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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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으려면 다른 것을 틀어라
결론부터 말한다. 이 영화는 당신을 위로하지 않는다. 위로받으려고 틀었다면 93분 뒤에 더 지쳐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볼 사람은 있다. 누가 봐야 하고 누가 피해야 하는지 아래에 가른다. 앞부분은 결말을 건드리지 않는다. 뒤에 선을 긋고 나서 결말을 말한다.
먼저 틀만 적는다. 기니에서 온 남자가 파리에서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한다. 자기 이름으로는 일할 수 없어서 남의 배달 계정을 빌려 쓴다. 이틀 뒤에 난민 심사 인터뷰가 있다. 영화는 그 이틀을 따라간다. 배경 음악이 없다. 들리는 것은 자전거 바퀴, 자동차, 배달 앱 알림, 사람 목소리다. 밤에는 파리 외곽의 쉼터에서 잔다. 거기까지 가는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한 번 떠난다. 그 버스를 놓치면 그날 밤 잘 곳이 없다. 영화의 이틀은 이 버스 시간을 향해 흐른다.
이런 사람은 보라
- 일이 몸을 갈아먹는다는 말을 아는 사람. 남자는 계정 주인에게 일주일에 120유로를 낸다. 그렇게 일하고 손에 남는 돈이 일주일에 80유로쯤이다. 숫자 둘이면 설명이 끝난다.
- 남이 겪는 부당함을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 계정 주인은 돈을 줄 날이 되자 계정이 막혔으니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약한 남자가 더 약한 남자에게서 뜯어 가는 구조다. 영화는 이걸 설명하지 않고 보여 주기만 한다.
- 밤에 잠자리를 걱정해 본 사람. 남자는 아침마다 알람을 맞춰 그날 밤 쉼터 침대를 예약한다. 밤에는 외곽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려고 배달 중에 뛴다. 늦으면 그날 밤은 없다.
- 이 도시가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 궁금한 사람. 남자는 잠복 중인 경찰차에도 음식을 가져다준다. 그를 쫓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가 배달한 음식을 먹는다. 영화는 이 장면에 아무 말도 붙이지 않는다.
- 말 없는 배우를 견딜 수 있는 사람. 남자는 소리치지 않는다. 길에서 자동차와 부딪혀 넘어진 뒤에도 그렇다. 몸이 다 말한다. 말로 설명해 주는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이게 낯설 것이다.
이런 사람은 피하라
-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미리 알고 싶은 사람. 이틀 동안 사건은 거의 없다. 배달, 대기, 버스, 전화, 또 배달이다. 큰 전환은 끝에 한 번 온다.
- 악역이 벌을 받아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 돈을 안 주는 계정 주인도, 거짓 사연을 팔고 돈을 재촉하는 브로커도 벌을 받지 않는다. 영화가 그들을 쫓지 않는다. 쫓을 시간이 남자에게 없기 때문이다.
- 배달 음식을 자주 시키는데 그 뒷면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식당은 음식을 늦게 내준다. 가방이 찌그러진 음식은 손님이 받지 않고, 그러면 돈도 없다. 7층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손님은 중간까지도 내려오지 않는다. 다음에 주문할 때 이 장면들이 따라올 것이다.
- 주인공이 무엇이든 해내는 것을 봐야 하는 사람. 남자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받을 돈을 못 받고, 자전거는 자동차에 부딪혀 망가지고, 고향의 여자친구에게는 다른 데서 청혼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온다. 남자는 그중 어느 것도 되돌리지 못한다. 되돌릴 시간에 다음 배달을 간다.
- 결말이 닫혀야 하는 사람. 이 영화는 답을 주고 끝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아래에서 한다.
둘 다 아닌 사람, 그러니까 볼까 말까 망설이는 당신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재미로 보는 영화가 아니고 공부로 보는 영화도 아니다. 한 사람이 이틀을 어떻게 버티는지 옆에서 같이 달리는 영화다. 당신이 요즘 뭔가를 버티고 있다면 그 남자의 등이 남 같지 않을 것이다. 버티는 중이 아니라면 그냥 피곤할 수 있다. 어느 쪽인지는 당신이 안다.
여기부터는 결말을 말한다
브로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브로커는 남자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심사에서 통할 사연을 돈을 받고 팔고, 돈을 다 내지 않으면 서류를 주지 않겠다고 한다. 남자가 하루 종일 달려 번 돈이 그에게 간다. 그러니까 남자는 자기를 지울 문장을 사느라 몸을 쓴 것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야당에 들어갔다, 잡혔다, 감옥에 갔다. 남자는 그 문장을 자전거 위에서 외운다. 심사실에서 그 문장을 읊다가 세부를 묻는 질문에 막힌다. 심사관이 말한다. 이제 당신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그다음에 남자가 꺼내는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다. 어머니가 아프다. 돈이 필요했다. 사막을 지났고 리비아를 거쳐 바다를 건넜고 파리까지 왔다. 그게 전부다. 심사관은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고 음악 없이 자막이 올라간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남자가 거짓 사연을 버리고 제 이야기를 한 것이 그를 살릴지 죽일지 영화는 모른다고 말한다. 당신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이 영화가 주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남자가 그 방에서 한 일, 그것 하나다. 외운 문장을 버렸다. 그 뒤가 어떻게 되든 그 선택은 남자의 것이 됐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말했다는 대목이 있다. 남자는 요즘 거짓말만 하며 산다고 덧붙인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쥔 대목이다. 남의 계정, 남의 사연, 남의 이름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마지막에 제 이름으로 말한다. 그러고도 결과는 없다. 그래도 그 방을 나오는 남자의 걸음은 들어갈 때와 다르다.
볼까 말까. 버틴 끝에 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티는 사람의 얼굴을 93분 동안 볼 수 있다면 보라.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이 안다. 위로를 원하면 다른 것을 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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