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들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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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뭘 붙였다는데 나는 끝까지 못 봤다

삐뚜름관람· 2026. 10. 11.· 3,016자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지문이 잘 안 찍히는 사람이다. 관공서 기계 앞에서 늘 두세 번씩 다시 댄다. 직원이 손가락을 입김으로 녹여 보라고 할 때가 제일 민망하다. 다 큰 어른이 기계한테 내가 나라는 걸 설명하고 있으면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아무튼 〈들쥐〉를 봤다. 열 편이다. 삼 년째 집 밖으로 안 나가던 소설가가 어느 날 자기 휴대폰을 못 연다. 지문이 안 맞는다. 집은 이미 팔려 있고, 돈 맡아 주던 친구는 연락이 끊기고, 주민번호는 누가 바꿔 놨다. 그리고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다. 쥐가 사람 손톱을 먹고 그 사람이 된다는 옛날이야기에서 가져왔다는데, 정작 저쪽이 그 얼굴을 얻은 방법은 성형수술이다. 설화를 꺼내 놓고 결국 병원으로 간다. 근데 그게 더 무섭다. 손톱은 안 흘리고 살 수 있어도 얼굴은 어디다 두고 다닐 수가 없다.

들쥐 스틸컷

이 드라마에서 한 배우가 두 사람을 한다. 빼앗긴 쪽도 하고 빼앗은 쪽도 한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얼굴은 같아야 이야기가 굴러가고, 사람은 달라야 연기가 된다. 같게 보이면서 동시에 다르게 보이라는 주문이다.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두 그릇 시켜 놓고 하나는 맛있게 하나는 맛없게 먹으라는 거랑 비슷하다. 하루에 분장을 네 번 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쪽 인물은 멋있을 구석이 하나도 없다. 삼 년을 집에만 있던 사람이니 늘 초라하고 지쳐 있어야 한다. 머리는 눌려 있고 옷은 아무거나 걸치고 있다. 배우한테 이런 주문이 제일 고약하지 싶다.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매 장면 꺼 두고 있어야 하니까. 나는 동네 마트에 갈 때도 모자를 쓴다. 아무도 안 보는데 쓴다. 그 마음을 열 편 내내 꺼 두는 일이 어떤 일인지는 짐작만 간다.

이런 역을 받으면 사람이 괜히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코에 뭘 덧대고, 목소리를 바닥까지 깔고, 말끝을 일부러 늘이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눈을 치뜨고 한 박자 늦게 웃는다. 전부 관객한테 '저 지금 다른 사람이에요' 하고 알려 주려고 하는 짓이다. 나라면 분명히 그랬을 거다. 나는 식당에서 주문도 두 번 말하는 사람이다. 한 번에 알아들었을 텐데 괜히 한 번 더 한다.

근데 이 배우는 그걸 안 한다. 코에도 눈에도 아무것도 덧대지 않았다. 대신 흰자에 점이 박힌 렌즈를 끼고, 자기 얼굴에 원래 있던 점을 들쥐일 때만 지우고, 귀에 뭘 붙였다고 한다. 머리는 길이를 똑같이 두고 한쪽만 곧게 폈다. 가발을 씌우지 않고 현장에서 머리를 펴고 당기느라 매번 다섯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다섯 시간이다. 그래 놓고 인터뷰에서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면 몰라도 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좀 얄미웠다. 다섯 시간을 쓰고도 못 알아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솔직히 귀를 못 봤다. 나중에 일부러 귀만 쳐다봤는데도 모르겠더라. 점이 박힌 렌즈도 모르겠고. 그게 분하다기보다 좀 억울했다. 분장을 알아봐 달라고 한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뀐 걸 알아보라고 한 거니까, 결국 나는 시키는 대로 속은 거다. 속은 사람이 왜 억울한지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들쥐 포스터

제일 좋았던 건 웃는 얼굴이다. 저쪽이 웃을 때, 입만 웃는다. 눈은 가만히 있고 입만 움직인다.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눈도 같이 접는다. 웃는 연기를 하라고 했으니 웃는 얼굴을 만들어 버리는 거다. 그러면 보는 사람은 '아, 가짜가 웃네' 하고 넘어간다. 이 사람은 눈을 안 접는다. 그래서 저게 웃는 건지 아닌지를 내가 판단해야 한다. 판단을 떠넘기는 연기다. 본인은 그걸 두고 얼굴 근육을 다르게 써 보거나 입만 웃어 보는 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도 조금 높게 잡았다고 한다. 나는 그 '입만'에서 졌다.

둘이 마주 앉는 장면에서는 목소리를 먼저 썼다고 한다. 얼굴로는 어차피 구별이 안 되니까 귀부터 속이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카메라도 거든다. 왜곡이 심한 광각으로 바짝 당겨 찍어서 얼굴이 조금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 장면은 배우 혼자 버틴 게 아니라 여럿이 달라붙어서 만든 거다. 그걸 알고 보면 더 얄밉다. 저렇게 다 같이 공들여 놓고 티를 안 낸다.

옆에 돈 떼인 사채업자가 붙고, 반대쪽에 형사가 붙는다. 이 둘이 없었으면 꽤 숨 막혔을 거다. 나이 든 배우가 화면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어깨가 풀린다. 저 사람은 저 돈을 진짜로 받으러 왔구나 싶으니까 보는 쪽도 덩달아 현실적인 마음이 된다. 그 뒤로는 얼굴 이야기가 돈 이야기가 되고, 돈 이야기가 다시 사람 이야기가 된다.

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다. 귀에 뭘 붙였다더라, 렌즈에 점이 있다더라, 머리를 다섯 시간씩 폈다더라. 친구가 한참 듣더니 물었다. "그래서 재밌어?" 나는 어, 하고 말았다. 재밌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중반 넘어가면 늘어지는 데가 있고, 반전이 자꾸 겹쳐서 나중엔 좀 피곤하다. 얼굴이 똑같은데 왜 다들 저렇게 확신하지, 싶은 대목도 있다. 열 편이 다 필요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입만 웃는 얼굴 때문에 끝까지 봤다. 그 말을 친구한테 하려다가 말았다. 설명하면 재미없어진다.

마지막 회에서 그는 평생에 걸쳐 짜인 덫 한가운데 선다. 거기서 묻는다. 덫을 놓은 게 나인가, 덫에 걸린 게 나인가. 나는 이 질문이 반갑지 않았다. 반갑지 않은 게 맞는 질문이라서 그렇다. 빼앗긴 사람 편에 서서 열 편을 따라왔는데, 끝에 가서 그 사람도 뭔가를 가져간 적이 있다고 하면 보던 사람은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통쾌한 맛은 없다. 허무하다고 적어 놓은 사람도 봤다. 나는 그냥, 이 정도가 솔직한가 보다 했다.

보고 나서 며칠 뒤에 또 지문을 찍을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한 번에 안 됐다. 예전 같으면 기계를 탓했을 텐데 그날은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기계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를 알아보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문제구나 싶었다. 손가락 하나를 못 읽으면 나는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람이 된다. 세 번째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그게 전부인데 좀 그랬다.

기계 앞에서 손가락을 두 번 세 번 다시 대 본 사람들아, 오늘 한 번에 안 됐다고 우리가 우리가 아닌 건 아니다. 다음 줄로 가서 다시 대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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