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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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스캔들〉은 무엇을 보여 주기로 한 작품인가, 라고 묻는 일은 이 드라마 앞에서 거의 쓸모가 없다. 화면이 이미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겠다. 다시 묻겠다. 이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첫 번째 질문.
이 작품은 빈자리를 보여 주지 않는다. 23년 전의 영화가 한 폭의 풍속화처럼 화면 한쪽을 비워 두었다면, 이 드라마는 북촌의 기와와 골목과 계단으로 프레임의 네 귀퉁이까지 채워 넣는다. 북촌은 평평하지 않다. 단차가 있고, 층층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고, 그 높낮이가 신분과 감정의 높낮이를 대신한다. 당신은 이 화면 어딘가에서 숨을 돌릴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런 자리는 없다. 빈 곳이 없다, 라는 것은 쉴 곳이 없다는 뜻이고, 쉴 곳이 없다는 것은 인물이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여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물이 놓인 것이다. 조씨부인의 방에는 채화가 놓인다. 종이를 접어 만든 꽃. 시들지 않고, 그래서 한 번도 핀 적이 없는 꽃이다. 그 방에는 자명종도 놓여 있다. 조선의 방 안에서 서양의 시계가 혼자 간다. 카메라가 이 두 사물을 같은 프레임 안에 들일 때 인물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된다. 사물이 먼저 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이 집은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가. 조씨부인의 방에 닿으려면 겹겹이 이어진 문을 지나야 하고,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공기가 바뀌고 빛이 바뀐다. 이 집은 사람을 들이는 구조가 아니라 사람을 거르는 구조인 것이다. 당신은 그 문들이 끝내 활짝 열리기를 기다릴 것이다. 문은 열린다. 매번 열린다. 다만 열릴수록 안쪽은 좁아지고, 가장 안쪽에 닿았을 때 남아 있는 것은 사람 하나가 겨우 앉을 만한 자리다. 희연의 방도 다르지 않다. 그 방의 벽은 글귀로 빼곡하게 덮여 있어서, 도리와 규범이 종이의 형태로 사방에 붙어 있다.

이 드라마가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은 바깥이다. 집 안에서 인물들은 늘 반듯하게 앉아 있다. 앉는 자세가 곧 신분이고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깥으로 나온 희연은 머리에 수건을 쓴 채 풀숲 바닥에 주저앉아 위를 올려다본다. 방 안에서 그토록 정확하게 몸을 간수하던 사람이 밖에서는 자세를 간수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바깥은 해방이 아니다. 추락이다. 당신은 그 올려다보는 얼굴을 오래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가 여백을 버린 것까지 지지하지는 못하겠다. 비워 두었다면 훨씬 오래 남았을 자리가 분명히 있었고, 채워진 화면은 자주 스스로를 자랑한다. 그러나 여백을 사물로 바꾸어 놓은 선택, 그러니까 마음을 사람의 얼굴에서 떼어 내 종이꽃과 자명종과 문턱에 나누어 맡긴 그 선택은 지지한다. 얼굴을 믿지 않고 사물을 믿기로 한 작품을 나는 오래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질문.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당신에게 넘기겠다. 당신이 본 것은 조선인가, 아니면 조선을 아주 잘 찍은 화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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