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19

귀멸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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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쪽이 한 화가 되기까지

막판뒤집기· 2026. 10. 26.· 2,607자

일곱 쪽. 애니메이션 1기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19화의 전투가 원작 만화에서 차지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먼저 밝혀 둔다.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다. 아래 원작 쪽 이야기는 전부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정리한 글과 기사로 확인한 것이고, 틀린 데가 있으면 내 쪽이 틀렸을 가능성이 크다.

원작은 2016년 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주간지에 연재됐고 단행본 23권으로 끝났다. 2019년 4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이 1기 26화는 그중 앞쪽 일곱 권, 50장 남짓을 옮겼다. 연재 초기의 원작은 이야기와 인물은 좋지만 전개가 급하고 그림이 거칠다는 평을 받았고, 애니메이션이 끝난 뒤에야 원작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는 편집장의 말이 기사에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 1기는 원작을 옮긴 작품이면서 원작의 평판을 바꾼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을 바꿨길래 그랬는지가 궁금했다.

귀멸의 칼날 스틸컷

원작 / 이 작품

  • 설명 상자. 원작은 칸 밖에 글로 적는 설명이 많다. 이 작품은 그 설명을 거의 다 걷어 내고, 남길 것은 인물의 독백과 대사로 바꿨다.
  • 1화의 배웅. 원작에서는 숯을 팔러 내려가는 소년을 가족이 무표정하게 배웅한다. 이 작품에서는 가족이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배웅하고, 그 앞에 대화가 더 붙었다.
  • 19화의 전투. 원작은 일곱 쪽이다. 실을 한 번 자르고, 아버지의 춤을 떠올린 뒤 불의 기술로 한 번 더 자르고, 바로 목을 노린다. 이 작품에서는 상대가 물러나고 소년이 숲을 가로질러 쫓는 추격전이 통째로 추가됐다. 상대가 실 몇 가닥 대신 거미줄을 통째로 던지는 것, 맨손으로 때리고 차는 것도 애니메이션에만 있다. 여동생의 피가 원작에서는 소년의 얼굴에 떨어지는데, 여기서는 칼날에 떨어진다.
  • 13화의 북 귀신. 이 작품에는 소년이 귀신에게 이름을 묻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목과, 귀신이 사라지기 전의 회상 한 번이 원작보다 더 들어갔다. 같은 장면이 두 번 나온다는 지적을 받은 화다.
  • 말투. 원작에서 나비 저택의 소녀는 「넌 누구야」 하고 거칠게 묻는다. 이 작품에서는 공손하게 묻는다.

왜 바꿨을까,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셋만 골라 본다. 이유는 전부 내 추측이고, 제작진이 말한 것이 아니다.

첫째, 설명 상자를 뺀 것. 아마 화면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화면에 맡기자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얻은 것은 흐름이다. 글을 읽으려고 멈추는 자리가 없어졌다. 잃은 것도 있다. 설명 상자가 하던 일을 독백이 떠안다 보니 인물이 자기가 뭘 하는지 계속 말로 설명한다는 불평이 생겼다. 더 큰 손실은 눈에 덜 띈다. 원작에서 설명 상자가 메워 주던 남매의 정이 화면에서는 눈빛과 상자 하나로만 전달되어야 했고, 한 평은 19화의 감정이 그때까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고 썼다. 나는 그 평에 반쯤 동의한다. 반은 화면이 메웠다고 본다.

둘째, 1화에서 가족이 웃는 것. 떨어지는 높이를 높이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같은 돌도 높은 데서 떨어지면 소리가 크다. 에어컨 켠 방에서 나오면 같은 날씨가 더 덥다. 월급 들어온 다음 날 잔고가 더 아프다. 무표정한 배웅에서 참극으로 가는 것과, 웃는 배웅에서 참극으로 가는 것은 같은 사건인데 낙차가 다르다. 얻은 것은 그 낙차다.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굳이 적자면, 원작의 무표정에는 가난한 집의 아침이 원래 그렇다는 현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귀멸의 칼날 스틸컷

셋째, 일곱 쪽을 한 화 가까이로 늘린 것. 여기서 계산을 하나 해 보자. 주간 연재 한 회가 스무 쪽 안팎이라 치면 50여 장은 1,000쪽쯤이다. 26화에서 여는 노래와 닫는 노래를 빼면 한 화에 20분쯤이니 전체는 520분이다. 어림잡아 한 쪽에 30초다. 그 비율이면 일곱 쪽은 3분 반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한 화의 대부분이다. 평균의 예닐곱 배를 쓴 셈이다. 이 가정은 거칠다. 주간 연재 쪽수도, 화마다 노래 길이도 다르다. 그래도 자릿수는 맞을 것이다.

얻은 것은 다들 안다. 원작자가 보고 울었다는 장면, 방송 당일 세계 곳곳에서 화제가 된 장면이 생겼다. 잃은 것은 같은 방법을 다른 데 썼을 때 드러난다. 13화도 늘렸는데 그쪽은 늘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연장인데 왜 결과가 다른가. 내 생각에 늘린 것의 종류가 다르다. 19화는 움직임을 늘렸다. 쫓고, 자르고, 던지고, 맞는다. 13화는 말을 늘렸다. 이름을 묻고, 선언하고, 회상한다. 움직임은 늘릴수록 보는 사람의 시간이 빨리 가고, 말은 늘릴수록 느리게 간다. 틀릴 수 있는 생각이지만, 이 1기 안에서는 대체로 맞아 보인다.

귀멸의 칼날 스틸컷

피가 얼굴이 아니라 칼날에 떨어지게 바꾼 것도 같은 줄에 있다. 글로 설명할 수 없으니 그림으로 설명해야 했고, 피가 칼에 묻어야 다음 장면에서 칼이 불타는 이유가 보인다. 작은 변경인데 설명 상자 하나를 대신한다. 이 작품이 원작을 옮긴 방식은 결국 이것이었다고 본다. 글로 하던 설명을 전부 움직임으로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독백으로 남기고, 그 독백이 많다는 불평은 감수한다.

종이에 그린 일곱 쪽과 빛으로 그린 20분은 물리적으로는 둘 다 아무 의미가 없다. 잉크와 화소의 배열일 뿐이다. 그런데 한쪽을 그린 사람이 다른 쪽을 보고 울었다. 자기가 만든 것이 다른 재료로 다시 만들어진 것을 보고 우는 일은, 내가 아는 한 사람만 한다.

원작을 읽은 분이라면 어느 쪽이 더 좋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직 한쪽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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