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17

드래곤볼 슈퍼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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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로 끝나는 이야기에 관한 문답

고요한땀· 2026. 11. 03.· 3,142자

어릴 때 드래곤볼을 보던 사람 하나가 물었다. 요즘 나오는 그 미래 편, 볼 만하냐고. 나는 길게 대답했고, 상대는 중간에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남은 대답을 여기에 적는다. 결말까지 다 말하므로 안 본 사람은 여기서 돌아가도 된다. 돌아간 사람에게 서운하지 않다고 미리 적어 두는 것으로 소심함의 기록을 대신한다.

오공블랙이라는 게 뭔가. 오공이 나쁜 쪽으로 돌아선 건가.

아니다. 얼굴만 오공이다. 10우주의 계왕신 제자 자마스가 슈퍼 드래곤볼에 소원을 빌어 다른 시간대의 오공과 몸을 바꾸고, 원래 주인을 죽였다. 그러니 저 얼굴은 훔친 얼굴이다. 작품은 이 사실을 2기 중반, 14화에서야 밝힌다. 그래서 전반부에는 오공이 오공을 때리는 그림이 계속 나온다. 내가 가장 오래 본 장면은 미래에서 날아온 트랭크스가 진짜 오공을 보고 반사적으로 칼을 뽑는 장면이다. 트랭크스는 1화에서 어머니와 함께 싸우던 사람을 한꺼번에 잃고 왔다. 같은 1화에서 오공은 피콜로와 농사 수확 내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이 밭에서 작물을 뽑는 동안 다른 시간대에서는 그 사람 얼굴을 한 자가 세상을 끝내고 있었다. 작품은 이 대비를 농담처럼 깔아 둔다. 농담 맞다. 다만 웃고 나면 얼굴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빌려지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럼 자마스는 왜 그러는가.

인간이 싫어서다. 신이 아닌 것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믿는다. 이 사람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따로 적는 것이 맞다고 보고, 여기서는 한 가지만 적는다. 자마스는 둘이다. 오공의 몸을 쓰는 자마스와, 불사의 몸을 소원으로 얻은 미래의 자마스. 하나는 무한히 강해지고 하나는 죽지 않는다. 이 둘이 손을 잡는 순간 작품은 「이기는 이야기」이기를 그만둔다. 나는 그 지점부터 이 작품이 좋아졌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다.

비루스가 자마스를 없애 버렸는데 왜 미래가 그대로인가.

나도 이 질문을 들고 봤다. 현재의 자마스가 스승 고와스를 해치려 들자 위스가 시간을 되돌려 막고, 비루스가 자마스를 소멸시킨다. 다 끝났다고 믿고 미래로 가 보면 그대로다. 블랙이 끼고 있는 시간의 고리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오는데, 나는 그 설명을 듣고 끄덕였다. 이해한 것과 끄덕인 것은 다르다. 그렇다. 다만 이 회차가 하는 일은 분명하다. 신이 신을 지워도 미래는 안 바뀐다는 것. 이 작품에서 「없앤다」는 말이 처음으로 무력해지는 순간이고, 마지막에 그 말이 다른 뜻으로 돌아온다.

드래곤볼 슈퍼 2기 스틸컷

트랭크스는 왜 오반을 만나러 가는가.

트랭크스의 세계에서 오반은 스승이었고, 죽었다. 현재의 오반은 학회에 가 있고 안경을 썼고 아이가 있다. 딸 팬이 트랭크스 얼굴에 우유를 뿜는다. 비델이 저녁을 짓는다. 트랭크스는 오반이 셀과 싸우던 때를 떠올린다. 6화에는 싸움이 거의 없는데, 내가 2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회차다. 자기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복수가 아니라 이것이 트랭크스가 과거로 온 보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작품은 다음 회차에서 곧바로 자마스의 행성을 비춘다. 좋은 저녁은 늘 그렇게 끝난다.

마지막에 전왕이 다 지워 버린다는데, 그거 반칙 아닌가.

반칙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고된 반칙이다. 1화에서 비루스가 말한다. 전왕은 무엇이든 없앨 수 있고, 기분이 나빠 우주 여섯 개를 없앤 적이 있다고. 9화에서는 그 전왕이 오공을 불러 친구가 되자고 한다. 그 뒤로 전왕은 한참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트랭크스는 새로운 초사이어인이 되고, 깨진 항아리로 봉인을 시도하고, 오공과 베지터는 합체까지 한다. 트랭크스가 합체 자마스를 반으로 베고도 자마스는 죽지 않고 하늘 전체로 퍼진다. 오공이 주머니를 뒤져 버튼을 누른다. 미래의 전왕이 와서 자마스와 함께 그 세계 전부를 지운다. 스무 회 넘게 싸웠는데 끝은 버튼이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이렇게 봤다. 이 이야기는 「싸워서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리 싸워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였다고. 자마스는 불사였고, 불사에게는 이김이 없다. 남는 선택은 지우는 것뿐인데, 지우면 지킬 것도 함께 지워진다. 작품은 그 계산을 끝까지 한다. 반칙은 반칙인데, 누른 사람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반칙이다. 농담으로 받아 둔 버튼이 가장 비싼 값을 받아 갔다. 나는 이 결말이 싫다는 글을 여럿 읽었고, 그 글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허무가 작품의 실수가 아니라 작품의 선택이라고 보는 쪽이다. 물론 내 해석이 작품에게 너무 후한 것일 수도 있다.

드래곤볼 슈퍼 2기 포스터

트랭크스와 마이는 왜 현재에 남지 않는가.

위스가 제안한다. 미래의 비루스에게 미리 알려 자마스가 손쓰기 전에 처리하게 한 시간대로 가라고. 그곳에는 또 다른 트랭크스와 마이가 산다. 둘은 간다. 베지터는 말 대신 주먹을 한 번 내밀고, 오반이 뒤늦게 뛰어온다. 나는 이 선택을 두 가지로 읽는다. 하나는 작품의 사정이다. 미래 트랭크스는 비상용 인물이고, 상비하면 값이 떨어진다. 다른 하나는 인물의 사정이다. 자기 자리를 두 번 잃은 사람은 세 번째 자리를 남의 집에서 찾지 않는다. 작품이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모른다고 적는다.

그 새 미래에 이미 살고 있는 트랭크스와 마이는 어떻게 되는가.

모른다. 작품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답하려고 문장을 세 개 썼다가 지웠다. 지운 문장 중 하나는 꽤 괜찮았는데, 괜찮은 문장이 맞는 문장은 아니다.

그래서, 볼까 말까.

보라. 다만 전반부 아홉 회쯤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신들의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이 많다. 농사와 학회와 차 끓이기를 견딜 수 있으면, 아니 그걸 좋아하게 되면 후반이 산다. 견디지 못하면 10화부터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10화에서 레지스탕스 아이들이 오공 얼굴을 보고 겁먹는 장면이 왜 아픈지 모르게 된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람은 한참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지우개로 끝나는 이야기를 왜 끝까지 봤는가. 아마 지워지는 쪽 사람들을 미리 알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오공의 얼굴에 겁먹던 아이들, 오공을 블랙으로 알고 총을 쏘던 어른들. 그들은 끝에 가서 지워진다. 작품은 그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고, 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지워지는 것을 스무 회 동안 준비했다. 준비가 됐냐고 묻는다면, 안 됐다. 되라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추신. 전화를 받고 돌아온 사람은 결국 보겠다고 했다. 어디부터 보냐고 물어서 1화라고 답했다. 농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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