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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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번호를 바꿔 달라고 말하는 사람
시작부터 고백할게요. 이 영화 보는 내내 손에 땀이 났어요. 자전거 영화인 줄 알았는데 (포스터만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93분짜리 달리기였고, 뛰는 사람은 화면 속 남자인데 숨은 제가 찼어요. 배경 음악이 한 곡도 없어요. 그래서 더 그래요. 바퀴 소리, 앱 알림 소리, 버스 문 닫히는 소리가 음악 자리를 다 차지해요.
그런데 제가 오래 붙들린 장면은 자전거 위가 아니었어요. 밤에 쉼터에 도착해서 침대를 받는 장면, 그리고 전화 한 통이에요. 둘 다 아주 조용한 장면이에요. 그 두 장면이 왜 저를 붙들었는지는 제 옛날 밤 하나를 꺼내야 설명이 돼요. 그래서 이 글은 그날과 그 장면을 번갈아 쓸게요.
그 장면 — 침대 번호
남자는 아침마다 알람을 맞춰 일어나요. 그날 밤 잘 자리를 미리 신청해 두려고요. 파리 외곽의 쉼터는 매일 밤 새로 자리를 받는 곳이고,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출발해요. 남자는 그 막차 시간이 코앞인데도 배달을 하나 더 받아요. 그리고 뛰어요. 간신히 버스를 타고 간신히 도착했는데, 그날 받은 침대 번호가 평소 쓰던 번호가 아니에요. 몇 개 안 되는 짐이 그 자리에 있고, 늘 옆에서 자던 친구도 그 옆에 있어요. 남자는 자기 자리를 배정받은 사람에게 가서 바꿔 달라고 해요. 그러고 나서야 눕고, 그러고 나서야 숨을 내려놔요.
처음엔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몰랐어요. 침대는 침대잖아요. 다 똑같은 침대고 하룻밤인데. 그 버스를 타기까지가 이미 전쟁이었잖아요.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와도 기다려야 하고, 늦게 나온 음식을 들고 또 달려야 하고, 그 와중에 막차 시간은 다가오고. 그렇게 겨우 도착해서 침대 번호 하나를 가지고 또 사람을 붙잡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그날 — 터미널 대기실
스물 몇 살 때 지방에서 서울로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어요 (결과는 묻지 마세요). 하루는 면접이 늦게 끝나서 막차를 놓쳤고, 터미널 대기실 플라스틱 의자에서 첫차까지 버티게 됐어요. 옆자리에는 저보다 먼저 와 있던 아저씨가 비닐봉지 두 개를 발밑에 두고 앉아 있었어요. 새벽 두 시쯤 제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니까 아저씨가 턱으로 제 가방을 가리켰어요. 봐 줄 테니 두고 가라고. 돌아오니 가방은 그대로였고, 아저씨는 자기 봉지 하나를 제 의자 위에 올려 두고 자고 있었어요. 자리를 맡아 둔 거예요. 누가 와서 앉지 못하게.
그 밤 이후로 저는 대기실 의자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붙잡는지 알게 됐어요. 자리는 자리가 아니라 옆에 누가 있느냐예요.
그 장면 — 다시 침대
그래서 그 터미널 밤을 꺼내 놓고 다시 생각하니 침대를 바꾸러 가는 남자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어요. 남자는 하루 종일 남의 이름으로 살아요. 배달 계정은 남의 것이고, 외우고 있는 사연도 돈 주고 산 남의 것이에요. 그 하루 끝에 남자가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유일한 게 그 침대 번호예요. 번호 자체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친구, 그 밑에 둔 짐이요. 자리를 바꿔 달라고 말할 때 남자의 목소리가 제 귀에는 계정 주인 앞에서나 브로커 앞에서보다 또렷하게 들렸어요. 그 하룻밤의 자리 하나는 남자가 끝까지 내놓지 않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여기서 울었어요. 왜인지는 지금도 설명이 잘 안 돼요.
그 장면 — 전화
또 하나는 전화예요. 고향 기니에 있는 어머니는 아프고, 통화는 자꾸 엇나가요.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여자친구에게 다른 데서 청혼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와요. 남자는 여기서 소리치거나 멈춰 서거나 하지 않아요. 그냥 다음 배달을 가요. 영화는 이 통화를 길게 끌지 않아요. 저는 이게 더 무서웠어요. 하루에 몇 분밖에 안 되는 통화에 한 사람의 고향이 다 들어 있는데, 그 몇 분도 다음 주문 알림에 잘려요.
그날 — 다시 대기실
그 터미널 밤에 저도 전화를 한 통 했어요. 집에, 막차 놓쳤다고. 엄마는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고 저는 친구 집이라고 했어요. 거짓말이었죠. 플라스틱 의자라고 하면 걱정할 테니까. 이 영화의 끝에 남자가 거짓말을 하지 말라던 어머니 얘기를 꺼내는 대목이 있는데 (심사실 장면이라 자세히는 안 쓸게요) 저는 그 터미널 거짓말이 떠올라서 혼자 머쓱해졌어요. 사정이 비교가 안 된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사정이 어떻든, 걱정시키기 싫어서 하는 거짓말의 모양은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사연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바꿨냐면요. 처음 봤을 때 이 영화는 큰 이야기였어요. 이주 노동, 난민 심사, 배달 플랫폼. 다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대기실 밤을 꺼내 놓고 다시 보니 아주 작은 이야기가 됐어요. 오늘 밤 내 자리가 있느냐, 옆에 아는 얼굴이 있느냐, 집에 전화해서 뭐라고 말하느냐. 큰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들을 수 있는데 이 작은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만 들었어요.
원제 얘기를 잠깐 할게요.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그냥 '술레이만의 이야기'예요. 한국 제목은 택배기사의 48시간이 됐죠.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저는 원제 쪽이 좋아요. 이 남자가 이틀 동안 남의 계정으로 달리고 남의 사연을 외우면서도 끝내 하나 쥐고 있는 게 자기 이야기거든요. 침대 번호도, 전화도, 결국은 그 이야기의 일부예요. 누구 옆에서 자는지, 누구에게 전화하는지가 그 사람 이야기잖아요.
마지막 심사실 장면은 여기서 길게 안 쓸게요. 한 줄만요. 남자가 거기서 무엇을 택하는지 보고 나면, 침대 번호를 바꿔 달라고 하던 그 목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돼요.
오늘 밤 당신 자리가 어디든, 옆에 아는 얼굴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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