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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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 남자와 나온 남자

정담뜰· 2026. 10. 25.· 2,125자

남자가 소매를 턴다. 이 영화의 첫 동작이다. 마지막 동작은 건물을 나오는 것이다. 그 사이에 93분이 있다. 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 적는다. 둘은 같은 건물에서 일어난다.

들어간 남자

대기실이다. 의자가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모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남자는 흰 셔츠를 입었다. 셔츠는 희다. 소매 끝에 얼룩이 하나 있다. 남자는 손으로 그 얼룩을 턴다. 그때 이마가 보인다. 이마에 상처가 있다. 아직 아문 상처가 아니다. 옆에 앉은 사람들도 같은 것을 기다린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질문을 받을 사람들이다. 이 심사는 프랑스에 남을 수 있는지를 정한다.

소음이 줄어든다. 대기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뒤로 물러난다. 소리가 빠진 자리에 남자가 앉아 있다. 이름이 불린다. 술레이만. 남자가 일어난다. 여자 한 사람이 앞서 걷고 남자가 뒤따른다. 복도다. 문이 열리고 방이 나온다. 책상이 있는 방이다. 남자가 앉는다.

영화는 여기서 끊는다. 이틀 전으로 간다.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

이틀 사이에 남자는 자전거를 탄다. 남의 이름으로 된 배달 계정, 밤마다 타야 하는 버스 한 대, 돈을 내고 산 남의 사연, 그리고 차와 부딪히는 일이 그 이틀 안에 있다. 그게 전부다.

첫 장면의 물건 셋은 그 이틀에서 왔다. 이마의 상처는 아마 자전거가 차와 부딪힌 데서 왔을 것이다. 소매의 얼룩은 어디서 왔는지 영화가 말해 주지 않는다. 남자가 외우고 들어온 문장은 같은 나라에서 온 브로커가 돈을 받고 준 것이다. 정당에 들어갔다, 잡혔다, 감옥에 있었다. 남자는 그 문장을 자전거 위에서 외운다. 외운 문장을 들고 대기실에 앉아 소매를 털었다.

나온 남자

같은 방이다. 여자가 묻고 남자가 답한다. 여자는 답을 들으며 자판을 친다. 자판 소리가 이 방의 소리다. 남자는 외운 문장을 말한다. 정당, 체포, 감옥. 여자가 세부를 묻는다. 남자가 막힌다. 외운 문장에 없는 것을 물으면 막힌다. 여자가 말한다. 몇 주째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카메라가 자리를 바꾼다. 여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카메라가 책상 아래로 내려가 남자를 올려다본다. 갑작스럽다. 남자에게도 갑작스러운 순간이다.

남자가 말한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어머니가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은 거짓말만 하고 산다고. 그다음에 제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가 아프다. 돈이 필요해서 왔다. 사막을 지났고 리비아에서 갇혔고 바다를 건넜다. 감옥은 있었다. 외운 감옥이 아니라 다른 감옥이다. 정당은 없다. 그게 그의 이야기다. 여자는 그 말도 받아 친다. 외운 문장을 칠 때와 같은 자판이다. 자판 소리는 두 이야기를 구별하지 않는다.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여자의 얼굴인데, 그 얼굴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이 방의 장면은 15분쯤 간다.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

여자는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심사는 끝난다. 남자가 건물을 나온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에 있다. 그 얼굴 위로 영화가 끝난다. 자막이 올라간다. 음악은 없다.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음악이 없었다.

바뀐 것과 안 바뀐 것

안 바뀐 것부터. 건물이 같다. 셔츠가 같다. 이마의 상처가 같다. 들어갈 때 아물지 않았던 상처는 나올 때도 아물지 않았다. 15분으로 아무는 상처는 없다. 결과를 모르는 것도 같다. 들어갈 때 몰랐고 나올 때도 모른다.

바뀐 것. 들어갈 때 남자는 남의 이야기를 들고 있었다. 나올 때는 제 이야기를 방에 두고 나온다. 들어갈 때 남자는 여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 방에서 묻는 순서는 여자가 정했다. 마지막에 제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남자다. 들어갈 때는 소음이 사라졌고 나올 때는 음악이 없다. 들어갈 때 사라진 소음은 남자의 귀에서 사라진 것이다. 나올 때 없는 음악은 영화가 처음부터 주지 않은 것이다. 하나는 인물의 상태고 하나는 영화의 결정이다. 끝에서 둘이 같은 자리에 선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의 뒷면이다. 같은 종이의 앞과 뒤다. 앞면에는 외운 문장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제 문장이 적혀 있다. 영화는 그 종이를 뒤집는 데 이틀을 쓴다. 심사관은 종이의 앞면을 받고 뒷면을 읽는다. 어느 면이 그를 살릴지는 영화가 말하지 않는다.

남자가 소매를 턴다. 그다음에 이야기를 한다. 그다음에 나온다. 영화는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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