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들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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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들쥐〉를 봤다. 열 편짜리다. 소설가가 어느 날 자기 이름과 얼굴을 잃는 이야기다. 8월 28일에 열 편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제문재는 삼 년을 집에서만 산 소설가다. 어느 날 휴대폰 지문 인식이 안 된다. 집도 통장도 친구도 남의 것이 되고, 자기를 쫓아다니던 사채업자와 손을 잡고, 쫓고, 끝. 사람의 손톱을 먹은 들쥐가 그 사람으로 변한다는 설화에서 가져온 설정이라고 한다. 설정만 들으면 요괴 이야기 같은데, 보다 보면 거의 서류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이 드라마에서 제일 서늘한 장면은 누가 맞는 장면이 아니다. 신분증을 내미는 장면이다. 내밀었는데 상대가 화면을 보고 고개를 젓는다. 지문을 찍는데 기계가 안 받는다. 동창들이 와서 저 사람은 제문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종이와 기계와 사람의 입이 한편이 되고, 당사자만 반대편에 혼자 선다.
회사 다녀 본 사람은 안다. 내가 나인 것은 아무 데서도 안 쳐준다. 사원증이 나고, 사번이 나고, 인증서가 나다. 사원증을 집에 두고 온 날 로비에서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아는 얼굴이 지나가도 소용이 없다. 방문증을 받아서 목에 걸어야 비로소 들어간다. (나도 사원증을 두고 와서 로비에 한참 서 있던 날이 있다.)
그다음부터 문재는 밖으로 나온다. 집에만 있으려고 삼 년을 애쓴 사람인데, 집이 없어져서 나온다. 잠옷 비슷한 차림으로 밤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그림이 있다. 사람은 많고, 아무도 그를 안 본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데는 커다란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 서류 몇 줄이면 된다.
그를 쫓는 쪽에 사채업자 노자가 있다. 십 년을 쫓았다는데, 받을 사람이 사라지니 같이 찾는 신세가 된다. 쇠 방망이를 끌고 밤 시장을 걸어 나오는 그림이 있다. 무섭게 나오는데도 하는 일은 결국 돈 받으러 다니는 일이다. 추심도 노동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성실하게 출근하는 사람이 사채업자라는 건 좀 웃겼다.

요즘 예능이라면 이 소재를 어떻게 다룰지 대충 보인다. 먼저 관찰 카메라가 집 앞에 붙는다. '3년 만의 외출'이라는 자막이 뜬다. 스튜디오의 패널들이 손으로 입을 가린다. 사연을 읽어 주는 성우 목소리가 깔리고, 중간에 몰래 온 손님으로 동창이 등장한다. 둘이 끌어안는다. 마지막에 자막이 하나 뜬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 알아봅니다.' 그리고 다 같이 운다.
사람을 사람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서류로 확인하는 쪽이 훨씬 싸고 빠르기 때문에 세상은 오래전에 그쪽을 골랐고, 그래서 서류에서 지워진 사람은 억울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아예 없는 사람이 되는데, 텔레비전은 그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울기 좋은 사연 한 편으로 다시 만들어 파는 일을 유난히 잘한다. 이 드라마는 그 장사를 안 한다. 그게 좀 뜻밖이었다.
포스터에 적힌 문구는 '증명하지 못하면 내가 가짜가 된다'였다. 보통 이런 문구를 걸어 놓으면 끝에 가서 주인공이 기어이 증명에 성공하고, 사람들이 미안해하고, 다 같이 박수를 친다. 여기엔 그 장면이 없다.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삼 년을 물어 주는 사람도 없다. 돌려받는 게 아니라 그냥 밀고 들어가서 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중간에 피가 꽤 나온다. 때리고 찌르는 장면이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나는 그 부분은 좀 그랬다. 무섭다기보다 피곤했다.
후반에 가면 이 피해자가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나온다. 대학 때 동창의 습작을 가져다 자기 것으로 삼아 작가가 됐고, 그 일의 끝에서 동창은 연인을 잃었다. 들쥐 노릇을 하는 쪽은 자기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한 채 살다가, 법적으로 연고 없는 사람이 되어 남의 이름 속으로 들어갔다. 둘 다 당한 사람이고 둘 다 가져간 사람이다. 딱 한 명만 미워하면서 보던 사람은 여기서 머쓱해진다.
마지막은 제주로 가는 배 위다. 바다 위에서 둘이 엉키고, 하나가 물로 떨어진다. 이름은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온 다음에 문재가 하는 짓이 자기 인생을 가져갔던 쪽을 조금씩 닮아 간다. 원고는 끝까지 안 끝난다. 통쾌한 끝은 아니다. 허무하다고 적은 리뷰도 봤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열 편 중에 두 편쯤은 없어도 이야기가 굴러갔지 싶다. 그래도 끝까지 봤다.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결국 얼굴이다. 같은 얼굴 두 개를 한 화면에 나란히 안 세우고, 말투와 걸음걸이로만 갈라놓는다. 그 정도면 됐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또 지문을 찍는다. 그 기계는 한 번에 됐다. 그게 오늘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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