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4
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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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자리에서 울지 않는 얼굴
「여기서 돈이 될 것 같진 않네요.」 시카고의 클럽 주인이 노래를 끝까지 듣고 나서 한 말이다. 그 말이 나오기 전에 르윈 데이비스는 꽤 긴 침묵을 혼자 견뎌야 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 침묵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 노래도 고양이도 아니고, 한 남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 초.
못난 고백부터 하겠다. 나는 남이 뭔가를 잘하는 걸 보면 일단 트집부터 잡는다. 부러우면 얄밉고, 얄미우면 딴청을 피우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연 배우가 노래를 전부 현장에서 직접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서 뭐」 하는 마음으로 봤다. 결과부터 말하면 졌다.
영화는 1961년 2월의 뉴욕이 배경이다. 형제 감독이 만들었고 2013년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으며 한국에는 2014년 1월 29일에 걸렸다. 105분. 주인공 르윈은 코트도 없이 기타 하나를 메고 남의 집 소파를 전전하는 포크 가수다. 듀엣 파트너는 세상을 떠났고 혼자 낸 음반은 팔리지 않는다. 이 글은 그 르윈을 연기한 배우가 이 배역에서 무엇을 골랐는지만 쓴다. 배우 개인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 중 배역과 관계있는 것만 빌려 온다.
빌려 올 것 하나. 영화에 나오는 노래는 여덟 곡쯤이고 전부 촬영장에서 연주하며 불렀다고 한다. 미리 녹음한 걸 틀어 놓고 입만 맞춘 장면이 없다는 뜻이다. 빌려 올 것 둘. 그는 촬영 한 달 전부터 가장 낡고 처량한 구두를 사서 신고 다녔다고 한다. 걸음걸이가 바뀌라고. 그러니까 이 사람은 노래로도 발로도 르윈을 연기한 셈이다. 얄밉다.
장면 1 · 눈을 감고 부른다
첫 장면. 가스등이라는 이름의 카페 무대에 르윈이 앉아 있고, 주변은 어둡고, 카메라는 얼굴을 바짝 당겨 잡는다. 교수형을 앞둔 남자의 옛 노래를 부른다. 이때 그는 눈을 감는다. 객석을 보지 않는다. 배우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옮기면, 르윈은 커피하우스에조차 너무 내성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눈을 감고 부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의 자세라고.
흔한 선택이었다면 어땠을까. 무대에서 노래하는 주인공은 보통 객석을 본다. 눈빛으로 호소하고, 클라이맥스에서 고개를 든다. 그게 「노래로 마음을 전한다」의 관습이다. 이 영화의 르윈은 전하지 않는다. 혼자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을 감은 얼굴이 뜬 얼굴보다 더 많이 보인다. 나는 노래방에서도 눈을 못 감는 사람이라 이게 좀 부러웠다.
장면 2 · 「아니요」 한 마디
르윈은 옛 연인 진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병원에 간다. 거기서 2년 전에 자기가 돈을 댔던 다른 여자가 수술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는다. 어딘가에 자기 아이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돈 얘기를 하러 간 자리에서 듣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르윈의 대사는 「아니요」 한 마디뿐이라고 배우는 말했다. 감독들이 그에게 준 주문은 아주 단순하게 하라는 것, 한숨을 쉬지 말고 시선을 돌리지도 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니, 보통의 배우라면. 눈을 한 번 질끈 감거나, 숨을 크게 내쉬거나, 창밖을 보거나. 소식의 무게를 관객에게 번역해 주는 동작이 하나쯤 들어갔을 것이다. 여기엔 그게 없다. 얼굴은 그대로고 말은 한 마디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들어오는 순간 관객 쪽이 먼저 숨을 쉰다. 번역을 배우가 안 하니까 내가 하게 된다.
배우는 이 배역을 준비하며 무성영화 시대의 어느 희극 배우 얼굴을 떠올렸다고 한다. 감정을 지시하지 않고 그냥 보여 주기만 하는 얼굴. 그게 「아니요」 장면의 설명서다.
장면 3 · 침묵을 버틴다
시카고. 어두운 사무실. 청중은 클럽 주인 한 사람이다. 르윈은 「퀸 제인의 죽음」이라는 옛 노래를 느린 속도로 부른다. 아이를 낳다 죽는 왕비의 노래다. 노래가 끝나고 침묵이 온다. 꽤 길다. 그리고 「여기서 돈이 될 것 같진 않네요」. 이어서 3인조에 들어오라는 제안이 오고, 르윈은 거절한다.
침묵 동안 배우가 하는 일을 적어 보면 이렇다. 아무것도 안 한다. 기타를 내려놓지도 않고, 변명을 시작하지도 않고, 상대의 얼굴을 살피지도 않는다. 한 평론은 이 거절이 그를 안에서 찢어 놓지만 겉으로는 감추고 있다고 썼다. 나는 그 「감춘다」가 이 배우의 선택 전체를 요약한다고 본다. 배우는 인터뷰에서, 르윈이 마침내 무너져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갈 수 있는 지점이 몇 번 있었는데 그쪽으로 가려 할 때마다 꾸민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말하고 느끼기로 했다고. 울 자리에서 울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우는 건 보는 사람 몫이 된다.
가장 좋았던 1초
마지막 무대. 르윈은 뉴욕으로 돌아와 가스등 카페에서 다시 노래한다. 첫 장면과 같은 자리인데 이번에는 죽은 파트너와 함께 녹음했던 노래를 혼자 부른다. 목소리가 앞의 장면들보다 거칠다. 한 평론은 그가 잃은 모든 것을 두고 곡하듯 부른다고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절을 단단하게 끝낸다. 흔들리지 않게. 나는 그 마지막 소절이 끝나는 1초를 꼽겠다. 영화 내내 「아니요」만 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뭔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순간이라서.
그 다음은 아시다시피 골목이다. 노래가 끝나면 양복 입은 남자가 그를 때린다. 영화는 그렇게 한 바퀴를 돈다. 그러니까 이 배우는 105분 동안 한 사람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이야기를, 조금도 나아지는 척하지 않고 연기한 것이다. 쉬워 보이는데 아무나 못 한다. 그게 얄밉다는 얘기를 세 번째 하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인사이드 르윈」을 봤다. 노래 잘하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얼굴 잘 버티는 영화였다. 볼까 말까 묻는다면, 한 사람이 거절당하는 얼굴을 끝까지 볼 자신이 있을 때 보라고 하겠다.
르윈 씨, 다음번엔 코트부터 좀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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