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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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소리가 싫다

밤선율· 2026. 10. 10.· 1,522자

나는 친절한 소리가 싫다. 듣지 않아도 될 것을 끝까지 들려주는 소리가 싫다. 화면에 다 보이는 일을 굳이 한 번 더 읊어 주는 소리는 더 싫다. 지금 저 사람이 슬프다고 노래로 알려 주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친절한 내레이션은 관객을 믿지 못하겠다는 고백이다. 엘리베이터가 층수를 읊어 줄 때마다 나는 조금씩 화가 난다.

그런 내가 이 드라마의 첫 회에는 기꺼이 졌다. 〈스캔들〉은 판소리로 문을 연다. 소리가 먼저 오고, 그 소리가 조선의 한 집안을 가리킨다. 드디어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화면 안에 세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초대였다.

솔직히 말하자. 그 소리가 끝나지 않는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소리가 따라붙고,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 소리가 먼저 말해 준다. 여덟 회가 끝날 무렵이면 초대는 안내 방송이 되어 있다. 전통은 많이 깔수록 짙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이 깔면 그냥 시끄럽다. 느린 것도 같다. 긴 호흡은 길어서 깊어지는 게 아니라, 대개는 그냥 길다.

그런데도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유는 하나다. 편지. 세 사람은 입으로 하지 못하는 말을 붓으로 쓴다. 조씨부인은 방바닥에 엎드려 종이를 펼치고 글을 쓰고, 그 글은 목소리가 되어 화면 위를 지나간다. 말로 하면 추문이 될 문장이 글씨가 되는 순간 품목이 바뀐다. 욕망이 문장으로 위장하고, 위장한 욕망이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스캔들 스틸컷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들의 목록이 있다. 눈물 한 방울을 기다리는 클로즈업. 떨리는 입술. 창밖을 보다 내려앉는 어깨. 연민을 구걸하는 얼굴. 이 드라마는 희연을 그렇게 찍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 여자의 얼굴에 오래 머무는 대신 벽의 글귀와 문양으로, 그림으로 시선을 옮긴다. 감정을 얼굴에서 걷어 내 방 안에 널어 둔다. 울지 않는 인물이 방 전체를 울게 만든다.

스캔들 스틸컷

품위란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자리에 다른 문장을 올려 두는 일이다. 삼키고 그냥 비워 두면 그건 품위가 아니라 체증이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삼킨 자리마다 시조를 올리고 비유를 올리고 안부를 올린다. 그 위장술이 이 작품에서 가장 조선적인 것이다. (가장 요즘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사람들은 할 말을 다른 말로 바꿔서 보낸다.)

옷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드라마의 한복은 색으로 말한다. 조원이 걸친 쪽빛 두루마기는 속이 비칠 만큼 얇아서 안의 흰 깃이 번번이 드러난다. 겉이 비치는 옷을 입은 남자가 속은 끝까지 감추고 다닌다. 옷이 인물보다 먼저 농담을 하는 셈이다. 마음이 바뀌는 자리마다 옷의 색과 결이 함께 바뀌는 설계인데, 그 설계가 대사보다 정확할 때가 많다. 만약 이 드라마가 희연에게 끝까지 흰옷 한 벌만 입혔다면 나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캔들 스틸컷

느리다. 아름답다. 둘은 모순이 아니다. 중반을 넘기면 이야기는 자주 멈춰 서고, 멈춰 선 자리를 소리가 메운다. 이 드라마는 조선을 복원하려다 자주 과시하고, 과시를 멈춘 자리에서야 사람을 보여 준다. 그 자리는 언제나 글씨가 있는 방이다. 나는 여전히 친절한 소리가 싫다. 다행히 이 드라마의 편지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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