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연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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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에 없는 과목

고요한땀· 2026. 10. 31.· 2,794자

「네 좋아합니다. 아주아주 많이.」 1회 끝에서 민재가 버스에 오르는 유진에게 던지는 말이다. 고백이 아니다. 두 사람이 방금 이야기하던 만화의 대사다. 자기 말로는 못 하는 것을 남의 말을 빌려 하는 사람. 나는 이 장면에서 이 사람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았고, 동시에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도 다시 알았다. 남의 글을 빌려 마음을 전해 본 사람은 안다. 그다음에 오는 것은 설렘이 아니라 후회다.

이 드라마를 볼까 말까 묻는 분들이 있어서 문답으로 정리한다. 질문도 내가 지었고 답도 내가 했다. 공정하지 않다는 점은 미리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 더. 열두 회 가운데 여덟 회가 방영된 시점에 쓰는 글이라 끝은 모른다.

로봇 연구실 드라마라는데 로봇이 많이 나오나.

나온다. 많이는 아니다. 1회에서 사은회장에 있던 서빙 로봇의 녹음 데이터가 사건의 증거가 되는 정도다. 이 드라마에서 로봇공학은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있어야 할 핑계에 가깝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직장 드라마에서 직장이 하는 일도 대개 그것이고, 내 직장이 하는 일도 생각해 보면 비슷하다.

남자 주인공이 다리를 잃었다는 설정이 눈물을 짜내는 데 쓰이지 않나.

걱정했던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드라마는 이 사실을 울리는 데 쓰지 않고 설명하는 데 쓴다. 민재는 고등학교 때 수영선수였고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1회에서 그는 느긋한 연구실 동료들에게 「내 몸이, 내 건강이 언제까지 허락할지 모른다」며 다그친다. 그가 왜 조급한지를 이 한 줄이 설명한다. 그다음부터 드라마는 이 사실을 다시 꺼내 흔들지 않는다. 의족을 신고 벗는 일은 그에게 양치질처럼 몸에 밴 일로 찍혀 있다. 그래서 상처가 화면에 나올 때 우는 쪽은 관객이 아니라 인물이다. 나는 그 순서가 맞다고 본다.

여자 주인공은 왜 의류학과에서 로봇공학으로 가나. 말이 되나.

1회에서 유진은 의류학과 교수의 사은회에서 벌어진 사건에 끼어들었다가, 교수가 그 일을 덮으려 하자 대학원 진학 기회까지 버리고 나온다. 그러니까 전공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전공에서 밀려난 것에 가깝다. 2회에서 민재를 찾아가 연구 계획서 쓰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고, 민재가 기계공학도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날 선 대답을 돌려준다. 말이 되느냐고 물으면 되묻게 된다. 진로란 무엇인가. 내 경우 진로는 계획이 아니라 도망친 방향의 다른 이름이었다. 유진이 도망친 방향에 민재가 있었을 뿐이다. 드라마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도 부르지 않겠다.

연애박사 스틸컷

달달한가.

달달하다. 다만 당도가 낮은 쪽이다. 비밀 연애가 시작된 뒤 민재는 유진과 처음 만난 날을 집 현관 비밀번호로 삼는다. 친구 결혼식에서는 둘이 같이 축가를 부른다. 강아지 머리띠를 쓰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있고, 유진에게 업무용 컴퓨터를 선물하는 장면도 있다. 이 목록을 적고 보니 내가 해 본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는 이사 올 때 전 세입자가 쓰던 것 그대로다. 그런데도 이 장면들이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는 사람이 처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유치할 권리가 있다. 드라마는 그 권리를 딱 그만큼만 쓴다.

그럼 싸우기는 하나.

싸운다. 7회에서 유진은 「선배는 날 안 좋아하는 거 같아」라고 한다. 연구실 동기가 자꾸 데이트에 끼어드는데 민재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다. 민재는 물에 빠진 둘 중 누구를 먼저 구하겠느냐는 질문에 유진이라고 답해서 분위기를 푼다. 나는 이 장면에서 웃었고, 웃고 나서 조금 무서웠다. 저 질문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저 질문이 왜 나오는지 아는 사람 가운데 민재는 후자다. 그는 문제를 풀어서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왜 출제됐는지 알아서 푼다. 박사과정생다운 접근이다. 3회의 장면 하나를 더 적는다. 농구장 벤치에서 민재가 연구실 동기 세진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유진은 그것을 멀리서 차갑게 본다. 아무 일도 아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 않게 되는 과정을 드라마는 끊지 않고 찍는다.

유진은 언제 민재를 좋아하게 됐나.

모르겠다. 이것은 내가 답을 못 하는 질문이다. 1회에서 유진이 뛰다 넘어졌을 때 민재는 손수건을 건네고, 그러면서 이족보행의 원리와 상처가 궤양이 되는 과정을 늘어놓는다. 버스에서 유진은 그를 계속 본다. 여기서부터인가. 그런데 2회에서 유진은 소개팅인 줄 알고 나간 자리가 연구실 동료들을 소개받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다. 그러니 그전부터인가. 드라마는 좋아하게 된 순간을 찍지 않는다. 찍은 것은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유진이 아는 순간들이다. 내 경우도 그랬던 것 같다. 시작은 모르고 중간부터 안다. 그리고 끝은 상대가 먼저 안다.

연애박사 포스터

제목이 연애박사인데, 민재는 연애박사가 되나.

8회까지는 아니다. 작가가 공부를 잘하는 것과 연인의 마음을 얻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제목은 반어다. 이 드라마에서 박사는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 1회에서 민재는 연구실 동료들의 조언을 듣고 버킷리스트에 연애를 적어 넣는다. 버킷리스트에 연애를 적는 사람. 이 한 줄이 제목의 전부다. 나는 적어 본 적이 없다. 적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민재는 적었다. 그 점에서 그가 나보다 낫다.

문답을 마치고 혼자 남은 말. 아직 네 회가 남았고 나는 끝을 모르므로 추천은 조건부다. 사건을 보러 가면 실망하고, 사람이 말을 더듬는 것을 보러 가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1회의 그 만화 대사로 돌아간다. 민재는 그 말이 남의 말이라서 할 수 있었다. 8회에 이르면 그는 「난 그냥 너한테 최선을 다하고 싶어」라고 자기 말로 말한다. 거기까지 가는 데 일곱 회가 걸렸다. 나는 그보다 오래 걸렸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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