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19
귀멸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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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살대 앞으로 드리는 민원 다섯 건
스물여섯 화를 다 보신 분들께 먼저 여쭙는다. 보시는 동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대목이 한 번도 없으셨는지. 나는 다섯 번 있었다. 그런데 다섯 번 다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었다. 화면이 너무 예뻐서였다. 2019년 4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이 스물여섯 화는 숯 파는 소년이 귀신이 된 여동생을 상자에 넣고 다니며 귀신 잡는 조직에 들어가는 이야기이고, 그림이 한 컷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작품이다. 그러니 민원을 넣더라도 공손하게 넣어야 되겠다. 아래는 귀살대 민원실 앞으로 드리는 다섯 건이다.
민원 1 · 연설문과 처분이 다릅니다
1화. 눈밭에서 소년이 엎드려 여동생을 살려 달라고 비는데, 물의 호흡을 쓰시는 기유 님이 호통을 치신다. 약한 자에게는 권리도 선택도 없다, 강한 자에게 짓밟힐 뿐이다, 울지 마라, 절망하지 마라. 명연설이다. 그런데 연설이 끝나자마자 여동생을 살려 두시고 스승까지 소개해 주신다. 말씀은 강자의 논리, 처분은 약자 구제. 「연설과 행정의 불일치」라 하겠다. 시정 요청: 연설문을 처분에 맞춰 사전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 물론 그 불일치 덕에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나도 안다.
민원 2 · 보호 장비가 표적이 됩니다
3화와 4화. 반년 동안 안 베이던 바위가, 안개 속에서 나타난 스승의 옛 제자 두 분이 가르쳐 주시자 베인다. 알고 보니 두 분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안개 과다 사용은 넘어가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스승은 소년에게 여우 가면을 주며 지켜 줄 거라 하시는데, 최종 선별 산에 47년 전부터 갇혀 있던 손 많은 귀신이 바로 그 가면을 보고 스승의 제자만 골라 먹어 왔다고 한다. 열세 명을 먹었고 소년이 열네 번째라는 것이다. 지켜 주라고 준 물건이 과녁이었던 것이다. 「보호 장비 설계 결함」으로 접수한다. 시정 요청: 가면 교체, 또는 최소한 산에 누가 사는지 사전 점검.
민원 3 · 근무 중 수면자를 배치하셨습니다
12화. 젠이츠 님은 깨어 계실 때는 어린아이 목소리에도 비명을 지르시고, 귀신이 뇌를 빨아 먹겠다고 하자 기절해 코를 고신다. 그리고 잠든 채로 일어나 단칼에 귀신 목을 베신다. 깨어나서는 옆에 있던 아이가 구해 준 줄 알고 고맙다고 하신다. 17화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나는 이분이 밉지 않다. 다만 조직 입장에서 「근무 중 수면」이 유일한 전투 조건인 분을 현장에 배치한 것은 「인사 배치 오류」로 봐야 되겠다. 시정 요청: 출동 전 수면 유도, 또는 깨어 있는 동안의 비명 음량 조정. 둘 다 안 되면 하다못해 본인에게 알려는 주시기 바란다. 본인만 모르신다.
민원 4 · 회상이 너무 제때 옵니다
19화. 칼은 부러졌고, 여동생은 실로 짠 우리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상대는 열두 귀신 중 하나다. 그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 눈 속에서 횃불을 두르고 춤추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처음 써 보는 불의 춤이 단번에 된다. 이 회상은 왜 하필 지금 오는가. 반년 동안 바위를 못 벨 때는 왜 안 왔는가. 「회상 편의 제공」으로 접수한다. 다만 이 화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이 민원은 접수와 동시에 기각될 운명이라는 것을. 원작자가 보고 울었다는 그 장면이고, 나도 입을 다물었던 다섯 번 중 가장 길게 다문 자리다. 그리고 그렇게 멋지게 베었는데 20화에서 물의 주께서 오셔서 마무리를 하신다.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민원 5 · 시험 방식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22화. 아홉 분의 주 앞에서 재판이 열린다. 바람의 주 사네미 님이 여동생이 든 상자를 칼로 찌르시고, 그래도 안 나오자 자기 팔을 그어 피를 흘리신다. 누가 햇빛 아래서는 소용없다고 하자 상자를 그늘로 던지신다. 귀신이 사람 피를 참는지 보겠다는 시험이다. 찔리고 피 냄새를 맡고 그늘에 던져진 뒤에도 참아야 합격이라면, 그건 시험이 아니라 「유도 신문」에 가깝다 하겠다. 시정 요청: 시험 전 피험자 동의. 한편 같은 자리에서 스승과 기유 님이 보낸 편지가 읽힌다. 여동생이 사람을 해치면 자기들과 소년이 배를 가르겠다는 내용이다. 시험은 불공정했는데 보증은 과했다. 이 조직은 중간이 없다.
그래도 구수한 것 하나. 소년은 귀신을 베고 나서 그 귀신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손 많은 귀신에게도, 북 치는 귀신에게도. 잡는 쪽이 잡히는 쪽을 불쌍히 여기는 장면이 매번 들어가는데, 이게 뻔한 줄 알면서도 볼 때마다 조금씩 녹는다. 민원과는 별개로, 이 대목은 계속 넣어 주시기 바란다.
답변서를 작품 대신 써 본다면 이럴 것이다. 「귀하의 민원 다섯 건을 검토하였습니다. 본 작품은 왕도물로 기획되었으며, 호통치는 스승, 안 베이는 바위, 잠들면 강한 동료, 위기의 순간에 오는 회상, 상부의 불공정한 시험은 모두 장르의 규격 부품입니다. 본 작품은 부품을 바꾸는 대신 부품을 닦는 데 예산을 썼고, 그 결과 19화를 보신 귀하께서도 입을 다무셨다고 스스로 진술하셨습니다. 이에 민원 1·2·3·5는 「장르 사양」으로, 민원 4는 「접수와 동시에 기각」으로 처리합니다.」 나로서는 반박할 도리가 없다.
아무튼. 부품은 다 아는 부품인데 조립이 너무 좋아서 뜯어볼 생각이 안 드는 작품이었다. 처음 보시는 분들은 12화에서 젠이츠 님 때문에 끄고 싶어지실 수 있는데, 19화까지만 참아 보시기 바란다. 그 뒤에도 끄고 싶으시면 그때는 내가 알 도리가 없다.
추신. 위 민원 다섯 건 중 네 건은 다음 시즌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왕도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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