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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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 년을 당긴 미래의 유효 기간

지도대장· 2026. 10. 26.· 2,972자

왜 감독은 2040년을 2025년으로 당겼을까? 원작 소설은 2040년의 이야기다. 각본을 직접 쓴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 해를 2025년으로 옮겼다고 밝히면서, 이 이야기는 지금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영화는 2024년 11월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개봉하는 날로부터 두 달 뒤가 이 영화의 미래였다는 뜻이다. 나는 이 숫자 하나가 영화를 보는 자리를 정한다고 생각한다. 2040년의 이야기라면 우리는 구경꾼이다. 2025년의 이야기라면 우리는 당사자고, 2026년에 보는 우리는 그 해를 이미 지나온 사람이다.

영화의 사정부터 적는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들은 어머니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전화한 날, 폭우로 넘친 강가에 서 있는 어머니를 구하려다 물에 뛰어들어 일 년을 잠든다. 깨어난 그에게 형사는 어머니가 자유사라는 제도의 인가를 받아 세상을 떠났다고 알린다. 그는 어릴 적 친구의 소개로 리얼 아바타라는 일을 시작한다. 카메라가 달린 고글을 쓰고, 멀리 있는 의뢰인의 지시에 따라 대신 장을 보고 대신 여행을 한다. 그러다 가상 공간에 사람을 세우는 기술을 알게 되고, 그 기술자에게 어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일은 영화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2021년 6월, 도쿄 니혼바시에 분신 로봇 카페라는 상설 실험 매장이 문을 열었다. 카메라와 마이크와 스피커가 든 로봇을, 난치병이나 중증 장애로 집 밖에 나가기 어려운 사람이 자기 집에서 원격으로 움직여 손님을 맞고 음료를 내준다. 개점 기사에 따르면 조종사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이 쉰 명이었고, 몸 상태가 좋은 사람은 일주일에 두세 번, 한 번에 두세 시간을 일했다. 이 카페를 만든 사람은 이 일을 아바타 워크라고 부르면서, 알기 쉽게 말하면 육체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재택근무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리얼 아바타는 이것을 뒤집은 그림이다. 카페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로봇의 몸을 빌린다. 영화에서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몸을 남에게 빌려준다. 빌리는 쪽과 빌려주는 쪽이 바뀌었을 뿐 구조는 같다. 공간으로 보면, 두 경우 모두 일하는 사람이 있는 자리와 일이 벌어지는 자리가 다르다. 카페의 조종사는 자기 방에 있고 일은 니혼바시에서 벌어진다. 영화의 아들은 길 위에 있고 일을 시키는 사람은 어딘가의 방에 있다. 영화는 이 어긋남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게 만드는지를 본다. 어떤 의뢰인은 그를 쓰레기처럼 대한다. 감독은 원작에 없던, 폭력을 의뢰받는 장면을 새로 넣었다고 했고, 자기 몸을 남에게 빌려주고 대리로 움직이는 이 풍경이 이미 일상에 넘쳐 있다고도 했다. 그 인터뷰의 제목은 더 직접적이다. 전화 너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특수 사기의 실행범이야말로 리얼 아바타라는 것이다.

본심 포스터

또 하나의 기술도 영화 바깥에 있다. 영화가 개봉하고 한 달 뒤인 2024년 12월 10일, 일본의 한 장례 회사가 고인의 사진과 영상과 음성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웃는 영정을 만드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초기 비용은 9만 9,800엔부터였고, 자료를 받은 뒤 사흘이면 만들어진다고 했다. 한 경제지는 아흔여덟 살로 세상을 떠난 분의 영상이 나흘 뒤 밤샘 자리에서 처음 틀어진 사례를 전했다. 그보다 앞서 같은 해 4월에는 다른 회사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기억과 성격과 목소리를 재현해 대화할 수 있게 한다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주연 배우는 인터뷰에서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이런 서비스가 사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니 영화가 2025년이라고 쓴 것은 맞았다. 그런데 절반만 맞다. 그 영정은 정해진 문구만 말한다. 자유로운 대화는 아직 안 된다고 회사가 밝혔다. 영화의 어머니는 묻는 말에 답하고, 함께 가상 여행을 떠나고, 이즈의 폭포 앞에서 자식에게 하는 말을 한다. 영화는 2025년이라고 써 놓고 한 발은 2025년에, 한 발은 아직 오지 않은 해에 두고 있다. 아바타 노동은 영화보다 3년 먼저 와 있었고, 되살린 고인은 영화보다 한 달 늦게 왔지만 입이 덜 열렸고, 자유사라는 말은 영화 바깥에서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영화 안에서 그 틈을 가장 정확히 말하는 사람은 가상 인물을 만드는 회사의 기술자다. 그는 아들에게, 이 존재에게 감정은 깃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쓰는 사람이 감정이 깃들었다고 믿어 버리는 것뿐이라고. 믿어 버린다는 말이 어렵게 들리면 우리가 이미 하는 일 셋을 보면 된다. 길 안내 목소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면 고맙다고 한다. 자동 응답 문자에 답장을 쓴다. 세탁기가 다 됐다고 노래를 하면 수고했다고 말한다. 셋 다 감정이 없는 쪽에 감정을 얹는 일이고, 영화의 아들은 그 일을 어머니의 얼굴에 한다. 어머니를 연기한 배우가 사람일 때와 가상 인물일 때 눈이 다르다고 쓴 리뷰가 여럿인데, 아마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관객의 일이고 알아보지 않는 것이 아들의 일일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닿은 경로도 시대의 일부다. 정식 개봉은 없었고, 올해 10월 2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의 한 예술영화관에서 열리는 일본 미개봉작 열다섯 편 기획전에 들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2025년의 이야기를 2026년 가을에, 개봉 못 한 영화를 모아 보여 주는 자리에서 본다. 주연 배우는 개봉 때 인터뷰에서 앞으로 몇 년이 인류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몇 년 중 두 해가 지났다.

지금 보면 달리 보이는 지점은 결말이 아니라 날짜다. 2024년 11월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두 달 뒤의 경고였다. 2026년의 우리에게는 작년의 기록이다. 그 사이에 영정은 말을 시작했고, 카페는 2023년에 새 단장을 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다. 아들이 묻고 싶었던 것, 어머니가 왜 그 제도를 택했는지는 어떤 기술도 답하지 못한다. 폭포 앞의 어머니도 답하지 않는다. 그 답은 데이터에 없기 때문이고, 영화는 그걸 알고 2025년이라는 가까운 해를 골랐을 것이다. 멀리 두면 기술 탓을 하게 되고, 가까이 두면 사람 탓을 하게 된다.

이 영화의 미래는 유효 기간이 있는 미래다. 그 기한을 정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영정에 말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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