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오케이 마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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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를 세어 보려다가 실패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꽈배기 생각을 했다. 주인공 미영은 시장에서 꽈배기를 파는 사람이고, 그 가게가 폐업 위기라는 설정으로 영화가 시작하는데, 나는 그 한 줄을 듣는 순간부터 다른 쪽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꽈배기집이 왜 어려운가. 꽈배기가 안 팔리나, 설탕값이 올랐나, 옆 골목에 더 싼 집이 생겼나. (예전에 우리 집 근처 꽈배기집이 문을 닫았을 때 나는 사흘쯤 기분이 안 좋았던 사람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저 가게 이야기 더 나온다, 무조건 더 나온다, 안 나오면 내가 찾아낸다'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 나온다. 청첩장이 한 장 도착하고, 가족이 크루즈에 오르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바다다. 영화는 108분 동안 아주 성실하게 바다 위에서 뛰고 쏘고 떨어진다. 나는 그 와중에 진지하게 걱정했다. 가게 문은 잠그고 왔나. 반죽은 어떻게 했나. 크루즈 일정이면 못해도 사나흘일 텐데 그동안 튀김기름은 그냥 두는 건가. (영화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계속 궁금했다.)

이 영화가 자기를 소개할 때 쓰는 문장은 '전직 레전드 요원'이다. 나는 이 말을 좀 오래 들여다봤다. 전직이라는 말과 레전드라는 말이 한 사람 앞에 나란히 붙어 버리면, 그 사람은 결국 예전에 엄청났고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 되어 버리지 않나. 소개계의 양면테이프 같은 문장이다. 어디에나 잘 붙고, 붙는 순간 그 사람의 현재를 과거 쪽에 딱 고정시켜 버린다. 그런데 미영은 쉬고 있던 사람이 아니다. 꽈배기를 튀기고 있었을 뿐이다. 튀기는 일도 일이다.
배 이야기도 해야겠다. 이 영화는 세트를 짓지 않고 길이 183미터, 높이 12층, 무게 2만6000톤짜리 진짜 배에서 찍었다고 한다. 숫자를 듣고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12층이면 우리 동네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물 위에 떠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추격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갑판에서 객실로, 객실에서 엔진룸으로 내려가는 동안 화면에 계속 금속이 나온다. 차갑고, 미끄럽고, 소리가 울리고, 잡을 데가 애매하게 많은 금속. 액션을 하기에 좋은 재료인 동시에 휴가를 보내기에는 영 마음이 안 놓이는 재료이기도 하다.
남편 석환 씨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 사람은 전직 국정원 내근직인데 지금은 복귀를 노리며 구직 중이고, 크루즈에서 납치 사건이 터지자 그걸 국정원 복귀 테스트라고 착각한다. 나는 여기서 웃다가 좀 조용해졌다. 오래 안 불려 간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이게 기회인가부터 생각한다. 그리고 착각인 줄도 모르고 최선을 다해서 뛴다. 착각한 채로 뛰는 사람의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딸 나리는 중학생이고 아이돌 가수만 좋아한다. 사춘기 딸과 엄마가 같이 나오는 영화가 가는 길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싸우고, 위기가 오고, 알게 되고, 끌어안는다. 이 영화도 그 길로 간다. 가는데, 나는 그 길이 익숙하다는 생각보다 나리가 헤드폰을 목에 걸고 다니는 쪽이 훨씬 눈에 들어왔다.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는 아직 완전히는 차단하지 않은 아이다. 진짜로 안 들을 생각이면 쓰고 다니지 않나. 목에 걸어 두는 건 엄마 말이 들리기는 들린다는 뜻이고, 들리는데 대답은 안 하겠다는 뜻이고, 필요하면 언제든 귀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애매한 위치가 그 나이의 전부 같았다.
미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영화의 공기가 바뀐다. 빨간 라이더 재킷을 입고 배 안을 가로지르며 총을 겨누는데, 나는 이 재킷에 또 꽂혀 버렸다. 영화는 이 옷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입혀 놓는다. 그런데 뒤에 가면 미영은 이 재킷을 양손으로 핸들처럼 움켜쥐고 닻줄에 걸어 쭉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상대를 걷어찬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연장으로 쓰는 사람. 뜨거운 손잡이를 앞치마로 감싸 쥐는 가게 사람들의 동작과 정확히 같은 종류의 동작이다.

상대 쪽 안야는 전기로 사람을 제압한다. 그리고 미영의 옛 코드명이었던 목련화를 동경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좋아해서 따라 하다가 끝내는 그 사람을 이겨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일이, 꼭 범죄조직 쪽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흔하다. 나는 안야가 목련화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이상하게 그쪽 편을 들고 싶어졌다. 동경은 사람을 성실하게 만든다. 따라 하려면 자세를 봐야 하고, 자세를 보려면 오래 들여다봐야 하고, 오래 들여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버릇까지 몸에 붙는다. 문제는 성실해진 다음이다. 그렇게 익힌 자세로 결국 그 사람 앞에 서게 되면, 내 손이 저쪽 손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나 자신이지 않나.
마술사 지훈과 크루즈 대표 선아가 끼어들면서 판이 한 번 더 접힌다. 마술사를 세워 놓고 반전을 맡기는 건 조금 반칙 같기도 한데, 따지고 보면 마술이란 원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가 꺼내 보이는 일이니까 자격은 충분하다. (나는 보고 나서, 마술사가 나오는 이야기에서 마술사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나 자신을 꽤 오래 책망했다.) 선아 쪽은 무표정으로 버틴다. 무표정이 길어지면 그건 성격이 아니라 상태다.
내가 제일 오래 붙들린 장면은 바닷가 물가다. 한 사람이 젖은 모래에 누워 있고, 위에 올라탄 사람은 칼을 쥐고 있고, 파도가 자꾸 밀려와 두 사람의 다리를 적신다. 누운 쪽은 그 빨간 재킷을 그대로 입고 있다.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칼 때문도 아니고 파도 때문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저 사람이 아직도 저 옷을 안 벗었구나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꽈배기 생각이 다시 났다. 꽈배기는 반죽 두 가닥을 꼬아서 만든다. 한 가닥으로는 모양이 안 나오고, 두 가닥을 나란히 놓기만 해도 안 되고, 꼬아야 비로소 한 덩어리가 된다. 미영이 타고 내려온 닻줄도 그렇게 만든 물건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버티는 가는 줄들을 꼬아 놓으면 사람 하나쯤 매달아도 끊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108분 동안 한 일은 결국 그거였다고 생각한다. 꽈배기집 사장과 목련화를 따로 세워 두지 않고 기어이 꼬아 놓는 일. 따로 두면 둘 다 가늘고, 꼬아 두면 사람 하나를 버틴다.
그래서 오늘은 시장에 가서 꽈배기를 네 개 샀다. 세 개만 사려고 했는데, 봉지 속에서 꼬인 자리를 세다가 또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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