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삼도천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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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에 져서 입사하신 분의 성장기에 관하여
친구가 먼저 봤다. 다섯 편짜리니 금방이라기에 나도 주말에 봤고, 월요일 점심에 둘이 국밥을 놓고 마주 앉았다. 친구는 이 드라마를 「직장 드라마」라고 불렀고 나는 「퇴마물」이라고 불렀다. 거기서부터 틀어졌다. 아래는 그 점심의 기록이다. 작품에 관한 사실은 공식 회차 소개와 기사에서 확인한 것만 적었고, 친구의 의견은 친구의 것이니 이의가 있으신 분들은 친구에게 넣어 주시기 바란다. 결말까지 다 나온다.
나: 일단 이 드라마의 악당이 누구인지부터 정하자. 나는 옥수라고 본다. 악귀들의 수장이고, 2화에서 봉인이 풀리고, 4화에서 마주 서고, 5화에서 주인공을 미혹한다. 수순이 자로 잰 듯하다.
친구: 아니다. 할아버지다.
나: 할아버지는 가족이시다.
친구: 가족이 손자 몸에 들어가서 도박 빚을 늘린다. 공식 소개 첫 줄에 그렇게 적혀 있다. 사채업자가 문 앞에 오는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고, 1화에서 「청산」이라는 존재를 퇴마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 것도 할아버지 빚을 탕감해 준다는 조건 때문이다. 옥수는 그 의뢰를 따라가다가 나온 존재다. 원인 제공자는 할아버지다.
나: 그렇게 치면 모든 호러물의 악당은 「거기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간 사람」이 되겠다.
친구: 그 말이 맞다.
나: 하지만 빙의한 조상은 이 장르의 기본 반찬이다. 귀신 보는 주인공, 빚, 시도 때도 없이 들러붙는 잡귀, 그리고 집안에 하나씩 있는 말썽꾼 조상. 다 밥상 위에 있던 것들이다. 옥수는 그 밥상에 올라온 메인 요리고.
친구: 메인 요리는 늦게 나온다. 2화에서야 봉인된 그림 속에서 속삭이기 시작한다. 나는 1화 내내 할아버지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봤다. 그런데 손자 몸으로 왜 도박을 하시는지, 나는 다 보고도 그 이유를 못 찾았다. 네가 찾았으면 알려 달라.
나: 나도 알 도리가 없다.
친구: 그러면 이 드라마는 가장 큰 민원인을 해명 없이 집에 모셔 둔 것이다.
나: 민원인이 아니라 설정이다. 설정은 해명하지 않는다. 그게 설정의 권리다.
친구: 두 번째. 3화에서 강현이 강림 부장과 내기를 해서 지고 택시 기사로 입사한다. 회차 소개에 「강제 입사」라고 적혀 있다. 이건 채용이 아니라 포획이다.
나: 이 장르에서 선택받은 사람은 제 발로 가는 법이 없다. 끌려가거나, 속아서 가거나, 사고로 간다. 내기는 그중 가장 점잖은 방식이다. 서류도 면접도 없이 내기 한 판. 나는 그 대목이 구수했다.
친구: 그런데 5화에서 「택시 기사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로 끝난다. 내기에 져서 들어간 회사에서, 입사 세 편 만에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게 성장인가 적응인가.
나: 4화를 빼놓으셨다.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려고 몸을 던지고, 그 끝에 옥수와 마주 선다. 거기서 이미 본인이 고른 것이다.
친구: 아이를 구하려고 몸을 던지는 건 주인공의 의무 조항이다. 각성하는 장면 옆에는 언제나 아이가 있다. 그건 고른 게 아니라 대본이 시킨 거다.
나: 대본이 시킨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주인공의 직무라 하겠다.
친구: 그러면 네 말대로 이건 퇴마물이 아니라 직장 드라마다. 젠틀한 부장님이 있고, 원칙과 규칙을 입에 달고 사는 신입 저승사자가 있고, 내기로 뽑힌 수습이 있고, 첫 임무가 「패륜」 사건이다. 사건 이름이 인사 발령지처럼 붙어 나온다.
나: 그래서 좋다는 건가 싫다는 건가.
친구: 좋다. 저승이 회사라는 설정을 나는 믿는다. 여명단이니 SD운수니 하는 이름도 회사 같아서 믿는다. 내가 못 믿는 건 수습이 세 편 만에 운명을 받아들이는 속도다.
나: 5화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나온다. 그걸 알고 나서 내린 결심이다. 속도가 아니라 사정이 있는 것이다.
친구: 그 진실이 뭔지 여기서 말할 거냐.
나: 회차 소개에도 없는 것을 내가 여기 적을 수는 없다. 그건 보신 분들만 아시는 걸로 하자.
친구: 그러면 결국 네가 말할 수 있는 건, 어머니 일 때문에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뿐이다. 나는 내기 때문에 들어가서 어머니 때문에 남았다고 읽었다. 둘 다 본인이 고른 게 아니다.
나: 본인이 고르지 않은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가는 것을 이 장르에서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친구: 회사에서는 그걸 근속이라고 부른다.
국밥이 식었다. 합의한 것은 하나다. 할아버지가 왜 손자 몸으로 도박을 하시는지, 수습 기사가 왜 세 편 만에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둘 다 다음 판이 깔리면 거기서 들을 수 있을 테니 다음 판이 깔리면 둘 다 보겠다는 것. 다음 판이 깔리는지는 우리 둘 다 모른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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