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극장판 닥터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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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은 다 차려 놓고, 숟가락을 바꿔 들었다
열두 해, 일곱 시즌, 스페셜 한 편. 그러고 나서 극장판 한 편으로 끝을 낸다는 작품이다. 이 정도 연식이면 다음 수순을 외우는 데 전문가가 필요 없다. 나처럼 소파에서 본 민간인도 다 안다. 그래서 극장판을 틀기 전에 수첩을 꺼내 예상 수순을 적어 두었다. 적어 두면 틀려도 할 말이 생기는 법이라 하겠다.
이 시리즈의 밥상 차림은 대체로 이렇다. 해외 어딘가에서 한 건 하는 프롤로그, 테이토 대학병원의 새 병원장 취임, 「교이(御意)」를 외치는 의국 회진 행렬, 아무도 못 하는 수술 앞에서 꽁무니 빼는 교수들, 그 수술을 혼자 떠맡는 다이몬 미치코 선생,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 수술 뒤에 날아가는 청구서와 멜론, 그리고 또 어딘가로 떠나는 뒷모습. 여덟 가지다. 아래에 예상과 실제를 나란히 두었다.
- 예상 외국에서 거물 환자 하나를 살리고 돌아온다. 실제 따랐다. 가상의 나라 우니카 공화국, 위독한 대통령, 총을 든 경비병, 그 사이에서 수술을 마치는 미치코 선생. 그런데 수고비를 받으러 온 스승 칸바라 아키라 씨는 제자를 본체만체 돌아서고, 미치코 선생은 헬리콥터에 실려 일본 앞바다에 내려진다. 떠날 때 거창했던 분이 돌아올 때는 해변에 떠내려 온 사람으로 발견되고, 옛 동료 모리모토 히카루 선생이 밥을 사 준다. 수순은 지켰는데 품위는 물에 빠뜨린 셈이다.
- 예상 새 병원장이 오고, 미치코 선생과 으르렁댄다. 실제 반만 따랐다. 병원장이 되어 있던 에비나 선생이 이사회 불신임으로 자리를 내놓고, 그 유명한 붙임 수염까지 떼는 장면이 있다. 새 병원장 코즈 히로토 씨는 수술 월 200건을 요구하고, 미치코 선생은 으르렁대는 대신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는 것이다. 으르렁거림은 다른 곳에서 터진다. 히로토 씨가 칸바라 씨를 보자 얼굴빛이 변하는 바로 그 자리다.
- 예상 의국 회진 행렬과 「교이」. 실제 행렬은 나온다. 다만 이번에는 그 행렬을 두고 「애벌레 같은 행렬. 쓸데없는 퍼포먼스네요」 하는 말이 나온다. 열두 해 동안 그 행렬을 지켜보신 분들께는 조금 섭섭한 한 줄이겠다. 나는 웃었다. 애벌레는 애벌레다.
- 예상 교수들이 미치코 선생을 쫓아내려 뒷조사를 한다. 실제 뒷조사는 맞는데 하는 사람과 목적이 다르다. 모리모토 선생이 쓰러져 미치코 선생에게 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몸으로 히로시마 구레에 간다.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서다. 낚시터에서 다시 나타난 부스지마 씨는 미치코 선생 아버지의 진료소가 테이토 병원 권력 다툼에 휘말려 문을 닫았다는 것, 스물다섯의 미치코 선생도 의국에서 쫓겨나 쿠바로 건너갔다는 것을 들려준다. 뒷조사 수순은 그대로인데 나온 결과가 약점이 아니라 이력서다. 다 차려진 밥상을 이렇게 물리는 법도 있다.
- 예상 아무도 못 하는 수술을 미치코 선생이 떠맡고, 의국이 반대한다. 실제 반대하는 쪽이 바뀌었다. 차량 폭발로 생사를 다투는 히로토 씨에게 동생 타카토 씨의 간과 오른팔을 옮기고, 그래도 심장이 멎자 의식 없는 칸바라 씨의 심장을 꺼내 넣기로 한다. 반대하는 사람은 의국의 적들이 아니다. 히루마 회장이 막고, 열두 해 동안 곁에 섰던 동료들이 하나같이 말린다. 미치코 선생은 「심장 받을게」 하고 칸바라 씨의 어깨에 손을 얹고, 혼자 집도한다. 적이 없는 수술실에서 모두가 반대하는 수술. 열두 해 만에 처음 보는 밥상이었던 것이다.
- 예상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 실제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가 붙어 나온다. 쿠바 시절 회상에서 칸바라 씨가 스페인어로 그 말을 환자에게 건네는 장면이 있고, 그 수술이 미치코 선생이 스승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들은 수술이었다고 한다. 그 말이 자신감이 아니라 다짐이었다는 풀이는 보신 분들 사이에 이미 돌고 있고, 나도 거기에 한 표를 보탠다. 아무튼. 열두 해 동안 명대사로 소비된 한 줄에 영수증을 붙인 격이다.
- 예상 청구서와 멜론. 실제 둘 다 나온다. 청구서를 쓰는 사람이 스승이 아니라 제자라는 점만 달라졌고, 그 금액은 이미 여기저기서 충분히 회자되었으니 나는 적지 않겠다. 수순 밖의 반찬이 하나 더 있는데, 원장실에서 카지 선생이 「좋아한다, 결혼해 줘」 하고 고백한다. 미치코 선생은 아무 말 없이 나가고, 카지 선생은 「안 합니다 정도는 말해 주라」고 혼자 투덜댄다. 열두 해 치 짝사랑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설계 오류인지 설계 의도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 예상 어딘가로 떠난다. 실제 떠난다. 중동 어느 부호의 수술실, 또 총을 든 사람들, 그리고 그 한 줄. 1번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명의 소개소 사무실에서는 조노우치 선생이 칸바라 씨를 돌보고, 돈 얘기를 꺼내는 순간 발이 조금 움직인다. 돈 얘기에 반응하는 것도 수순대로다.
여덟 가지 중 그대로 따른 것이 셋(1, 6, 8), 비틀어 따른 것이 넷, 뒤집은 것이 하나(5)다. 뒤집은 하나가 영화의 중심이니 비율로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그 뒤집음이 얼마나 무리인지는 보신 분들 사이에서 이미 말이 많다. 의식 없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일, 거부 반응 없이 끝나는 이식, 인공심장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걸 쓰면 되지 않았느냐는 민원까지. 나는 민간인이라 의학적으로는 판단할 자격이 없다. 다만 폭발한 차에서 나온 분이 수술대에 올라 남의 심장을 받는 데까지 가는 길이 좀 급하다는 것은 소파에서도 보였다.
구수한 것은 따로 있다. 1번의 헬리콥터다. 외국 대통령을 수술하고 눈을 가린 채 헬리콥터에 실려 일본 근해에 고무보트로 내려지는데, 그 헬리콥터가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는지 영화는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보신 분들 중에도 항속 거리를 따지신 분이 계시다 한다. 나는 따지지 않았다. 이 시리즈가 열두 해 동안 날아온 거리가 그보다 길다.
볼까 말까 하시는 분께. 1화부터 보신 분이면 8번에서 마음이 조금 움직일 것이고, 처음 보시는 분이면 5번에서 「이게 되나」 하실 것이다. 둘 다 정상적인 반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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