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극장판 닥터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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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서를 쓰던 사람과 메스를 쥐던 사람
청구서에 적힌 금액은 3만 엔이었습니다.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다이몬 미치코 선생이 병원 쪽에 내민 종이예요. 사람 둘의 목숨이 오간 수술의 값입니다. 이분은 그동안 자기 수술이 얼마짜리인지 몰랐습니다. 돈을 셈하는 일은 늘 다른 사람의 몫이었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의식 없이 누워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두 사람, 명의 소개소를 꾸려 온 칸바라 아키라와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칸바라의 자리
이분을 먼저 보겠습니다. 칸바라는 전직 외과의이고, 지금은 미치코에게 일을 소개하고 돈을 받아 주는 사람입니다. 영화는 이분의 젊은 시절을 보여 줍니다. 분쟁 지역에서 적으로 분류된 환자도 치료했고, 수혈할 피가 모자라면 자기 팔에서 피를 뽑아 환자에게 넣었습니다.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도 원래 이분이 쿠바에서 상대 진영의 환자에게 그 나라 말로 건넨 말이었습니다. 환자가 무서워하지 않게 하려는 약속이었고, 동시에 자기 손이 떨리지 않게 다지는 말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30년 전, 이분은 아주 어린 쌍둥이 형제를 수술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수술이었고 두 아이는 살았습니다. 형 코즈 히로토는 건강하게 자라 외과의가 되었고, 동생 타카토에게는 심장의 병과 걷지 못하는 다리가 남았습니다. 형은 그것을 평생 칸바라의 실패로 여겼습니다. 테이토 대학병원의 새 병원장으로 온 히로토가 명의 소개소의 칸바라를 보고 동요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영화 중반, 칸바라가 해변에서 쓰러졌을 때 히로토는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이유는 있었을 거예요. 걷지 못하는 동생을 지켜본 세월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영화도 그 점을 흐리지 않습니다.
미치코의 자리
미치코 선생은 처음부터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이번 영화가 처음 꺼낸 이야기예요. 옛 동료 모리모토 히카루가 이분의 고향인 히로시마 구레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수련의 시절을 함께한 카와노 아키히코를 만나 듣습니다. 그때의 미치코는 뒤처진 의사였다고요. 아버지를 잃고 흔들리던 때 칸바라를 만나 단련받았고, 모든 수술 전에 준비할 것과 잘못될 경우의 대처를 노트에 빼곡히 적는 사람이었다고요.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타고난 자신감이 아니라, 스승에게서 물려받아 매일 노트로 지켜 낸 말이었던 겁니다.
그런 사람이 스승이 쓰러진 뒤 무엇을 했는지 봅니다. 히로토가 차량 폭발로 생사를 다투게 되고, 동생 타카토는 형에게 자기 몸을 쓰라는 뜻을 남긴 채 먼저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타카토의 장기와 오른팔을 형에게 옮기고도 심장이 버티지 못했어요. 그때 미치코는 의식 없는 칸바라의 심장을 꺼내 히로토에게 넣고, 칸바라의 가슴에는 타카토가 만들던 인공심장을 넣기로 합니다. 본인에게 물을 수 없는 사람의 심장을 꺼낸 것입니다. 오랜 세월 이 병원을 지켜 온 히루마가 막아섭니다. 수술실 밖에서 칸바라를 오래 알던 사이의 이름으로 부르며 반대했어요. 미치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칸바라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이분의 유일한 근거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이분을 변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분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알아주고 싶어요. 아마 미치코에게 칸바라는, 자기가 쓰러졌을 때 똑같이 자기 심장을 꺼내 주었을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 이분이 12년 동안 혼자 메스를 쥘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겁니다.
둘 사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바란 것을 생각해 봅니다. 칸바라는 제자가 어떤 자리에서도 환자를 놓지 않는 의사가 되길 바랐을 거예요. 그래서 돈과 서류와 사람 상대하는 일을 전부 자기가 떠안았습니다. 제자의 손이 메스만 쥘 수 있게요. 미치코는 스승이 늘 그 자리에 있어 주길 바랐을 겁니다. 청구서를 쓰고, 소개소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으로요. 그래서 이분은 수술값이 얼마인지 모른 채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엇갈린 말이 한 쌍 있습니다. 칸바라는 영상으로 말을 남겨 두었습니다. 자기가 몸을 유지하며 버틴 이유는 의학이 앞으로 나아가 타카토를 고칠 날을 기다렸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다이몬 미치코는 나의 자랑」이라고요. 한 사람은 「기다리자」고 말해 두었고, 한 사람은 「지금」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말은 어긋난 채로 같은 곳에 닿습니다. 미치코가 스승의 가슴에 넣은 인공심장은 바로 타카토가 만든 것이고, 그것으로 칸바라는 다시 기다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히로토도 그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압니다. 칸바라가 동생을 버린 게 아니라, 고칠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다는 것을요.
관계가 바뀌었을까요. 마지막에 칸바라는 명의 소개소 사무실에 누워 있고, 마취과의 조노우치 히로미가 곁을 지킵니다. 발끝이 조금 움직여요. 미치코는 다시 가방을 들고 해외로 떠나 수술대 앞에 섭니다. 겉으로는 전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청구서는 미치코가 씁니다. 3만 엔. 스승이 하던 일을 어설프게 이어받은 숫자예요. 저는 이 숫자가 두 사람 사이에서 바뀐 전부이자,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곁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늘 뒤에서 셈을 해 주던 사람. 그 사람이 쓰러지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짜리 일을 하고 살았는지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어설프게라도 그 사람이 하던 일을 손에 쥐어 보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자리에 앉아 있어 주는 것. 저는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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