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4

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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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사람과 묻지 않는 사람

필름속산책자· 2026. 10. 30.· 4,154자

결론부터 쓰겠다. 「인사이드 르윈」은 같은 형제 감독이 네 해 앞서 내놓은 「시리어스 맨」과 같은 질문을 다시 묻는 영화다. 왜 이 사람에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가. 다만 앞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그 질문을 들고 뛰어다니고, 뒤의 영화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 대신 노래한다. 그 차이가 어디서 생기는지 두 영화의 장면으로 따라가 보려 한다. 두 영화의 결말을 다 말한다.

미리 적어 둘 것이 있다. 전작에 관한 내용은 기사와 리뷰로 확인한 것이다. 본 척하지 않겠다.

전작 · 세 번 묻는 사람

「시리어스 맨」은 2009년 가을 미국에서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2010년 3월에 걸렸다. 106분. 1967년 미네소타의 유대인 교외가 배경이고, 주인공은 물리학 교수 래리 고프닉이다. 영화는 옛이야기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동유럽의 밤, 한 남자가 길에서 만난 노인을 집에 들여 국을 권하고, 아내는 그 노인이 몇 해 전에 죽은 사람이니 떠도는 악령이라고 말한다. 남편이 웃자 아내는 노인의 가슴을 얼음송곳으로 찌르고, 노인은 피를 흘리며 눈 속으로 걸어 나간다. 그가 사람이었는지 악령이었는지 영화는 끝까지 말해 주지 않는다.

그다음부터 래리에게 일이 닥친다. 아내는 홀아비 친구와 결혼하겠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소파에서 자는 동생은 우주의 확률 지도라며 공책에 무언가를 끝없이 적는다. 낙제를 받은 학생이 현금 봉투를 두고 가고, 학생의 아버지는 뇌물이라고 말하면 명예훼손으로, 돈을 갖고도 성적을 안 올리면 절도로 고소하겠다고 한다. 래리는 랍비를 셋 찾아간다. 젊은 랍비는 주차장 이야기를 하며 관점을 바꿔 보라 하고, 둘째 랍비는 어느 치과의사가 유대인이 아닌 환자의 이빨 안쪽에서 히브리 글자를 발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답을 주지 않으며, 셋째 랍비는 바빠서 만나 주지 않는다. 래리와 아내의 새 남자는 같은 시각에 각자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는 쪽은 그 남자다. 장례식에서 그는 「진지한 사람」으로 추모된다.

결말은 이렇다. 종신 교수직이 통과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래리는 그 학생의 성적을 고쳐 준다. 바로 그때 전화가 울린다. 의사가 가슴 엑스레이 결과를 두고 지금 와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같은 시각 아들의 학교에는 토네이도가 다가오고, 선생은 대피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거기서 끝난다. 묻는 사람에게 답은 오지 않고, 답 대신 바람이 온다. 여러 글이 이 영화를 두고 까닭 없이 고난을 받고 왜냐고 묻는 옛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나는 거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그 옛이야기에서는 끝에 하늘이 입을 열었고, 래리에게는 전화벨이 울렸다는 것.

인사이드 르윈 스틸컷

이번 작품 · 묻지 않는 사람

「인사이드 르윈」은 2013년 5월 칸에서 처음 상영돼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2014년 1월 29일에 개봉했다. 105분. 1961년 2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는 코트도 없이 기타 하나를 메고 아는 사람들의 소파를 돌며 잔다. 듀엣을 하던 파트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혼자 낸 음반은 팔리지 않는다. 영화는 그가 「가스등」이라는 카페 무대에서 노래하는 데서 시작한다. 교수형을 앞둔 사람의 노래다. 노래가 끝나면 골목에서 양복 입은 남자가 그를 때린다. 왜 맞는지 그때는 모른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 르윈에게 일이 닥친다. 래리처럼. 하룻밤 재워 준 교수 부부의 고양이가 문밖으로 달아나 그의 팔에 안기고, 옛 연인 진은 임신했다며 누구 아이인지 모르니 수술비를 달라고 하고, 그 돈을 벌려고 참여한 우스개 노래 녹음에서 그는 인세 대신 현금 200달러를 택한다. 그 노래는 뒤에 크게 팔린다. 시카고로 가는 차 안에서는 몸집 큰 재즈 음악가가 지팡이로 그의 다리를 찌르며 떠들고, 휴게소에서 그 음악가가 약을 과하게 맞고 쓰러지자 르윈은 쓰러진 남자와 고양이를 차에 두고 걸어서 떠난다. 시카고의 큰 클럽 주인은 그의 노래를 다 듣고 나서 돈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남의 차를 몰고 돌아오는 눈길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여 다리를 끌며 숲으로 들어간다. 다시 배를 타려고 마지막 148달러를 선원 조합비로 내고 나서야, 선원 증서가 누나에게 버리라고 한 상자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안다. 재발급에 85달러가 든다. 그에게는 없다.

