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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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그 치즈, 누가 물어줬나

삐딱선· 2026. 10. 09.· 2,031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치즈 생각만 했다. 트로이가 불타고 바다가 뒤집히고 신들이 저희끼리 무슨 결정을 내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동굴 한쪽에 쌓여 있었을 치즈 더미만 떠올랐다. 거인의 동굴에 들어간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주인도 없는 집에서 치즈를 꺼내 먹는 대목 말이다. 돌아온 거인은 그 보답으로 부하들의 머리를 물어뜯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나는 엉뚱한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저거, 몇 달 걸려 만든 치즈일까.

내 안의 무언가가 '저건 숙성이다, 무조건 숙성이다, 일 년은 걸렸다' 하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동굴은 서늘하고 습도가 일정하니 치즈를 두기에 그보다 나은 데가 없고, 거인은 혼자 산다. 혼자 사는 사람이 먹을 것을 쌓아 두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겨울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옆집 평상에 널어 둔 곶감 하나를 집어 먹고 사흘을 앓았다. 배탈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거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원작에서 그렇게 떠들던 외눈박이가 여기서는 인형으로 만들어진 몸을 끌고 다니며 먹기만 한다. 말을 못 하니 따질 수도 없다. 반대로 오디세우스는 동굴을 빠져나오면서 자기 이름을 외쳐 거인을 약 올린다. 먹은 쪽은 말이 많고 먹힌 쪽은 입이 없다.

오디세이 스틸컷

거인은 눈을 잃는다. 나는 진지하게 걱정했다. 저 사람은 이제 치즈를 어떻게 만드나. 눈먼 채로 양을 몰고 젖을 짜고 틀에 눌러 두는 일을 혼자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사라진 것은 눈 하나가 아니라 한 집의 살림 전체다. (영화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더듬더듬 빈 선반을 짚는 손을 봤다.)

이 영화에는 '제우스의 법'이라는 말이 자꾸 나온다. 나그네를 들이고 먹이라는 것, 그 사람이 신일지도 모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문장에 이름을 붙이는 버릇이 있는데 이건 '보험 약관형 선의'다. 잘해 주어라, 안 그러면 나중에 곤란해진다. 선의의 이유를 손해에서 찾는 문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 법을 가장 크게 어긴 사람이 주인공이다. 트로이 사람들은 해변에 놓인 거대한 목마를 신이 보낸 선물로 믿고 성문 안으로 들였다. 손님을 들이는 것이 법이었으니까. 그 믿음의 배 속에 사람이 들어 있었다.

오디세이 포스터

키르케는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다. 따지러 온 오디세우스에게 그 사람은 태연하게 말한다. "그들은 원래 돼지다. 나는 변장을 벗겼을 뿐이다." 이 장면은 필름을 거꾸로 돌려서 찍었다고 한다. 분장을 입히는 대신 벗겨 내는 방향으로 찍은 것이다. 나는 여기서 좀 감탄했는데, 감탄한 이유가 기술이 아니라 순서여서 그랬다. 무엇을 씌우는 일과 무엇을 걷어 내는 일이 필름 위에서는 같은 동작이라는 것. (나는 지우는 쪽이 늘 더 오래 걸린다고 믿어 온 사람이다.)

집에 남은 쪽도 그 법 아래 있었다. 페넬로페는 자기 집에 들어앉은 남자들을 몇 해나 견딘다. 들인 적 없는 손님들이다. 마지막 싸움에서 그 사람은 배신한 하녀 멜란토를 직접 밀어 떨어뜨린다. 원작에서는 하녀 열둘이 목매달려 죽는데 이 영화는 그 긴 장면을 지우고 손짓 한 번만 남겼다. 지운 쪽이 더 무서운 경우가 있다.

죽은 자들의 땅에 간 대목에서 나는 울었는데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재 같은 흙에서 죽은 사람들이 몸을 끌고 올라온다. 그들이 올라오는 이유는 피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부어 준 피를 마시려고 올라오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도 얻어먹으러 와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러울 일인가 싶은데, 나는 그 대목에서 한참 코를 훌쩍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것을 먹는 이야기였다. 목마를 들인 사람들, 치즈를 꺼내 먹은 사람들, 피를 마시러 올라온 사람들, 남의 집에 들어앉은 사람들. 먹은 쪽은 언제나 나중에 먹힌다. 마지막에 그가 다시 배에 오르는 것도 먼저 죽은 부하들에게 갚으러 가는 길이다. 치즈는 농담이 아니었다. 주인 없는 집에서 누군가의 겨울을 꺼내 먹은 일이 이 사람의 이십 년을 끌고 다닌 것이다.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었다. 치즈가 한 장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최선을 다해 반으로 잘랐고, 나머지 반이 누구 몫인지는 끝내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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