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5

나는 크리스찬 래트너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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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라고 내버려 두는 사람

삐뚜름관람· 2026. 10. 26.· 2,276자

고백부터 한다. 나는 단톡방에 뭘 올리고 10분 안에 반응이 없으면 지운다. 누가 나를 싫어한다는 낌새만 있어도 사흘을 앓는다. 그래서 싫은 소리 들을 일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다. 내기도, 시합도, 회의에서 손 드는 일도.

그런 사람이 제목에 「싫어」가 박힌 영화를 골랐다. 2015년에 나온 77분짜리 스포츠 다큐멘터리다. 1990년대 초 미국 대학 농구에서 네 해 내리 4강에 가고 두 번 우승한 선수가, 왜 그 시절 가장 미움받는 선수가 됐는지를 묻는다. 영화는 이유를 다섯으로 나누는데 그 목록은 다른 분들이 이미 잘 적어 두셨다. 나는 농구를 모른다. 내가 궁금했던 건 농구가 아니라, 그렇게 미움받으면서 어떻게 코트에 계속 나갔느냐였다. 나 같으면 첫 야유에서 집에 갔다.

나는 크리스찬 래트너가 싫어 스틸컷

영화에서 그의 형이 먼저 입을 연다. 네 살 위다. 어릴 때 동생한테 거칠었다고, 놀리고 비웃고 때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동생은 형한테 지면 울었고, 형은 그걸 보고 웃었다. 래트너는 그 시절이 지는 걸 못 견디는 성질을 자기한테 심었다고, 그게 자기 직업에는 좋은 성질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벌써 좀 그랬다. 나도 형이 있고 나도 지면 울었는데, 내게 남은 건 지는 게 싫은 마음이 아니라 아예 붙지 않는 버릇이었다.

그는 받은 것을 그대로 넘겼다. 영화는 이걸 숨기지 않는다. 같은 팀의 작은 가드와 코트 위에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 1990년 경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 가드는 팀 동료가 자기한테 어떻게 뛰라고 가르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감독은 그 가드에게 형이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래트너 쪽 설명은 동료를 자극해서 끌어올리려 했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 한 명은 더 직설적이다. 다들 크리스찬을 싫어했다고, 같은 팀인 우리도 싫어했다고. 늘 사람을 건드렸다고.

학창 시절에 찍은 집 비디오도 나온다. 그의 팀과 상대 팀이 코트에서 엉켜 싸우는데, 정작 그는 몸싸움 바깥으로 슬쩍 빠져 있다. 싸움을 그가 붙였는지 영화는 확정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제일 얄미웠다. 불을 지르고 구경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럴 것이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는 불을 지르기는커녕 남이 지른 불 근처에도 못 간다.

1992년 켄터키전에서 바닥에 누운 상대 선수의 가슴을 밟은 장면은 다 아는 장면이라 길게 안 쓴다. 내가 적어 두고 싶은 건 밟힌 쪽이다. 그 선수는 영화에서, 그때 일어나서 웃으며 손뼉을 쳤다고 말한다. 화가 나서 그런 거지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미움받는 쪽보다 미움받을 일을 당한 쪽이 더 태연하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 나는 둘 중 어느 쪽도 못 된다.

그러면 그는 미움을 어떻게 견뎠나. 감독은 뒷날 인터뷰에서 그가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 속에서 가족 중 한 사람은 그 무심함이 방어 기제라고 말한다. 나는 후자에 한 표다. 형 앞에서 울던 아이가 울지 않는 법을 배운 게 아니라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배웠을 거라고, 이건 내 추측이다.

나는 크리스찬 래트너가 싫어 포스터

그런데 영화에는 그 무심함이 통하지 않는 자리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감독의 아내다. 자기들 인생에 다시는 이런 선수가 없을 거라고, 그가 남편의 가장 좋은 면을 끌어냈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1991년 첫 우승 직후다. 코트에서 주먹질 직전까지 갔던 그 작은 가드가 제일 먼저 자기 품에 뛰어들어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래트너 본인이 말한다. 졸업할 무렵 그는 듀크라는 학교보다 그 감독 밑에서 뛰는 일이 더 그리울 거라고 했다. 미움받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사랑받는 자리에서는 서툴러진다. 그 대목에서 나는 졌다.


다시 나로 돌아온다. 그와 내가 닿는 지점은 하나다. 지면 울었다. 거기서 그는 오른쪽으로 갔고 나는 왼쪽으로 갔다. 그는 지지 않으려고 사람을 건드리는 쪽을 골랐고, 그러면 미움이 따라온다는 걸 알고도 바꾸지 않았다. 나는 미움이 무서워서 지는 자리 자체를 피했다. 이기는 일도 같이 피해졌다. 그걸 인정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영화가 그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애쓴다는 평이 많고, 그 말이 맞다. 인종 이야기를 꺼내 놓고 빨리 지나간다는 지적도 맞다. 그래도 나한테 남은 건 그쪽이 아니다. 미움을 받으면서도 계속 코트에 나간 사람이 있고, 미움이 무서워 코트에 안 나간 사람이 그걸 77분 동안 구경했다는 것. 누가 더 못났는지는 쓰지 않겠다.

아무튼 「나는 크리스찬 래트너가 싫어」를 봤다. 보고 나니 싫어할 수가 없어서 좀 억울하다. 농구를 몰라도 되고, 미움받는 게 무서운 사람이면 더 잘 보인다.

크리스찬, 내일 회의에서 손 한 번 들어 보겠다. 당신 반만큼만 얄미워져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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