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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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는 터지고 오징어는 끌려간다
열아홉. 6화에서 한 군인이 입에 올리는 숫자다. 저것이 배 세 척을 가라앉히고 지금까지 열아홉 사람을 죽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 숫자를 듣고 나는 다른 영화의 해변을 떠올렸다. 1975년, 미국 동부의 섬 마을에서 상어 한 마리가 여름 한철 사람을 몇 죽이는 영화다. 그 영화에는 숫자를 세는 사람이 없었다. 셀 필요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몇이든 답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다로 나가 죽이는 것. 「빌로우」는 그 답을 받아 들고 네 시간 안팎을 돌려본 뒤 다른 답을 적는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각자 무엇을 택했는지 보려 한다.
1975년의 상어
원작 소설이 있다. 아미티라는 피서지 섬에서 젊은 여자가 바다에서 죽는다. 경찰서장 브로디는 해변을 닫으려 하고, 시장 본은 반대한다. 여름 장사가 섬의 한 해를 먹인다는 이유다. 해변은 열린 채 독립기념일을 맞고, 사람이 가득한 물에서 두 번째 희생이 난다. 그제야 브로디는 상어잡이 퀸트를 고용하고, 해양학자 후퍼와 셋이서 퀸트의 배 오르카에 오른다.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고, 그 단순함이 힘이다. 육지에서는 돈이 사람 목숨을 미루고, 바다에서는 세 남자가 그 미룬 값을 치른다. 퀸트는 밤에 전쟁 때 침몰한 군함에서 살아 나온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 그 상어에게 먹힌다. 브로디는 상어 입에 걸린 산소통을 총으로 맞혀 터뜨린다. 상어는 터지고, 남은 둘은 헤엄쳐 돌아온다. 끝.
잘 알려진 제작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기계 상어가 바닷물에 자꾸 고장 나서 상어를 마음껏 보여 줄 수 없었고, 그래서 지느러미와 통과 물결로 상어를 대신해야 했다는 것. 제약이 절제가 되었다. 상어는 보이지 않을 때 가장 컸다. 그리고 마침내 보였을 때 그것은 그냥 큰 물고기였다. 영화는 그 물고기에게 어떤 사정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먹고, 그래서 죽어야 한다.
2026년의 오징어
스눅스암은 뉴펀들랜드의 작은 어촌이다. 대구가 사라진 뒤 캘빈은 빙산 조각을 건져 보드카 회사에 팔아 산다. 마을에는 재정착 투표가 걸려 있다. 정부와 크로커 집안이 돈을 주고 마을을 비우겠다는 제안이고, 주민 아흔 퍼센트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여기서 첫 번째 차이가 생긴다. 1975년의 시장은 돈 때문에 마을을 열어 두려 했다. 2026년의 크로커는 돈 때문에 마을을 비우려 한다. 그 돈이 땅 밑 코발트와 구리에서 나온다는 것은 5화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방향은 처음부터 거꾸로다.
사냥은 이 드라마에도 있다. 3화에 서 존 프랭클린이라는 연구선이 들어온다. 선장 스티브는 그것을 산 채로 잡자고 하고, 캘빈은 길잡이로 배에 오른다. 4화에서 그 배는 거의 모든 것을 잃는다. 선원 둘이 고무보트를 훔쳐 달아나다 죽고, 라디오는 고장이고, 캘빈이 조타를 맡는다. 연구원 세이드가 작살로 추적 장치를 박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셋은 잠수정을 타고 내려간다.
이 장면이 이 드라마에서 내가 가장 정확하게 칭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닥에서 불을 켜고 기다리는 세 사람 위로 그것이 나타난다. 추적 장치가 박힌 자기 다리 하나를 스스로 끊어 낸 채다. 추적당하고 있음을 안다는 뜻이고, 그 앎을 사람에게 보여 준다는 뜻이다. 그것은 잠수정을 움켜 돌리고, 캘빈은 유리 너머로 그 눈을 본다. 사십 년 전 가라앉는 집 옆 물속에서 아이였던 그가 본 파란 눈이다. 캘빈은 지져 버리라고 소리친다. 두 연구자는 반대한다. 저것은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거라고. 잠수정이 위로 솟고 해치가 열리려 하고, 세이드가 스티브를 쏘고, 압력이 캘빈과 세이드를 바다로 뱉어 낸다. 사냥은 여기서 끝난다. 6화 중 4화다.
