 러스트는 1995년에 이미 그 얼굴을 보았다는 사실을 괴로워한다. 학교에서 잔디를 깎던,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 그때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17년이 걸렸다. 마티가 답한다. 다 잡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몫은 잡았다. 이 대사는 패배의 변명이 아니다. 두 사람이 자기 눈의 한계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말이다. 「범인 한 명으로 끝났다」는 불만은 이 대사가 이미 하고 있는 말을 반복한다. 드라마가 스스로 한 비판을 평자가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 통념, 러스트의 급한 전향은 어떤가.
그가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보자. 5회 심문실에서 그는 말한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시간은 평평한 원이라고.」 그 누군가는 르두다. 체포된 직후 르두가 러스트에게 그 말을 했다. 너는 이 일을 다시 할 것이다, 시간은 평평한 원이다. 러스트는 그때 욕을 하며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17년 뒤 그 말을 자기 철학으로 삼아 반복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드라마의 깊이라고 믿었던 허무는, 아이들을 가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러스트는 그 사실을 알고도 그 문장을 썼다. 어쩌면 그 문장이 그를 버티게 했을 것이다. 딸을 잃은 사람에게 「모든 것은 반복될 뿐 아무것도 뜻이 없다」는 말은 잔인한 동시에 편하다. 뜻이 없으면 책임도 없다.
마지막 회에서 그는 그 문장을 내려놓는다. 의식을 잃은 동안 어둠 속에 딸과 아버지가 있다고 느꼈다고, 그래서 그냥 놓아 버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밤하늘을 보며 마티와 주고받는다. 마티가 어둠의 영토가 훨씬 넓다고 하자, 러스트는 처음에는 어둠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보면 빛이 이기고 있다고 답한다.
급한가. 나는 이 장면을 전향이 아니라 반납으로 읽는다. 범인에게 빌린 문장을 범인을 죽인 날 돌려준 것이다. 「빛이 이기고 있다」는 세상에 대한 선언이 아니다. 하늘의 비율을 세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는 말이다. 만든 사람도 뒷날 인터뷰에서 이 인물이 180도가 아니라 5도쯤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5도는 급하지 않다. 5도는 다친 사람이 침대에서 몸을 돌리는 각도다.
내 해석에도 미심쩍은 데가 있다. 「주인공이 저질렀다」는 읽기는 드라마가 조직을 끝내 다루지 못한 것을 너무 쉽게 용서한다. 교회와 학교와 보안관 집안이 실제로 한 일은 비디오테이프 한 개와 늙은 가정부의 증언 몇 마디로만 남았다. 그것을 「두 사람의 시야」라는 틀로 덮는 것은 어쩌면 내가 결말을 좋아해서 만든 변명일 것이다. 좋아하는 결말을 변호하는 사람은 자기 논리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남는다. 이 드라마는 「범인을 잡았다」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보고도 몰랐다」로 끝났다. 전자는 수사물의 결말이고 후자는 사람의 결말이다. 맥이 빠진다는 느낌은, 우리가 앞의 것을 기다리다 뒤의 것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여덟 회 동안 우리가 황색의 왕을 찾았던 것은 드라마가 그렇게 시켰기 때문인가, 아니면 두 형사처럼 우리도 눈앞의 것보다 먼 어둠을 보는 편이 편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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