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마티 슈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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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름으로 잡은 방
런던 리츠 호텔의 로열 스위트. 트렌치코트 안에 속옷만 걸친 청년이 침대 위에 올라서서 전화기를 들고 있다. 전화의 상대는 다른 층에 묵는 왕년의 영화배우 케이 스톤이고, 청년의 이름은 마티 마우저다. 1952년이다. 이 방은 그의 방이 아니다. 방값을 낼 돈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이 방에서 가장 높은 자리, 침대 매트리스 위에 서 있다.
왜 하필 침대 위일까? 영화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이 사람이 방에 들어온 경위를 보면 짐작은 간다.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러 온 선수들에게 협회가 잡아 준 숙소는 따로 있다. 합숙소에 가까운 싸구려 숙소다. 마티는 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대회 책임자에게 항의하고, 무시당하자 그 책임자의 이름을 대고 리츠에 방을 잡는다. 대회의 높은 사람들이 묵는 호텔이다. 들어가서는 룸서비스를 메뉴판째 시킨다. 로비에서 케이를 보고, 어떻게 했는지 자기 방으로 올라오게 만든다. 나중에 호텔 식당에서 케이의 남편, 펜 회사 회장 밀턴 록웰의 테이블을 보고는 그 저녁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나선다.
나는 여기서 가설을 하나 세웠다. 이 사람은 방을 빌리는 게 아니라 층을 빌린다. 같은 층에 묵어야 같은 사람으로 대접받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은 낯설지 않다. 결혼식장에 가면 앞줄에 앉은 사람이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고, 비행기에서 먼저 내리는 사람이 바쁜 사람으로 보이고, 회의실에서 창을 등지고 앉은 사람이 결정권자로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설명한다. 마티는 그 설명을 미리 빌려 쓰려고 한 것이다.
이 가설은 절반만 맞다. 자리가 사람을 소개해 주는 것은 맞는데, 계산서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에게 온다. 뉴욕으로 돌아온 뒤 협회에서 편지가 오고, 리츠 숙박비를 협회에 떠넘긴 일로 1,500달러 벌금과 출전 정지가 붙는다. 침대 위에 올라섰던 값이다.
그가 원래 있던 공간을 보자.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낡은 아파트와 삼촌이 하는 구두 가게다. 구두 가게 점원은 하루 종일 손님 발 앞에 쪼그려 앉는 직업이다. 리츠의 침대 위와는 높이가 정반대다. 가게 창고에서 그는 남편 있는 소꿉친구 레이철과 만나고, 삼촌이 약속한 돈을 주지 않자 권총을 들고 금고를 열어 700달러를 꺼내 런던으로 간다. 삼촌 쪽에서 이 가게는 조카를 붙들어 두는 공간이다. 마티가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체포되는데, 그 체포를 꾸민 사람이 삼촌이다. 조카를 가게에 묶어 두려고. 마티는 화장실 창으로 도망친다. 집의 창문조차 그에게는 출구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마티가 제 발로 들어가는 방은 전부 남의 방이고, 남이 그를 넣어 두려는 방은 전부 그가 빠져나오는 방이다. 이 대비가 가장 세게 드러나는 장면이 두 번째 호텔이다.
뉴욕. 친구 월리와 함께 묵는 호텔에서 마티가 욕조에 몸을 담근다. 그런데 바닥이 꺼진다. 욕조째 아래층으로 떨어진다. 아래층에는 에즈라라는 노인이 살고 있고, 노인의 개 모세가 다친다. 런던에서는 침대 위로 올라섰던 사람이 뉴욕에서는 바닥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공간으로 보면 이 영화는 주인공을 자꾸 위아래로 옮긴다. 남의 이름으로 올라간 층에서는 벌금이 나오고, 제 몸무게로 꺼진 층에서는 빚이 생긴다. 에즈라는 마티에게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다주라며 돈을 쥐여 주는데, 마티는 그 개를 데리고 볼링장으로 가서 월리와 내기 탁구를 친다. 개는 그 뒤의 소동 중에 달아난다. 달아난 개를 찾는 일이 나중에 뉴저지 농가의 총격으로 이어지고, 만삭의 레이철이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간다.
나는 이 욕조 장면을 보고 나서야 리츠의 침대 장면이 왜 침대 위여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바닥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가 서 있는 층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아는 사람은 어디서든 한 뼘 더 높은 데를 찾는다. 침대 위, 남의 테이블 계산서, 남의 아내. 그리고 결국 바닥이 꺼진다.
도쿄의 경기장은 어떨까. 여기는 마티가 빌린 방이 아니다. 록웰이 빌린 무대다. 록웰은 자기 회사 이름을 건 시범 경기에 마티를 세우는 대신 비행기를 태워 줬고, 조건은 일본 챔피언 엔도에게 져 주는 것이었다. 도쿄에 도착한 마티는 협회장을 찾아가 세계선수권에 넣어 달라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답을 듣는다. 그는 약속대로 진다. 진 벌로 돼지에게 입을 맞춘다. 그러다가 이 경기가 짜고 친 것이라고 관중 앞에서 말해 버리고, 엔도에게 진짜 경기를 하자고 한다. 아슬아슬하게 이긴다. 록웰은 돌아갈 비행기를 거둬 간다. 마티는 미군 병사들 틈에 끼어 비행기를 얻어 탄다.
이 경기장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영화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걸고 선 자리가 남이 빌린 무대였다는 점이다. 남의 이름으로 들어간 방에서 쫓겨나던 사람이 남이 빌린 무대를 자기 것으로 바꿔 쓴다. 바꿔 쓴 대가는 또 교통편이다. 늘 그렇다. 그는 방을 얻을 때마다 돌아갈 길을 잃는다.
마지막 공간은 뉴욕의 병원이다. 도쿄에서 전화를 걸어 레이철이 이미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날아온다.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잠든 레이철을 안고, 신생아실 유리 앞에 선다. 유리 너머에 아이가 있다. 이 방은 그가 들어갈 수 없는 방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가 들어가겠다고 우기지 않는 방이다. 침대 위도 아니고 바닥 아래도 아니다. 유리 앞, 남들과 같은 높이에 서서 그는 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정자들이 난자를 향해 달리다가 그중 하나가 닿으면서 탁구공으로 바뀌는 그림이다. 처음으로 들어간 방이 어머니의 몸이었던 셈이다. 그 방도 제 이름으로 잡은 방은 아니었다. 149분 뒤에 그는 유리 한 장 너머로, 다음 사람이 처음 들어온 방을 바라본다. 들어가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이 이 사람이 배운 전부라면, 그것은 적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다음에 잡을 방은 누구 이름으로 잡힐까. 영화는 거기까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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