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술래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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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의 약속은 달리기가 아니다
술래잡기의 약속은 달리기가 아니다. 이 문장을 먼저 적어 두고 시작하겠다. 「술래게임」은 디즈니+가 2026년 9월 30일부터 10월 21일까지 열 편으로 내놓은 추격 서바이벌 예능이다. 열세 사람이 장애물 많은 넓은 터를 운동장 삼아 쫓고 쫓기며, 그 사이에 정체를 숨긴 술래 하나가 섞여 있다. 보는 동안 나는 이 프로그램이 장르와 맺은 약속을 지켰는가 어겼는가를 계속 따졌다. 답은 「둘 다」였고, 어긴 쪽이 더 좋았다.
약속
모름지기 추격 서바이벌이란 몸이 몸을 잡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이다.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먼저 지치는가를 눈으로 확인시키고, 보는 사람의 심장을 뛰는 사람과 같은 박자로 올려 놓겠다는 약속. 제작진이 내세운 말도 「도파민」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거기에 다른 장르의 약속을 하나 더 얹었다. 숨어 있는 술래, 곧 마피아 놀이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말로 속이고, 표를 모으고, 뛰지 않고 이긴다. 연출자는 추격전만으로는 부족하고 마피아만으로는 승패가 극단적이 될까 봐 둘을 섞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내가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놀이터의 술래잡기에는 약속이 셋 있었다. 잡는 자가 있고, 잡히지 않는 자가 있고, 잡히면 역할이 넘어간다. 그리고 「잡히지 않는 자」의 방법에는 달리기만 있지 않았다. 숨는 아이가 늘 끝까지 남았다.
이행
첫 메인 매치 「경찰과 도둑」에서 약속은 가장 소박한 형태로 지켜진다. 경찰 셋이 범인 아홉을 쫓는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 육준서가 말왕에게 기습 태클을 날려 놀이를 작전으로 바꾸고, 야구장에서 은퇴한 황재균은 누구보다 빠르다고 공언한 그 다리로 달린다. 보는 쪽의 심박이 올라간다. 약속대로다.
두 번째 메인 매치 「개와 늑대의 시간」은 셋째 약속, 곧 역할의 교대를 규칙으로 옮겼다. 시간이 흐르면 사냥꾼과 사냥감이 바뀐다. 말왕과 육준서가 태그로 위를 차지하는 동안 윤상현은 규칙 안에 숨어 있던 「히든 늑대」 설정을 알아보고 혼자 이긴다. 뛰는 자와 읽는 자가 같은 판에서 각자 이기는 그림이고, 두 약속이 처음으로 한 장면에 겹친다.
결승이 약속의 가장 큰 이행이다. 다섯이 남았고, 종목은 다시 술래잡기였으며, 열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윤상현은 술래 역할을 빼앗는 도둑 아이템, 위치를 가리는 은신 아이템, 버티면 혜택이 오는 도박 아이템을 번갈아 쓰며 판을 흔들었고, 다리를 다쳐 뛸 수 없는 상태에서도 묘수를 냈다. 그리고 우승까지 4초를 남기고 말왕에게 잡혔다. 숨은 자리에서는 전광판이 보이지 않아 남은 시간을 몰랐다고 그는 뒤에 말했다. 열 시간을 머리로 버틴 사람이 마지막 4초에 다리로 잡히는 것. 이것이 추격 서바이벌이 애초에 보여 주겠다던 바로 그 그림이다. 황재균이 끝나고 한 말을 요약하면, 폐가 터질 각오가 없으면 다음 시즌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몸의 값이 그만큼 들었다.
배반
이제 어긴 쪽이다. 세 가지를 꼽겠다.
