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연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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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야구 배트, 버스

밤선율· 2026. 10. 31.· 2,059자

나는 대학원생이 명품 코트를 입고 나오는 드라마가 싫다. 등록금이 어디서 나는지부터 묻게 된다. 이 드라마의 두 사람은 버스를 탄다. 그래서 물건으로 판정하기로 했다. 신발, 야구 배트, 버스. 결론부터 말하면 셋 다 맞다. 이유는 아래에.

이 글은 열두 회 가운데 여덟 회가 방영된 시점에 쓴다. 남은 네 회가 물건을 어떻게 쓸지는 모른다.

물건 1. 신발

1회. 유진이 뛰다 넘어진다. 구두 굽이 부러진다. 민재가 양쪽 굽의 높이를 맞춰 준다. 부러진 한쪽을 고치는 게 아니라 양쪽을 맞춘다. 이 사람은 걷는 것을 균형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다. 수영선수였고, 지금은 한쪽 다리가 의족이다. 걷기에 관해 이 사람보다 오래 생각한 인물은 이 드라마에 없다. 신발이 처음 나오는 장면에서 그 사실을 대사 한 줄 없이 알려 준다. 맞다.

4회. 유진이 민재를 피해 다니는 아침에 민재는 연구실 동료들에게 신발을 자랑한다. 앞 회 끝에서 유진이 그를 두고 뛰쳐나갔는데, 다음 날 그는 신발 이야기를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의 소품으로 신발은 정확하다. 옷은 매일 바꾸니 티가 안 나고, 시계는 대학원생이 자랑하기엔 비싸다. 운동화는 자랑해도 되고, 안 비싸고, 걷는 것과 관계있다. 셋 다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유진이 민재의 의족에 운동화를 신겨 주다 울컥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놓고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신발을 신겨 주는 일은 상대의 발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드라마는 그 일을 유진에게 시킨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신발이 아니라 유진의 얼굴이다. 물건이 할 일을 하고 빠진다. 맞다.

연애박사 스틸컷

물건 2. 야구 배트

2회. 유진은 소개팅인 줄 알고 나갔다가 연구실 동료들을 소개받는 자리라는 것을 안다. 실망한 채로 연구실 견학을 한다. 거기 야구 배트가 있다. 동료들이 테스트해 보라고 부추긴다. 유진은 로봇을 향해 배트를 힘껏 내리친다. 연구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민재는 화를 낸다.

로봇 연구실에 야구 배트가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내가 알기로 로봇을 밀거나 쳐서 균형을 되찾는지 보는 시험은 실제로 한다. 그러니 배트는 소품이 아니라 장비다. 맞다. 틀린 것은 힘이다. 시험용으로 치는 것과 힘껏 내리치는 것의 차이를 유진은 모른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의류학과에서 왔다. 이 장면이 하는 일은 그것이다. 유진이 이 공간의 규칙을 모른다는 것, 그런데 시키면 한다는 것, 하면 세게 한다는 것. 드라마 내내 유진이 하는 일이 이 세 줄이다. 4회에 소개팅 가는 민재를 붙잡고 「선배님을 좋아해요,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라고 할 때도, 8회에 동기가 건 내기를 받아들일 때도 같다. 배트 한 자루가 인물 설명서다.

공간 이야기를 보탠다. 이 연구실에는 부서질 물건이 있고 휘두를 자리가 있다. 드라마 속 연구실이 흔히 유리벽과 파란 조명으로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이쪽이 맞다. 연구실은 전시장이 아니다. 물건이 부서지는 곳이다.

물건 3. 버스

이 드라마의 포스터는 버스 뒷좌석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고 유진이 민재의 어깨에 기대 있다. 1회의 첫 만남도 버스다. 학교 가는 길, 유진이 모르는 사람인 민재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 있다. 1회의 끝도 버스다. 유진이 버스에 오르고 민재가 인사를 던진다. 한 회에 버스가 세 번이면 그건 배경이 아니라 물건이다.

연애박사 포스터

버스가 맞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원생은 차가 없다. 있어도 이 드라마의 두 사람은 없는 게 맞다. 그리고 버스는 둘이 나란히 앉는 자리다. 마주 보지 않는다. 같은 방향을 본다. 나는 이 드라마의 연애가 그런 연애라고 본다. 포스터 속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한다고 쓴 기사를 읽었다. 그 말이 맞다면 이 포스터는 드라마를 요약한다. 나는 포스터가 드라마를 요약하는 경우를 많이 못 봤다. 대개 포스터는 배우 얼굴을 요약한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밤의 강변을 달렸다면 나는 껐을 것이다. 안 달렸다. 버스를 탔다.

판정 끝. 셋 다 맞다. 삐딱하게 볼 거리를 찾다가 못 찾은 글이 됐다. 그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물건을 보여 주는 데 시간을 쓰니 드라마는 느리다. 물건이 맞으니 사람이 보인다. 느리다. 좋다. 모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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