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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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죽은 사람은 데이터로 돌아온다

환한색칠· 2026. 10. 26.· 2,756자

세탁기 돌리는 동안 봤다. 두 시간 조금 넘는 영화라 빨래가 먼저 끝났고, 다 마른 빨래를 개면서 남은 삼십 분을 봤다(개다가 멈춘 수건이 한 장 있었다. 어디서 멈췄는지는 뒤에 쓴다).

요즘 죽은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이야기라면 수순이 있다. 남은 사람이 사진과 영상과 목소리를 모은다. 회사가 그걸 학습시킨다. 어느 날 고글을 쓰거나 화면을 켜면 그 사람이 거기 있다. 남은 사람이 운다. 그다음에 작품마다 갈림길이 있는데, 되살린 쪽이 진짜보다 좋아서 문제가 되는 길과, 되살린 쪽이 가짜라는 걸 끝내 들키는 길이다. 「본심」은 둘 중 어느 길로도 끝까지 가지 않는다. 그게 이 영화의 자리다. 어디쯤인지 말하려면 앞에 선 둘을 먼저 세워야 한다.

이 흐름의 출발점으로 나는 2020년 2월에 방송된 「너를 만났다」를 꼽는다. 지상파 다큐멘터리가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아이를 가상현실로 세워 어머니와 만나게 했다. 제작진은 가족이 가진 사진과 영상에서 표정과 몸짓을 모았고, 목소리는 남은 영상이 몇 분 안 돼서 또래 아이 다섯 명이 각각 팔백 문장 넘게 녹음한 것을 학습시켜 만들었다고 기사에 나온다. 여덟 달이 걸렸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엄마 이제 울지마」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어디 있느냐, 만지고 싶다고 했다. 방송이 끝난 뒤 어머니가 한 말이 더 오래 남았다. 가까이서 보면 우리 아이와 많이 다른데, 멀리서 뛰어갈 때 얼핏 보이는 모습은 비슷하더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 한 줄에 이 장르의 전부가 들어 있다고 본다. 데이터는 멀리서 보면 사람이다.

그다음이 2024년 6월에 개봉한 「원더랜드」다. 여기서는 그 만남이 서비스가 됐다. 죽은 사람이나 그에 가까운 상태의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해 영상통화를 걸어 주는 회사가 있고, 플래너가 있고, 요금이 있다. 어린 딸에게 자기 죽음을 숨기려고 복원을 의뢰한 어머니가 있고, 사고로 누워 있는 남자친구를 우주인으로 복원해 매일 통화하는 여자가 있다. 그 남자친구가 깨어나 돌아오자 여자의 마음이 흔들린다. 복원된 어머니는 서비스가 갑자기 종료되면서 오류를 낸다. 한 리뷰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이 옷이나 차가 필요하다며 결제를 유도하는 대목을 짚었다. 2020년에 눈물이던 것이 4년 만에 과금이 됐다.

본심 포스터

「본심」은 2024년 11월에 일본에서 개봉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개봉 없이 이번 달부터 서울의 한 예술영화관 기획전에 걸려 있다. 원작 소설은 2040년의 이야기인데 각본을 쓴 감독이 2025년으로 당겼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니까 작년 이야기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들은 어머니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전화한 날 폭우로 넘친 강가에 선 어머니를 구하려다 물에 뛰어들고, 일 년 뒤 깨어나 어머니가 자유사라는 제도의 인가를 받아 세상을 떠났다는 걸 형사에게서 듣는다. 어머니를 데이터로 세우는 회사의 기술자는 아들에게 미리 말한다. 이 가상 인물에게 감정은 깃들지 않는다. 쓰는 사람이 감정이 깃들었다고 믿어 버릴 뿐이다.

앞의 둘과 대어 보면 이 영화가 흐름을 따른 곳은 분명하다. 다시 세운 사람은 고글 안에만 있고, 벗으면 없다. 아들은 그 앞에서 말을 고르지 못한다. 다큐멘터리의 어머니처럼, 「원더랜드」의 어머니처럼. 벗어난 곳도 분명하다. 앞의 둘은 되살린 사람이 가짜라는 사실을 숨기거나(「원더랜드」의 딸은 어머니가 죽은 줄 모른다) 울음으로 덮는다(다큐멘터리는 만남 자체가 목적이다). 「본심」은 가짜라는 사실을 쓰는 사람이 처음부터 알고, 파는 쪽이 먼저 말해 준다. 그래서 질문이 바뀐다. 이 어머니가 진짜냐가 아니라, 가짜인 줄 알면서도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이 영화에만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들의 일이다. 그는 리얼 아바타라는 일을 한다. 카메라가 달린 고글을 쓰고 멀리 있는 의뢰인의 지시대로 걷고, 사고, 여행한다. 어떤 의뢰인은 그를 쓰레기처럼 대한다. 감독은 원작에 없던 폭력을 의뢰받는 장면을 새로 넣었다고 했다. 「원더랜드」에는 복원하는 회사 쪽 사람이 있었지만 몸을 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 영화는 밤에 고글 안의 어머니를 보는 사람이 낮에는 고글 밖에서 남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사는 사람이라는 걸 한 사람에게 다 얹었다. 되살리기 영화 중에 되살리는 쪽의 노동을 주인공에게 시킨 건 내가 본 것 중 이 영화가 처음이다.

수건을 개다가 멈춘 장면은 빨래방이다. 아들이 거기서 청소하는 여자를 돕는다. 원작에서는 편의점이었다는 글을 읽었다. 대단한 장면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고글 없이 사람이 사람을 돕는 드문 대목이라서 손이 멈췄을 뿐이다. 비슷한 영화라면 이 자리에 데이터로 만든 사람과 포옹하는 장면을 넣는다. 이 영화는 그 자리를 살아 있는 두 사람에게 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겹치는 두 손도 고글 밖의 손이다.

정색하고 한 가지만 적는다. 이 장르는 2020년에는 남은 사람을 울리는 데서 끝났고 2024년에는 남은 사람에게 결제를 요구하는 데까지 왔는데, 「본심」은 그 둘을 다 지나서 남은 사람이 사실은 묻고 싶은 게 하나밖에 없다는 자리까지 간다. 어머니는 왜 그랬나. 데이터는 그걸 모른다.

끝에 아들은 가상의 어머니와 이즈의 폭포로 가상 여행을 간다. 거기서 어머니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자식에게 하는 평범한 말을 한다. 주인공에게 공감이 안 됐다는 리뷰도, 소재가 너무 많다는 리뷰도 읽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되살리기 이야기 세 편을 나란히 놓고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데이터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원래 그 정도고, 그걸 아는 영화가 이제야 한 편 나왔다.

빨래는 다 갰다. 수건 한 장은 다시 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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