여기까지 늘어놓고 보면 래리와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것은 하나다. 르윈은 왜냐고 묻지 않는다. 랍비를 찾아가지 않고, 하늘을 보지 않고, 휴게소 화장실 벽에 누가 써 놓은 「너 뭐하고 있니」라는 낙서를 읽고 지나간다. 그 대신 그는 두 번 노래한다. 한 번은 교수 부부의 저녁 식탁에서다. 손님들 앞에서 한 곡 하라는 청을 거의 강요처럼 받고, 그는 죽은 파트너와 함께 녹음한 노래를 부른다. 교수 부인이 거기에 죽은 파트너의 화음을 얹는다. 르윈은 그 자리에서 폭발한다. 노래는 자기 직업이라고, 그러면 교수님을 저녁에 불러 강의를 시키느냐고. 부인은 울면서 식탁을 떠난다. 또 한 번은 요양원이다. 말을 걸어도 눈만 깜빡이는 아버지 앞에서 그는 기타를 꺼내 어릴 때부터 불렀던 청어잡이 배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 중간에 아버지의 얼굴이 움직인다. 노래가 끝나면 아버지는 바지를 적시고 있고, 르윈은 서둘러 나온다.

나는 이 두 장면이 「시리어스 맨」의 랍비 장면과 같은 자리에 놓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래리는 랍비에게 가서 묻고 답을 받지 못한다. 르윈은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난 자리에 울음과 젖은 바지가 남는다. 답이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다른 점은 묻는 쪽은 적어도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고, 노래하는 쪽은 그것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르윈은 아버지를 위해 그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고 한 평론은 적었다. 그는 자기가 왜 부르는지 모르는 채 부른다.

인사이드 르윈 포스터

사이 · 카메라가 서 있던 곳

되풀이되는 것 하나. 두 영화는 모두 답이 오기 직전에 끝난다. 「시리어스 맨」은 의사의 말을 듣기 전에, 토네이도가 닿기 전에 끊는다. 「인사이드 르윈」은 한 바퀴 돌아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르윈은 가스등 무대에서 다시 교수형 노래를 부르고, 이번에는 죽은 파트너와의 노래까지 부르고, 뒤이어 무대에 오른 낯선 젊은 가수의 노래가 들려오는 사이 골목으로 나간다. 양복 입은 남자가 그를 때린다. 전날 밤 그가 술에 취해 무대 위의 중년 여자 가수에게 야유를 퍼부었고, 그 여자의 남편이다. 아내는 그냥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남자는 말한다. 택시가 떠나고 르윈은 프랑스말로 작별을 말한다. 첫 장면에서 모르던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가 왜 맞았는지. 그러나 그가 이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두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끊는 것이 아니라, 답이 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자리에서 끊는다.

달라진 것 하나. 카메라의 자리다. 「시리어스 맨」은 두 곳을 번갈아 보여 주는 일이 잦다고 한다. 래리의 건강검진과 아들의 교실, 래리의 사고와 아내의 새 남자의 사고, 의사의 전화와 아들의 하교. 한 글은 이 교차가 사람들의 무력함과 우연의 연결을 보여 준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그 카메라는 래리 곁에만 있지 않다. 같은 시각에 두 곳에 있다. 두 곳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자리는 사람의 자리가 아니다. 래리가 묻는 상대가 있다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인사이드 르윈」의 카메라는 그 자리를 버린다. 일주일 내내 한 사람 곁에만 있고, 마지막 무대에서는 한 평론가가 짚은 대로 앞부분의 무대 장면과 달리 청중을 보여 주지 않고 노래하는 르윈에게만 머문다. 묻는 사람의 영화는 위에서 두 곳을 보고, 묻지 않는 사람의 영화는 옆에서 한 사람을 본다.

그러면 같은 질문을 다시 묻고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다만 질문을 쥔 손이 바뀌었다. 「시리어스 맨」에서는 래리가 묻고 영화가 답을 주지 않는다. 「인사이드 르윈」에서는 르윈이 묻지 않고, 그래서 그 질문이 보는 사람의 손에 떨어진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가. 왜 노래를 그만두지 못하는가. 르윈이 묻지 않으니 내가 묻게 된다. 전작에서 주인공이 하던 일을 이번에는 관객이 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전작에서 옮겨 온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지지한다. 한쪽은 눈으로 보고 한쪽은 글로 읽은 사람의 말이니 공정한 비교는 아니다. 그래도 답이 없다는 것을 노래로 듣는 쪽을 나는 오래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간다. 떠나는 택시 뒤에서 르윈은 프랑스말로 다시 보자고 말한다. 때린 사람에게 한 말인지, 떠난 밤에게 한 말인지, 한 바퀴 돌아 다시 올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인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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