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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 두 개와 빈 의자 하나

밤선율· 2026. 10. 26.· 2,865자

집에 오면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전화로 그렇게 말한다. 아들은 서둘러 집으로 가다가 폭우로 넘친 강가에 어머니가 서 있는 걸 보고 뛰어든다. 그리고 일 년을 잠든다. 깨어나 보니 어머니는 자유사라는 제도에 등록해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니던 공장은 로봇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영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그 중요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아들은 모르고, 알려 줄 사람은 없다.

이 영화를 두고 할 말은 많다. 자유사, 인공지능, 몸을 빌려주는 노동, 죽은 사람을 데이터로 다시 세우는 일. 소재가 너무 많다는 평이 있고 나도 거기 동의한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물건을 보려고 한다. 이 영화의 물건들은 이야기보다 정확하다. 셋만 고른다.

물건 1. 고글 두 개

아들은 두 종류의 고글을 쓴다. 하나는 일할 때 쓴다. 카메라가 달린 고글을 쓰고 멀리 있는 의뢰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일이다. 의뢰인 대신 걷고, 보고, 심부름을 한다. 사람들은 이 일을 리얼 아바타라고 부른다. 의뢰인이 매기는 점수가 떨어지면 인공지능의 밝은 목소리가 해고를 통보한다. 다른 하나는 집에서 쓴다. 고글과 이어피스를 끼면 가상 공간에 세워진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의 기록을 모아 만든 사람이다. 그걸 만든 회사의 대표는 진짜보다 나은 어머니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두 고글의 생김새부터 판정한다. 맞다. 이 영화의 장비는 반짝이지 않는다. 지금 전자상가에서 파는 물건에서 조금만 나간 꼴이고, 소개 기사들도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생활과 이어진 세계라는 점을 보라고 했다. 감독이 배우에게 먼 훗날이 아니라 길어도 십 년쯤 뒤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나는 미래를 다루는 영화가 장비를 번쩍이게 만드는 걸 싫어한다. 번쩍이는 순간 그건 남의 일이 된다. 이 영화의 고글은 내 일처럼 생겼다.

그다음은 생김새가 아니라 쓰임이다. 두 고글은 거울상이다. 일할 때 그는 자기 몸을 남에게 빌려준다. 집에서 그는 남이 만든 어머니를 빌려 온다. 한쪽에서는 자기 눈이 남의 눈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남의 계산이 어머니의 눈이 된다. 영화가 이 두 장면을 한 배우의 같은 얼굴 위에 번갈아 올려놓는 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세다. 이 사람은 화면의 양쪽에 다 서 있다. 그게 이 인물이다. 고글 두 개로 다 말해진다.

리얼 아바타 장면 중에는 그가 의뢰인의 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고백을 전하는 대목이 있다. 그 의뢰인은 휠체어를 타는 부유한 남자고, 고백 상대는 아들이 같이 살게 된 여자, 어머니의 친구였다는 사람이다. 자기 입으로 남의 고백을 하는 남자. 한 글은 그 장면을 피에로의 비애라고 불렀다. 나는 그 표현에 반대하지 않는다. 고글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비애다.

본심 포스터

물건 2. 의자와 영정

감독이 인터뷰에서 직접 설명한 장면이 있다. 화면 한가운데 의자가 있다. 앞 장면까지 어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다. 다음 장면에서 그 의자는 비어 있다. 그다음에는 여자가 그 의자에 앉아 있고, 방 안쪽에 어머니의 영정이 보인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을 의자 하나로 보여 준다.

판정. 맞다. 이 영화에서 제일 싼 장치이고 제일 잘 든다. 고글 쪽은 돈이 든 장치다. 의자는 아무 돈도 안 든다. 그런데 어머니의 부재를 고글 안의 가상 어머니보다 빈 의자가 더 정확하게 말한다. 가상 어머니는 말을 한다. 빈 의자는 말을 안 한다. 말을 안 하는 쪽이 더 아프다는 걸 영화 스스로 알고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자기 소재를 믿지 않는 영화라고 본다. 좋은 뜻으로 그렇다.

같은 집에서 틀린 것도 하나 적는다. 낡고 좁은 아파트인데 테라스가 이상하게 넓다. 한 리뷰어도 왜 저기 그런 테라스가 붙어 있는지 의아해했다. 세금 혜택이 붙는 자유사를 택할 만큼 빠듯한 집에 저런 테라스는 안 맞는다. 아마 사람 둘을 밖에 세워 놓고 말하게 할 자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사정은 알겠는데, 사정이 보이는 세트는 틀린 세트다.

물건 3. 폭포

어머니가 하려던 중요한 이야기는 끝에 나온다. 아들은 가상 어머니와 함께 가상 여행을 떠나 이즈의 폭포 앞에 선다. 거기서 어머니가 하는 말은 자유사를 택한 이유가 아니다. 자식에게 하는 평범하고 곧은 사랑의 말이다. 아들은 그게 중요한 이야기냐고 되묻는다. 그 말을 한 어머니는 진짜 어머니가 아니다. 기록을 학습한 계산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내놓은 답이다. 그러니 진짜 본심은 끝까지 모른다. 이 점을 두고 답답했다는 관객이 많았고, 나는 그쪽이 아니다.

판정. 맞다. 영화가 제일 사람다운 말을 제일 가짜인 장소에서 하게 했다. 진짜 폭포로 갔다면 그 말은 그냥 유언이 됐을 것이다. 가짜 폭포 앞에서 하니까 그 말은 유언이 아니라 질문이 된다. 저 말이 어머니의 것인가, 계산의 것인가, 아니면 듣고 싶었던 아들의 것인가. 영화는 답을 안 준다. 물건이 답을 대신한다. 폭포가 가짜라는 사실이 답이다.

가상 어머니가 푸르게 빛나는 홀로그램으로 나왔다면 나는 거기서 껐을 것이다. 고글을 벗으면 사라지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어머니로 만든 것이 이 영화가 한 결정 중 제일 옳은 결정이다. 비싼 미래를 보여 주는 대신 싼 현재를 조금만 밀었다. 그래서 무섭다.

마지막 장면은 손이다. 아들의 손과 여자의 손이 겹친다. 고글 없이, 데이터 없이, 살아 있는 사람 둘의 손. 이 장면을 희망으로 읽은 글이 많다. 나도 희망이라고 본다. 다만 이 영화가 두 시간 동안 보여 준 물건들이 전부 손을 쓰지 않는 물건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희망은 좀 작다. 작아서 믿을 만하다.

추신.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았다. 10월 2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아트나인에서 열리는 일본 영화 기획전에 걸린다. 넓은 테라스가 신경 쓰이는 사람은 극장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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