1975년 영화는 사냥을 마지막에 두었다. 이 드라마는 사냥을 중간에 두고 실패하게 한다. 그러고도 두 화가 남는다. 남은 두 화가 하는 일은 사냥을 대신할 다른 동사를 찾는 것이다.
그 동사는 옮기기다. 폰다는 항구에 들어온 빙산이 그것의 알주머니를 품은 둥지이고, 이 바다가 알을 품기에는 너무 따뜻하다는 것을 알아낸다. 군은 빙산을 폭격하려 하고, 크로커는 그것을 하늘이 내린 양식이라 부른다. 항구가 부서지면 돌아올 사람이 없고, 돌아올 사람이 없으면 땅은 그들 것이다. 캘빈 가족은 피난 헬리콥터에서 내린다. 메리가 총으로 빙산을 쏘아 쪼개고, 캘빈은 알주머니가 든 조각을 그물로 감아 배에 매고 깊은 물로 끈다. 그리고 줄을 끊는다. 1화 첫 장면에서 아이가 아버지가 든 집과 배 사이의 밧줄을 끊던 바로 그 동작이다. 그때는 살기 위해 끊었고 이번에는 살리기 위해 끊는다.
반대 의견을 먼저 쓴다. 이 결말이 싱겁다는 평이 적지 않다. 다섯 화 동안 쌓은 공포를 여섯 번째 화가 환경 이야기와 가족 협동 장면으로 바꿔 버린다는 것, 마지막 화의 대사가 낯간지럽다는 것, 리틀팟록의 섬사람들 이야기가 열린 채 버려진다는 것. 나는 이 지적들이 대체로 맞다고 본다. 특히 후반의 설명이 전반의 어둠에 비해 가볍다는 점은 변호할 길이 별로 없다. 그물 작전은 1975년의 산소통처럼 한 발로 끝나는 명료함이 없고, 군과 크로커의 대치도 지휘관의 명령 한 마디로 풀린다.
그런데 승패를 묻는 대신 무엇을 택했는가를 묻기로 했으니 그렇게 묻는다. 1975년 영화는 괴물에게 사정을 주지 않기로 택했다. 그래서 산소통이 터질 때 관객은 아무 유보 없이 기뻐할 수 있다. 그 기쁨은 깨끗하고, 깨끗함의 값은 괴물이 그냥 물고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괴물에게 사정을 주기로 택했다. 그것은 어미고, 물이 따뜻해서 올라왔고, 추적 장치가 박힌 다리를 스스로 끊을 만큼 안다. 사정을 주면 터뜨릴 수 없다. 터뜨릴 수 없으면 결말은 사냥이 아니라 다른 것이어야 하고, 다른 것은 사냥만큼 시원하지 않다. 그 시원하지 않음은 이 드라마가 치른 값이지 실수가 아니다.
한 가지는 더 해냈다고 생각한다. 1975년 영화에서 돈은 바다에 나가기 전에 끝나는 문제다. 시장은 틀렸고, 배가 떠나면 그는 화면에서 사라진다. 이 드라마에서 돈은 바다에서 돌아온 뒤에도 남아 있는 문제다. 캘빈이 깊은 물에서 줄을 끊고 돌아왔을 때 크로커는 여전히 거기 있고, 한 해 뒤 첫 투표가 무효가 되자 두 번째 투표를 밀고 있다. 괴물은 치웠는데 문제는 그대로다. 1975년에는 괴물이 문제였다. 2026년에는 괴물이 핑계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드라마는 괴물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괴물 이야기를 그만두는데, 그 그만둠이 이 작품의 주장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캘빈과 웨이드는 하이 호프스를 타고 나간다. 이번에는 아들이 조타를 잡는다. 수평선에 얼음이 있다. 전에 본 어떤 것보다 많다. 1975년 영화는 상어를 터뜨리고 두 사람을 헤엄쳐 돌려보냈고, 이 드라마는 한 마리를 떠나보내고 두 사람에게 더 많은 얼음을 보여 준다. 산소통은 한 번 터지면 끝이다. 얼음은 계속 온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결말인지는 취향이겠지만, 어느 쪽이 더 정직한지는 묻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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