하나. 술래는 처음부터 박지민이었다. 둘째 회 끝에 술래의 존재가 공개되자 표는 윤상현에게 몰렸고, 그를 지목한 김똘똘이 역풍을 맞아 감옥에 갔다. 가장 의심받은 사람이 술래가 아니었고, 술래는 한참을 더 숨어 미션까지 성공했다가 말왕과 황재균의 추리에 걸려 들통났다. 그 사이 데스매치 「올드머니」는 경매였다. 윤상현이 장은실의 승부욕을 건드려 1억 2천만 원짜리 물건을 낙찰받게 했고 장은실은 그 때문에 떨어졌으며, 빠니보틀은 계산 실수로 함께 떨어졌다. 그 승부에서 아무도 뛰지 않았는데 둘이 사라졌다. 추격전의 약속으로 보면 명백한 배반이다.
둘. 마지막 메인 매치 「레인보우 캐치」는 움직일수록 점수가 깎이는 구조였다. 그러자 넷은 뛰고 넷은 숨었다. 뛰는 쪽에 있던 양다일은 「안 되겠다. 숨는 XX들을 죽여버리자」고 분을 터뜨렸고, 숨은 사람도 색깔 교환 카드를 바꾸러 딜러룸에 나와야 한다는 점을 잡아내 그들을 찾아내 이겼다. 추격 예능이 숨기를 유리하게 설계했다는 것, 그래서 화면에 아무도 뛰지 않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은 아마 이 프로그램이 받은 가장 흔한 불평일 것이다. 연출자 본인조차 「추격전이라고 해서 다 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했다.
셋. 첫 매치의 빠니보틀. 그는 뛰지 않고 제설함과 드럼통에 몸을 구겨 넣었다. 서바이벌 경력자가 택한 것이 달리기가 아니라 숨기였다는 사실은 그 회를 다룬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적혔다.
나는 이 셋을 변호하겠다. 숨는 것은 술래잡기의 배반이 아니라 본래 약속이다. 놀이터에서 끝까지 남는 아이는 가장 빠른 아이가 아니라 담벼락 뒤를 아는 아이였다. 양다일이 숨은 자들에게 터뜨린 분노는 보는 사람의 분노와 같은 것이었고, 그 분노가 카드라는 머리로 풀렸다는 사실이 그 회차를 좋게 만든다. 뛰는 사람이 뛰어서 이긴 것이 아니라, 뛰는 사람이 숨는 법을 읽어서 이겼다. 경매로 둘이 떨어진 승부도 마찬가지다. 뛰지 않는 사람이 뛰는 사람을 떨어뜨릴 수 있어야 술래라는 이름이 값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술래는 장식이다.
그래서 배반이 더 좋았다. 결승의 4초는 그 증명이다. 숨은 자가 열 시간을 버텼기 때문에 뛰는 자의 마지막 몇 걸음이 그렇게 커 보였다. 윤상현이 전광판을 볼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숨기의 값이 얼마였는지를 정확히 알려 준다. 숨는 자는 시간을 벌지만 시간을 보지 못한다. 연출자는 두 사람을 두고 말왕은 직선적이고 윤상현은 상황을 보고 달려들어 대비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 대비는 출연자가 만든 것이기도 하고 규칙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숨기를 벌하지 않는 규칙이 아니었다면 그 4초는 없었다.
한계는 적어 둔다. 경매 승부는 그 자체로는 추격 예능이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처럼 보였고, 그 시간 동안 내 심박은 내려갔다.
나는 어릴 적 숨는 쪽이었다. 술래잡기에서 내가 이긴 날은 전부 다리가 아니라 담벼락 덕이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숨는 자에게 열 시간을 허락하고, 그 열 시간을 뛰는 자의 4초로 거둬 간 결말이 공평하다고 느꼈다. 이걸 어떻게 짰나 싶었고, 나라면 숨는 쪽을 미워하지 않는 규칙을 짤 자신이 없다. 카메라 백 대가 스무 날 동안 장애물 사이를 노려보았다는데, 그 카메라 뒤의 손들이 숨은 사람을 찾아내는 즐거움과 뛰는 사람을 따라가는 즐거움 중 어느 쪽을 더 아꼈을지는 내 상상이다. 둘 다였기를 바란다.
술래잡기의 약속은 달리기가 아니다. 잡히지 않는 것이고, 잡히면 넘겨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 약속을 어기는 척하며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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