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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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하나, 목소리 하나, 그리고 넷

활보러· 2026. 11. 04.· 2,868자

첫 장면에 남자 둘이 있다. 한 사람은 허리에 추를 매고 바다로 들어가고, 남은 한 사람은 소리를 죽여 운다. 들어가는 쪽이 조시 브롤린, 우는 쪽이 존 오티즈다. 오티즈의 배역 이름은 휴이, 밋의 친구고 은퇴한 치과의사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그가 하는 일은 거의 이게 전부다. 나는 이 영화의 캐스팅을 여기서부터 세기로 했다. 주연이 고래 뱃속에서 70분 가까이 혼자 보내는 영화에서 조연은 앞뒤 30분에 몰려 있고, 그 30분이 뱃속을 떠받치는지 아닌지가 이 글의 질문이다.

기본 정보. 브라이언 더필드가 연출하고 대니얼 크라우스의 2023년 소설을 원작자와 함께 각본으로 옮겼다. 106분, 한국 개봉은 2026년 10월 14일. 오스틴 에이브람스가 아들 제이, 조시 브롤린이 아버지 밋, 엘리자베스 슈가 어머니 자라, 제인 레비가 큰누나 에바, 에밀리 러드가 둘째 누나 낸이다. 말기 중피종을 앓던 다이빙 보트 선장이 가족에게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바다로 들어가고, 1년 뒤 아들이 유해를 찾겠다고 혼자 잠수해 향유고래에게 삼켜진다. 공기는 한 시간. 뱃속 이야기는 다른 글들이 충분히 했으니 여기서는 사람만 본다.

에이브람스. 이 배역에서 그가 한 일은 상대 배우 없이 106분의 대부분을 버틴 것이다. 한 평은 그의 비명이 대사보다 많다고 썼다. 다른 평은 그가 전작에서 웃기려고 쓰던 그 비명을 여기서는 진짜처럼 쓴다고 했고, 또 다른 평은 각본이 밋밋해서 인물의 성격이 액션 사이에서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중간쯤이다. 뱃속에서 그가 하는 것은 연기라기보다 작업에 가깝다. 둘째 위에서 산에 손을 데고, 오징어 부리로 벽을 긁고, 잔압계를 본다. 혼잣말이 설명으로 들리지 않고 사람 말로 들리는 것은 됐다. 모자란 쪽은 후반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해야 하는데, 그 대화의 반응을 혼자 다 감당한다. 이 배우와 브롤린은 같은 해 「웨폰」에서 함께 나왔다. 한 평은 이 재회에 그 영화의 유머가 빠져 있다고 썼다. 맞는 말인데, 애초에 유머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영화다.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컷

브롤린. 밋은 첫 장면에서 죽고 그 뒤로는 회상에서만 산 사람으로 나온다. 회상에서 그가 하는 일을 세어 본다. 아들의 작은 폐활량을 비웃는다.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아들을 깎아내린다. 술에 취해 아들의 이마에 자기와 같은 흉터를 내려 하면서 고래가 더 존중할 거라고 말한다. 실험적 치료를 받아 보라는 아들에게 의사들에게 찔리고 쑤셔지며 살지 않겠다고 답한다. 평들은 한목소리다. 또 한 번 마초로 타입캐스팅됐다는 평, 문신을 두르고 바다를 두고 열변하는 한 음짜리 인물인데 배우가 그걸 부드럽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는 평. 나는 그 평들을 반쯤 받는다. 이 배역은 두 겹이다. 회상의 거친 아버지와 뱃속의 목소리. 브롤린은 첫 겹을 아주 넓게, 거의 한 색으로 칠했다. 그래야 둘째 겹이 들어올 때 낙차가 생긴다. 아마 그게 설계였을 것이다. 문제는 둘째 겹이다. 고래와 아버지가 겹쳐지는 그 목소리를 한 평은 눈이 돌아갈 만큼 느끼하다고 했다. 첫 겹을 그렇게 거칠게 칠한 배우가 둘째 겹에서 갑자기 다정해지면, 관객은 화해보다 교체를 본다.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것처럼 들린다는 뜻이다.

캐스팅이 이야기를 바꾼 지점은 여기다. 거의 모든 평이 회상이 너무 많다고 썼다. 나는 그 분량이 캐스팅의 무게에 비례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조시 브롤린을 아버지로 데려와 놓고 첫 장면에서 죽이기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회상은 인물의 상처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필요했겠지만, 이 배우를 쓰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뱃속의 시계를 멈추는 비용은 거기서 나왔다. 추측이다. 그러나 이름값이 분량을 부르고 분량이 구조를 바꾸는 일은 드물지 않다.

오티즈. 다시 첫 장면. 휴이는 밋의 계획을 알고 있던 사람이고, 밋을 그 바다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본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친구다. 아들은 어머니와 누나들이 몇 달을 설득해도 아버지를 보러 가지 않았고, 1년 동안 편지도 열지 않았다. 친구는 그 자리에 있었고 울었다. 영화는 이 차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이상 쓰지 않는다. 오티즈가 한 일은 작고 정확하다. 울음을 크게 하지 않는다. 그 장면 하나로 그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를 사랑한 사람이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더 쓸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포스터

슈, 레비, 러드. 집 장면에서 어머니와 두 누나는 아버지의 다정했던 순간을 웃으며 떠올리고, 제이는 그 기억에 없다. 누나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열었고, 제이는 열지 않고 잠수 장비 상자에 넣어 두었다. 누나 하나는 비어 있는 관을 두고 말한다. 이 세 배우가 한 일은 거기까지다. 평들도 그렇게 봤다. 익숙한 얼굴 이상으로는 남지 않는다는 평, 설명 아니면 배경 장식이라는 평. 가혹하지만 틀리지 않다. 가장 덜 쓰인 배우는 엘리자베스 슈다. 자라는 남편을 그렇게 잃고 1년 만에 아들을 같은 바다로 보내는 사람이다. 영화가 이 인물에게 시킨 일은 식탁에 앉아 있는 것과 마지막 보트에 타는 것이다. 한 평은 그의 출연 분량이 아주 적다고만 썼다. 더 쓸 말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정리. 이 영화의 캐스팅은 몸 하나, 목소리 하나, 그리고 넷이다. 몸은 됐다. 목소리는 첫 겹은 됐고 둘째 겹은 모자라다. 넷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1인극으로 만든 영화에 여섯을 캐스팅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여섯을 캐스팅해 놓고 1인극으로 만든 것이 문제다. 마지막에 제이는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보트에서 편지를 읽고 웃는다. 편지의 내용은 보여 주지 않는다. 그 화면에 가족이 다 있다. 영화가 이 네 사람에게 준 가장 긴 자리가 아마 그 장면일 것이다.

(덧) 첫 장면의 두 남자 중 한 사람만 이름난 배우였다면 나는 우는 쪽을 더 오래 봤을 것이다. 영화도 그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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