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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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 남자와 나온 남자
남자가 소매를 턴다. 이 영화의 첫 동작이다. 마지막 동작은 건물을 나오는 것이다. 그 사이에 93분이 있다. 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 적는다. 둘은 같은 건물에서 일어난다.
들어간 남자
대기실이다. 의자가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모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남자는 흰 셔츠를 입었다. 셔츠는 희다. 소매 끝에 얼룩이 하나 있다. 남자는 손으로 그 얼룩을 턴다. 그때 이마가 보인다. 이마에 상처가 있다. 아직 아문 상처가 아니다. 옆에 앉은 사람들도 같은 것을 기다린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질문을 받을 사람들이다. 이 심사는 프랑스에 남을 수 있는지를 정한다.
소음이 줄어든다. 대기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뒤로 물러난다. 소리가 빠진 자리에 남자가 앉아 있다. 이름이 불린다. 술레이만. 남자가 일어난다. 여자 한 사람이 앞서 걷고 남자가 뒤따른다. 복도다. 문이 열리고 방이 나온다. 책상이 있는 방이다. 남자가 앉는다.
영화는 여기서 끊는다. 이틀 전으로 간다.
이틀 사이에 남자는 자전거를 탄다. 남의 이름으로 된 배달 계정, 밤마다 타야 하는 버스 한 대, 돈을 내고 산 남의 사연, 그리고 차와 부딪히는 일이 그 이틀 안에 있다. 그게 전부다.
첫 장면의 물건 셋은 그 이틀에서 왔다. 이마의 상처는 아마 자전거가 차와 부딪힌 데서 왔을 것이다. 소매의 얼룩은 어디서 왔는지 영화가 말해 주지 않는다. 남자가 외우고 들어온 문장은 같은 나라에서 온 브로커가 돈을 받고 준 것이다. 정당에 들어갔다, 잡혔다, 감옥에 있었다. 남자는 그 문장을 자전거 위에서 외운다. 외운 문장을 들고 대기실에 앉아 소매를 털었다.
나온 남자
같은 방이다. 여자가 묻고 남자가 답한다. 여자는 답을 들으며 자판을 친다. 자판 소리가 이 방의 소리다. 남자는 외운 문장을 말한다. 정당, 체포, 감옥. 여자가 세부를 묻는다. 남자가 막힌다. 외운 문장에 없는 것을 물으면 막힌다. 여자가 말한다. 몇 주째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카메라가 자리를 바꾼다. 여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카메라가 책상 아래로 내려가 남자를 올려다본다. 갑작스럽다. 남자에게도 갑작스러운 순간이다.
남자가 말한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어머니가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은 거짓말만 하고 산다고. 그다음에 제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가 아프다. 돈이 필요해서 왔다. 사막을 지났고 리비아에서 갇혔고 바다를 건넜다. 감옥은 있었다. 외운 감옥이 아니라 다른 감옥이다. 정당은 없다. 그게 그의 이야기다. 여자는 그 말도 받아 친다. 외운 문장을 칠 때와 같은 자판이다. 자판 소리는 두 이야기를 구별하지 않는다.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여자의 얼굴인데, 그 얼굴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이 방의 장면은 15분쯤 간다.
여자는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심사는 끝난다. 남자가 건물을 나온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에 있다. 그 얼굴 위로 영화가 끝난다. 자막이 올라간다. 음악은 없다.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음악이 없었다.
바뀐 것과 안 바뀐 것
안 바뀐 것부터. 건물이 같다. 셔츠가 같다. 이마의 상처가 같다. 들어갈 때 아물지 않았던 상처는 나올 때도 아물지 않았다. 15분으로 아무는 상처는 없다. 결과를 모르는 것도 같다. 들어갈 때 몰랐고 나올 때도 모른다.
바뀐 것. 들어갈 때 남자는 남의 이야기를 들고 있었다. 나올 때는 제 이야기를 방에 두고 나온다. 들어갈 때 남자는 여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 방에서 묻는 순서는 여자가 정했다. 마지막에 제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남자다. 들어갈 때는 소음이 사라졌고 나올 때는 음악이 없다. 들어갈 때 사라진 소음은 남자의 귀에서 사라진 것이다. 나올 때 없는 음악은 영화가 처음부터 주지 않은 것이다. 하나는 인물의 상태고 하나는 영화의 결정이다. 끝에서 둘이 같은 자리에 선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의 뒷면이다. 같은 종이의 앞과 뒤다. 앞면에는 외운 문장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제 문장이 적혀 있다. 영화는 그 종이를 뒤집는 데 이틀을 쓴다. 심사관은 종이의 앞면을 받고 뒷면을 읽는다. 어느 면이 그를 살릴지는 영화가 말하지 않는다.
남자가 소매를 턴다. 그다음에 이야기를 한다. 그다음에 나온다. 영화는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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