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신병4 : 사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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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원을 꺼냈더라고요

무뚝뚝· 2026. 10. 11.· 3,073자

군대 나오는 건 잘 안 봐요. 지겨워서가 아니라, 끝에 가서 꼭 좋은 얘기로 만들려고 하거든. 고생은 실컷 시켜 놓고 마지막에 다 같이 웃겨 놓는 거. 그 솜씨가 너무 뻔해서 싫어요. 안 그런 걸 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것도 별 기대 없이 봤어요.

그런데 이건 그걸 잘 안 하더라고요. 상병이 된 박민석이 주인공이에요. 거기에 새로 온 대대장이 있고, 속을 알 수 없는 신병이 하나 들어와요. 전에 선임이던 사람은 하사가 돼서 돌아오고요. 세 사람이 각각 다른 쪽에서 이 상병을 흔들어요. 그게 다예요. 누가 크게 깨닫거나 하진 않아요.

부제가 사보타주예요. 공장에서 일부러 일을 느리게 하는 거, 그거 말하는 거래요. 만든 사람 말로는 군화 신은 사람들이 조직을 방해하기도 하고 서로 붙기도 하면서 지내는 얘기라고 하더라고. 그 말은 좀 거창한데, 보고 나면 알겠어요. 다들 시키는 대로 안 해요. 시키는 대로 하는 척만 하고 있어요.

나는 그 하사가 된 사람이 제일 눈에 들어왔어요. 병사로 있을 땐 후임들 굴리던 사람이거든. 그게 이제 월급 받는 사람이 돼서 같은 부대로 돌아온 거예요. 그 배우가 그러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 발로 경례를 한대요. 시키는 경례 말고요. 그 말이 오래 남더라고. 같은 자리에 같은 옷을 입고 서 있어도 돈을 받고 서 있는 거랑 끌려와서 서 있는 건 다르잖아요. 일은 일이에요.

중대장도 그래요. 진급이 안 돼서 계속 중대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걸 숨기지 않고 그냥 보여 줘요. 나라를 지킨다느니 하는 말을 안 시켜요. 위에서는 덮으라 그러고 아래 애들은 챙겨야 하고.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에요. 어디서 일해 본 사람은 저 얼굴을 다 알아요.

신병4 : 사보타주 포스터

새 대대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나온 사람이래요. 선진 병영을 하겠다고 들어와요. 이런 인물이 나오면 보통 둘 중 하나거든. 다 뜯어고치고 영웅이 되거나, 알고 보니 나쁜 놈이거나. 여기선 둘 다 아니에요. 좋은 말 하다가 막히고, 막히면 다른 수를 써요. 사람이 그렇죠.

신병 얘기도 해야겠어요. 깍듯하고 빈틈없고 일도 잘해요. 그런데 어딘가 싸늘해요. 웃는데 눈이 안 웃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걸 연기로 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조금만 과하면 바로 나쁜 놈이 되거든. 이 사람은 그쪽으로 안 넘어가요. 끝까지 애매하게 둬요.

주인공은 상병이 되더니 제가 좋은 고참인 줄 알아요. 그 배우가 그러더라고요, 본인이 스윗한 고참인 줄 안다고. 그래서 더 얄미운 인물이라고요. 자기가 맡은 사람을 그렇게 말하는 게 재밌었어요. 나도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잘해 주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제일 피곤해요.

6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단체로 외박을 나갔는데 길에서 군인 냄새 난다는 소리를 들어요. 그러다 시비가 붙고요. 한 사람이 후임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요. 그러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냈더라고요. 그게 전부예요. 멋있는 말 같은 거 안 해요.

나는 그 오만 원이 오래 걸렸어요. 싸울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군인이 손대면 영창 간다는 걸 아니까. 상대도 그걸 알고 있었고요. 아는 쪽이 모르는 척 더 세게 나오는 거, 그거 보기 싫잖아요. 그래서 돈으로 막아 보려고 한 거지. 결국 그걸로도 안 됐고 맞았어요. 같이 찍은 사진까지 찢기고요. 지갑에 있는 걸 다 꺼낸 사람 얼굴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아요.

그다음이 더 그래요. 경찰은 쌍방폭행이라고 하고, 윗선에서는 덮으라고 하고, 동네 상인회장은 회식을 사겠대요. 미안하면 밥을 산대요. 밥이 무슨 사과예요. 줄 거면 치료비를 주지.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 말도 아닌 소리를 다들 참 열심히 해요. 그 열심이 제일 얄미워요.

이게 지어낸 얘기가 아니래요. 2011년에 양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가져왔다고 하더라고. 외박 나온 군인들이 고등학생들한테 맞은 사건이에요. 한 사람은 눈 아래가 부러져서 여섯 주가 나왔고요. 그때도 조용히 덮으려고들 했대요. 쓴 사람은 전 시즌부터 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대요. 십오 년을 끌고 와서 쓴 거예요.

대대장은 대대원 외박과 외출을 전부 막아 버려요. 동네 장사가 그대로 멈추고요. 보는 동안은 시원했어요. 그런데 끝에 가서는 서로 잘 지내는 걸로 정리를 하더라고. 그건 좀 안 믿겼어요. 맞은 사람은 그대로인데 동네하고 화해를 해요. 너무 곱게 닦아 놨다고 말들이 많았다는데, 나도 그 말이 이해는 가요. 그게 괘씸하냐 하면, 글쎄요.

맞고 누워 있는 장면이 있어요. 얼굴이 엉망이고 피가 말라붙어 있고요. 그런데 그 배우가 서러운 얼굴을 안 해요. 눈을 감고 그냥 누워 있어요. 아픈 거랑 억울한 건 달라요. 아픈 사람은 그냥 아파요. 억울한 건 한참 뒤에 혼자 있을 때 올라오는 거고. 그 둘을 구별해서 연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참 잘하더라고요.

신병하고 상병이 화해하는 장면도 있어요. 둘 사이에 전에 있었던 일이 있거든. 신병이 그 상병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풀어요. 요즘 애가 일기를 쓴다는 것도 우습고, 그걸 남이 읽고 푼다는 것도 우습고. 그러고는 둘이 마주 앉아서 라면을 먹어요. 끌어안고 울고 그러는 게 아니라 라면이에요. 좀 웃었어요. 사람이 그래요.

면회 오는 누나 얘기도 하나 있어요. 오래 쉬던 배우가 나와서 사람들이 반가워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면회라는 걸 생각했어요. 멀리까지 와서 잠깐 앉았다 가는 거잖아요. 할 말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요. 이 드라마는 그런 걸 길게 안 끌어요. 길게 끌면 울리려고 드는 거거든. 그걸 안 해서 좋았어요.

불편한 데도 있었어요. 총을 민간인 쪽으로 들이대는 장면이 나와요. 그건 좀 아니지 싶더라고. 앞에서 점잖게 굴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러니까 더 그래요. 화나는 건 알겠는데 거기까지 가면 얘기가 달라지잖아요. 그 장면 하나가 앞에서 쌓아 놓은 걸 좀 까먹었어요.

끝은 싱거워요. 부대를 통폐합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대로 끝나요. 벌여 놓은 걸 다 거두지도 않고요. 다음 시즌 하려고 남겨 둔 거겠지. 그걸 탓할 생각은 없어요. 다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니까요.

배울 건 없어요. 나는 이런 데서 뭘 배운 적이 없어요. 그냥 저런 데서 저렇게 이십 몇 개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구나, 했어요. 오만 원 꺼내던 그 장면만 자꾸 생각나고요. 왜 그게 남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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