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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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지 못한 재능은 어디로 가는가

고요한땀· 2026. 10. 10.· 1,808자

나는 쓰지 않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손잡이가 깨진 주전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전기포트, 어느 나라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댑터.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쓸 데가 생길 것 같아서가 아니다. 쓸 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다. 물건에게 미안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샀던 내 판단에게 미안한 것이다.

그런 내게 〈스캔들〉은 버리지 못한 물건들의 이야기로 보였다.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쓸 자리를 얻지 못한 재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여덟 회에 걸쳐 따라가는 드라마다. 1782년에 나온 프랑스 소설에서 출발해 2003년의 한국 영화를 거쳐 조선의 북촌에 당도했는데, 이번 판본이 새로 들여온 것은 유혹의 기술이 아니라 유혹하는 사람의 이력이다.

어린 조윤과 조원이 글을 주고받는다. 둘 다 잘 쓴다. 그러나 조원의 글은 과거로 가는 길 위에 놓이고, 조윤의 글은 담장 안에서 멈춘다. 자란 뒤 조원은 벼슬길 대신 다른 길을 걷다가 이루지 못한 연모를 안고 여색으로 소일한다. 조윤은 양반가의 부인이 되어 현모양처의 얼굴 뒤에서 집안의 모든 것을 계산한다. 그러다 조씨부인이 조원에게 청한다. 남편이 새로 들이려는 여자의 마음을 먼저 얻어 달라고. 그렇게 희연이 두 사람의 내기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스캔들 스틸컷

이 드라마가 인물의 속을 보여 주는 방식은 조금 이상하다. 결정적인 대목에서 카메라는 사람을 비추다 말고 그림으로 건너간다. 민화가 움직이고, 임금의 행차를 그린 옛 기록화의 구도가 화면 안에서 되살아난다. 처음에는 멋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조선에서 여자의 글과 그림은 액자 안에 있을 때만 허락되었다. 이 작품은 인물의 마음을 그림 안에 넣어 보여 준다. 허락된 자리에만 넣어 둔다는 뜻이다. 저 고운 화면은 장식이 아니라 울타리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 일을 맡길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맡길 사람이 없으면 재능은 취미가 되고, 취미마저 금지되면 재능은 방법이 된다. 조씨부인의 글씨는 끝내 시험지 위에 놓이지 못했다. 대신 사람을 움직이는 데 쓰인다. 편지 한 장으로 남의 마음의 순서를 바꾸는 일. 그것은 정치다. 조선은 그 여자에게 정치를 금하고 정치의 재료만 넉넉히 남겨 주었다.

스캔들 스틸컷

그러나 담장만 탓하면 이 드라마를 반쯤만 보는 셈이 된다. 담장 안에서 벼린 기술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다. 희연은 아무 잘못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남편을 먼저 잃은 것이 잘못이다. 4회에 이르러 담배를 파는 분희가 들어오고, 분희와 그 딸 소옥 쪽으로 이야기가 번질 때 중심 줄기가 자주 끊긴다. 그런데 끊기는 동안 이 작품은 조금 솔직해진다. 바깥에서 장사하는 여자는 담장이 무엇인지 안다. 알면서 무서워하지 않는다.

스캔들 스틸컷

작품 밖으로 한 번만 나가 본다. 오늘의 조직에도 쓰이지 못하는 재능이 있다. 회의에서 가장 정확한 말을 하는 사람이 가장 늦게 말하고, 가장 늦게 나온 말은 회의록에 남지 않는다. 그 사람은 대개 둘 중 하나를 한다. 그만두거나, 회의 바깥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후자를 택한 사람을 우리는 보통 정치적이라고 부른다. 조씨부인에게 붙는 혐의도 같은 종류다. 이 드라마는 그 혐의를 벗겨 주지도 덮어 주지도 않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북촌의 기와와 비단과 촛불이 너무 잘 차려져 있어서, 인물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이 자주 잊힌다. 잘 지은 집은 그 집이 감옥이라는 말을 가려 준다. 나는 아직 손잡이가 깨진 주전자를 버리지 못했다. 쓸 데가 없다는 말과 쓸모가 없다는 말은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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