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삼도천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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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판 다 치고 나니 노란 택시가 서 있었다
19분, 15분, 14분, 17분, 23분. 다 더해도 한 시간 반이 안 된다. 다섯 편짜리 드라마의 러닝타임을 세어 보다가 이상하게 억울해졌다. 이 정도면 한 번에 다 보라고 만든 거 아닌가. 그런데 공개는 6월 24일에 두 편, 7월 1일에 두 편, 7월 8일에 마지막 한 편이었다. 일주일씩 두 번을 기다리게 만든 뒤에야 판이 끝나는 구조다.
그래서 보면서 적어 둔 메모를 회차 순서대로 옮긴다. 결말까지 다 나온다. 장르는 저세상 오컬트 판타지라고 하는데, 보고 나면 그 말이 좀 과하게 무섭게 들린다. 무서운 드라마가 아니다. 화투판 드라마다.
1화 「이번 판은 나가리」
첫 화 제목부터 패를 엎는다. 강현은 귀신을 보고, 보는 것도 모자라 만질 수 있다. 그게 전부다. 그 능력으로 어설픈 퇴마 일을 하며 사는데, 집에는 빙의된 채로 도박 빚을 늘려 놓는 할아버지 국진이 있고, 문 앞에는 빚 갚으라는 사채업자가 있고, 몸에는 귀신들이 들러붙는다. 세 겹으로 치이는 청년이다. 지하철 요금도 아끼며 사는 사람이라, 나는 일찌감치 이 사람 편이 됐다. (올여름 나도 요금 아끼겠다고 두 정거장을 걸었다가 땀으로 더 손해 본 적이 있어서,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 의뢰가 온다. 할아버지의 도박 빚을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청산」이라는 정체 모를 존재를 퇴마해 달라는 것. 여기서 내 첫 예측. 청산이 이 드라마의 최종 상대고, 강현이 다섯 편 내내 청산과 싸우다가 빚을 갚고 홀가분하게 택시에 오르겠구나. 완전히 틀렸다. 단순한 퇴마인 줄 알았던 사건은 저승 세계의 비밀로 이어지고, 강현은 1화가 끝날 때 이미 자기가 어떤 판에 앉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2화 「피박에 광박」
15분. 가장 짧은 축인데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난다. 강현은 학교에서 강림과 도희를 만난다. 도희는 사회 초년 저승사자, 원칙과 규칙을 입에 달고 사는 신입이고, 강림은 젠틀한 부장 저승사자다. 회사 드라마의 상사와 신입을 그대로 저승으로 옮겨 놓은 구도라 처음엔 웃었는데, 이 둘이 끝까지 강현의 운명 옆에 붙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봉인된 그림. 그림에서 수상한 속삭임이 흘러나오고, 강현은 거기 이끌려 실수로 「옥수」의 봉인을 풀어 버린다. 실수로. 이 드라마의 큰 사고는 강현이 실수로 저지른다는 점이 좋다. 영웅이 아니라 사고뭉치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도 알지 못했던 힘이 깨어나는데, 그게 뭔지는 4화까지 가야 말해 준다. 피박에 광박, 제목 그대로 2화에서 강현은 다 뒤집어쓴다.
3화 「못 먹어도 고」
여기서 여명단과 SD운수의 정체가 드러난다. 저승 쪽 조직과 택시 회사가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인데, 자세한 내막은 드라마가 말해 주는 만큼만 적겠다. 중요한 건 입사 경위다. 강현은 강림과 내기를 하고, 진다. 그리고 삼도천 택시 기사로 강제 입사한다.
내기에 져서 취직하는 주인공이라니. 나는 1화에서 강현이 제 발로 운전대를 잡을 거라 예측했고, 여기서 두 번째로 틀렸다. 첫 임무는 「패륜」 사건. 14분짜리 회차에서 노란 택시가 처음으로 손님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한다. 귀신 손님에게도 능청스럽게 말을 거는 강현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빚 독촉에 하도 시달려서 누구한테든 말이 먼저 나가는 체질이 된 게 아닐까 싶다.
4화 「비장의 패」
제목이 곧 강현이다. 자기 몸이 악귀를 봉인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2화에서 깨어난 힘의 정체가 이거였다. 능력은 귀신을 보고 만지는 것뿐이라고 1화에서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만질 수 있다는 게 곧 봉인할 수 있다는 뜻이었던 셈이다. 가진 게 없다던 사람의 몸 자체가 패였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정색했다.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강현이 몸을 던진다. 앞 세 편 내내 사고 치고 빚에 쫓기고 내기에 지던 사람이, 계산 없이 아이 앞으로 간다. 떠들썩하게 보던 나도 이 장면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 끝에 악귀들의 수장 옥수와 마주 선다. 2화에서 실수로 풀어 준 그 봉인이 돌아온 것이다.
5화 「고 or 스톱」
23분, 가장 길다. 옥수의 미혹에 강현이 흔들린다. 여기서 강림과 도희가 돕는다. 규칙만 외던 신입 저승사자와 젠틀한 부장이 강현 편에 서는 순간이 이 시리즈에서 제일 든든한 장면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나온다. 결말까지 다 쓰겠다고 위에서 말해 놓고 이것만은 적지 않겠다. 솔직히 말하면 그 대목에서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빚 얘기로 시작한 드라마가 어머니 얘기로 끝날 줄 몰라서였을 수도 있다.
강현은 SD운수 택시 기사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강제 입사였던 자리에 제 발로 다시 앉는다. 고냐 스톱이냐, 답은 제목에 이미 있었다.
이번판은 나가리라고? 가진 게 없어도, 못 먹어도, 나는 고! 무조건 고!
끝나고
공식 소개 문구가 저거다. 다 보고 나서 읽으니 다섯 편의 요약이 아니라 강현의 좌우명처럼 읽힌다. 나가리, 피박에 광박, 못 먹어도 고, 비장의 패, 고 or 스톱. 다섯 제목을 순서대로 읽으면 한 판의 화투가 되고, 한 사람의 취직기가 되고, 어떻게 보면 성장기가 된다.
아쉬운 것도 있다. 잉어 문신의 곽도천은 인상이 강한데 다섯 편 안에서 다 풀어 줄 시간이 없어 보였고, 여명단도 그렇다. 웹소설이 원작이라는데 아마 거기엔 더 긴 판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으니 거기까지는 모른다.
그래도 한 시간 반이다. 저녁 먹고 앉아서 한 판 치기 딱 좋은 길이. 무서운 걸 못 보는 사람에게도 권한다. 무서운 드라마가 아니라, 빚 많은 청년이 노란 택시 한 대를 얻는 이야기니까.
19분, 15분, 14분, 17분, 23분. 다시 세어 보니 억울하지 않다. 딱 그만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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