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19
귀멸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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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보다 먼저 온 스물여섯 화
2019년 4월 10일. 일본에서 1화가 나간 지 나흘 뒤, 한국 케이블 채널에 자막판이 걸린 날이다. 한국어 더빙은 그로부터 여섯 해 가까이 지난 2025년 1월에야 나왔다. 나는 그 여섯 해 동안 이 스물여섯 화를 안 봤다. 다들 본다는 것은 꼭 늦게 본다. (빨래 개면서 1화를 틀었고, 빨래는 3화쯤에 다 갰고, 그 뒤로는 바구니를 옆에 둔 채 그냥 앉아 있었다.)
흐름
요즘 소년만화 애니라면 수순이 있다. 티브이로 한 시즌을 내보내되 열두 화나 열세 화에서 한 번 끊고, 다음 장은 극장으로 보내고, 극장판이 끝나면 다시 티브이로 돌아오고, 그 사이에 넷플릭스에 자막으로 올라 먼저 퍼진다. 더빙은 맨 나중이다. 한국 넷플릭스 상위 열 편에 든 일본 애니 수가 2021년부터 해마다 늘어 2025년 9월에는 스물두 편이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애니 전문 서비스의 월간 이용자도 같은 기간 70만에서 100만으로 늘었다고 한다. 요컨대 자막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흐름이 생긴 것이다.
이 수순을 가장 교과서처럼 밟은 것이 2020년 가을에 시작한 주술 소년물이다. 스물네 화를 열세 화와 열한 화로 나눠 내보냈고, 마지막 화가 끝나자마자 극장판 제작을 발표했다. 1화에서 고등학생이 친구를 살리려고 저주의 손가락을 삼키고, 삼킨 그 자리에서 몸 안에 괴물을 들인다. 변하는 사람이 주인공 본인이다. 2022년 가을의 전기톱 소년물은 열두 화로 끝냈고, 매화 엔딩곡을 바꿨고, 역시 다음 장을 극장으로 보냈다. 1화에서 소년은 함께 살던 작은 악마와 계약해 제 몸을 바꾼다. 여기서도 변하는 사람은 본인이다.
이 작품
이 스물여섯 화는 셋 다 다르게 간다. 우선 끊지 않았다. 2019년 4월 6일부터 9월 28일까지 토요일 밤마다 쉬지 않고 스물여섯 화를 내보냈고, 제작사가 연속 2쿨을 만든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거꾸로 티브이보다 극장이 먼저였다. 방송 일주일 남짓 전에 1화부터 5화를 묶어 극장에서 먼저 틀었다. 요즘 수순이 「티브이 다음에 극장」이라면 이쪽은 「극장 다음에 티브이, 다음에 또 극장」이다. 그리고 변하는 사람이 본인이 아니다. 1화에서 숯 파는 소년은 그대로고, 여동생이 변한다. 주인공은 끝까지 사람이고, 바뀐 사람을 상자에 넣어 등에 지고 다닌다. 다른 두 작품의 주인공이 자기 안의 괴물과 싸우는 동안 이쪽은 등 뒤의 가족과 다닌다. 같은 장르 같은 수순인데 짐의 위치가 다르다.
엔딩곡도 한 번만 바꿨다. 19화에서 원래 엔딩을 빼고 그 자리에 주인공 이름을 붙인 노래를 전투 장면에서부터 깔았다. 전기톱 쪽은 매화 바꿔서 그게 제도가 됐고, 이쪽은 스물여섯 번 중 한 번만 바꿔서 그게 사건이 됐다. 어느 쪽이 낫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밥 먹다가 19화 끝에 노래가 바뀌는 걸 보고 숟가락을 든 채로 앉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흐름을 따른 곳도 있다. 7화에서 소년은 냄새를 따라 도시로 내려온다. 사람 많은 아사쿠사 거리, 그 인파 속에 평범한 차림의 원흉이 서 있다. 산속 다크 판타지가 도시로 내려와 「원흉은 멀쩡한 얼굴로 우리 옆에 있다」를 보여 주는 대목은 이 장르가 어디서든 한 번은 하는 처리다. 26화도 그렇다. 원흉이 약한 부하들을 정리하고 하나만 골라 피를 더 주고, 소년 셋은 기차 임무를 받는다. 다음 장이 극장이라는 예고를 마지막 화가 몸소 하는 셈이다. 수순은 이때 정해졌다.
벗어난 곳은 24화다. 19화에서 그렇게 큰 전투를 치렀으면 지금 같으면 바로 극장으로 넘기고 티브이는 쉬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뒤로 일곱 화를 더 쓴다. 재판을 받고, 저택에 눕고, 24화에서는 한 화를 통째로 기능 회복 훈련에 쓴다. 세 가지 훈련을 받고, 호흡을 하루 종일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그 사이에 저택 주인이 죽은 언니 이야기를 한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화다. 그런데 나는 이 화에서 처음으로 이 소년들이 사람으로 보였다. 큰 싸움 뒤에 몸을 고치는 시간을 한 화나 내준 작품은 요즘 흐름 어디에도 없고, 그 시간을 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흐름의 첫 줄에 서게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싸움은 어느 작품이나 한다. 쉬는 걸 보여 주는 작품은 드물다.
그러니까 이 스물여섯 화는 요즘 흐름을 따른 작품이 아니라 요즘 흐름이 베낀 작품이다. 분할도 안 했고, 극장이 먼저였고, 변하는 쪽이 본인이 아니었고, 큰 싸움 뒤에 한 화를 쉬었다. 그걸 다 하고도 마지막 화에서 기차표를 끊어 극장으로 갔다. 뒤에 온 작품들은 기차표 끊는 것만 배웠다.
여섯 해 늦게 봤고, 바구니는 아직 옆에 있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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