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마티 슈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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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응원했고 나는 말렸다

예민한책장· 2026. 10. 30.· 2,259자

밤 열한 시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 그거 봤지」가 첫마디였고 「마티 걔 어떻게 생각하냐」가 둘째 마디였다. 이 친구는 뭘 보고 나면 반드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잠이 오는 사람이라, 나는 그날 일찍 자기는 틀렸음을 알았던 것이다. 아래는 그 통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작품 속 사실은 확인한 것만 남겼고, 친구의 말은 친구의 말이라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

친구 걔 사랑스럽지 않냐. 구두 가게 점원이 세계 챔피언 하겠다고 런던 리츠 호텔에 들어앉는 거, 나는 거기서부터 졌다.

나 배짱은 인정한다. 다만 그 호텔 방값을 치를 능력은 없었다는 점을 짚어 두어야 되겠다. 런던 결승에서 일본 챔피언 엔도 선수에게 지고, 재대결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고, 벌금 1,500달러까지 떠안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보통 스포츠 영화라면 여기서 새벽 훈련 장면이 나올 차례다. 이 작품에는 훈련이 없다. 대신 돈을 구하러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친구 그게 걔 방식이지. 걔는 연습이 아니라 배짱으로 강해지는 애야.

나 그걸 장점으로 말씀하시니 내가 할 말이 없다.

마티 슈프림 스틸컷

친구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록웰 파티야. 펜 회사 회장이 일본행 비행기 태워 주는 대가로 손님들 앞에서 바지 내리고 탁구 라켓으로 엉덩이 맞으라고 하잖아. 걔가 그걸 한다고. 자존심 다 버리고.

나 나는 그 장면을 반대로 읽었다. 그 회장은 앞서 「엔도에게 져 주면 비행기를 내주겠다」고 제안했고, 마티는 화를 내며 거절하다 못해 전쟁에서 잃은 그 집 아들까지 들먹였다. 그래 놓고 돈이 떨어지니 제 발로 돌아와 엉덩이를 내민다. 자존심을 버린 게 아니라, 자존심이 애초에 비행기 삯보다 쌌던 것이다.

친구 야, 그게 성장이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그걸 위해 굴욕을 삼키는 거.

나 성장이라면 삼킨 다음이 달라야 한다. 그런데 도쿄에 가서는 약속대로 져 주는 시범 경기를 치른 뒤에, 그 경기가 짜고 친 것이라고 장내에 대고 폭로하고 진짜로 붙자고 한다. 회장이 「계속하면 돌아갈 비행기는 없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분은 굴욕을 삼킨 게 아니라 잠깐 입에 물고 있다가 도쿄에서 뱉으신 것이다.

친구 그래서 이겼잖아.

나 이겼다. 다만 협회장이 이미 「올해 대회 출전은 늦었다」고 못 박은 뒤라, 이긴 경기는 어느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그 점에 관해 작품은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그게 통쾌하다는 분과 허무하다는 분으로 갈릴 텐데, 친구는 전자였고 나는 후자였다.

친구 그리고 그 강아지. 모세.

나 노인 에즈라의 개를 데리고 볼링장을 돌다가 잃어버린 그 개 말씀이시면, 나는 그 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억울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개 한 마리 잃어버린 일이 뉴저지 농가의 총격으로 이어지고, 노인 셋이 죽고, 마티는 죽은 에즈라의 재킷 주머니에서 현금을 챙긴다. 이 수순을 미리 맞히신 분이 계시면 연락 주시기 바란다.

친구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

나 탁구공이 그렇다는 건 알겠다. 사람이 그러면 곤란하다.

친구 좋아, 그럼 레이철 얘기 하자. 너 거기서 울었지.

나 울진 않았다. 다만 화는 났다. 뉴저지 농가에서 총격이 벌어지고 만삭의 레이철이 크게 다친다. 마티는 그를 병원까지는 데려다준다. 데려다주고 나서, 레이철이 소리를 지르는데도 비행기 시간에 맞춰 떠난다. 나는 여기서 이 사람을 응원할 의무에서 해방됐다고 느꼈다.

친구 나는 거기서 오히려 응원하게 됐는데. 그렇게까지 가야만 하는 애라는 걸 영화가 숨기지 않잖아. 미화를 안 해. 그게 정직한 거지.

나 정직한 건 영화고, 응원받을 자격은 인물의 몫이다. 그 둘을 한 봉지에 담아 파시면 곤란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마지막에 병원으로 돌아가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해 준다. 미화를 안 했다고 하시기엔 마지막 선물이 너무 후하다 하겠다.

친구 그 눈물이 가짜라고?

나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내가 아는 건, 영화 내내 그 아이를 제 아이로 인정한 적 없던 사람이, 한 경기 이기고 와서 「아버지」라고 자기소개를 한다는 사실뿐이다. 친구는 그걸 변화라고 부르고 나는 그걸 기분이라고 부른다.

친구 기분도 쌓이면 변화야.

나 그 말은 꽤 그럴듯하다. 적어 두겠다.

마티 슈프림 포스터

통화는 거기서 끊겼다. 친구가 끊은 게 아니라 친구 집 아이가 깨서 끊겼다. 합의한 건 한 줄이다. 탁구공은 둥글고, 이 사람은 둥글지 않다. 친구는 거기에 「그래서 좋다」를 붙였고 나는 「그래서 피곤하다」를 붙였다. 아무튼. 보실 분들은 두 시간 반 동안 공 소리가 아니라 사람 소리를 들으러 가신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공 소리는 생각보다 적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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