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끝장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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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물면 안 놓는다는 말이 얄미워서
고백부터 한다. 나는 한 번 밀리면 밀린 자리에 눌러앉는 사람이다. 작은 일은 작게 처리하고, 큰 일은 어차피 남이 하겠거니 한다. 윗사람이 뭘 제안하면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끄덕인 다음에야 그게 뭐였는지 생각한다. 그게 편하다는 걸 안 지 오래됐다.
그런 사람이 좌천된 형사 영화를 보면 어떻게 되느냐. 처음 삼십 분은 신난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나오니까.
재혁은 광역수사대 에이스였다. 그 얘기를 영화는 배우 얼굴로 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 한다. 사건을 몇 번 말아먹고 진급에서 미끄러지고, 뇌물 오해까지 받아 충북 보은의 경찰서로 내려가는 과정이 만화 몇 컷으로 지나간다. 나는 그 압축이 좋았다. 밀려난 사람의 사정은 길게 들으면 변명이 되고 짧게 들으면 이력이 된다. 영화는 이력 쪽을 골랐다.
내려간 자리에서 재혁은 삼선 저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 무릎 나온 추리닝 바지로 동네를 돈다. 형사인지 백수인지 모를 차림이라는 소개가 있었는데 정확하다. 서울로 올라갈 때는 데님 재킷으로 갈아입는다. 그게 이 사람이 부리는 멋의 전부다. 나는 여기까지 보고 안심했다. 내 편이구나.
안심은 서장실에서 깨졌다. 서장이 재혁을 불러 신입을 제 발로 나가게 만들라고 한다. 그러면 감사를 덮어 주겠다고. 그 신입이 중호다. 식품회사 대표 아들에 물려받을 게 이백억이고, 팔로워와 내기를 해서 경찰 시험을 봤다는 사람. 재혁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여기까지는 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끄덕였을 거다. 끄덕이고 나서 생각했을 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골 교회 헌금함에서 사만 팔천칠백 원이 없어진다. 내 기준으로 그건 작은 일이다. 작게 처리하고 퇴근하는 일. 재혁은 그 돈을 끝까지 쫓아가 도둑을 잡는다. 별명이 강력반 진돗개란다. 한 번 물면 안 놓는다고. 그 별명이 얄미웠다. 물고 안 놓아서 남은 게 뭔데, 보은 아닌가. 그렇게 투덜대는 사이에 그 도둑이 서울 강남 살인사건 용의자라는 게 드러난다. 그 사건은 이미 범인이 잡혀 일 년째 갇혀 있는, 서류상 끝난 사건이다.
여기서 나 같으면 서류를 믿는다. 끝났다고 적혀 있으면 끝난 거다. 재혁은 서류 대신 자기 감을 믿고 서울로 올라간다. 내보내라는 지시를 받은 그 신입을 옆에 데리고. 원칙보다 감과 운을 믿는 사람과 따지고 드는 사람이 한 차에 타고 있으니 가는 길이 조용할 리 없다. 그런데 그 둘이 투닥거리는 동안 사건은 조금씩 열린다. 나는 그게 얄미웠다. 싸우면서도 일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강남서는 대놓고 돕지 않는다. 팀장은 매 장면 구김 없는 수트 차림이고, 재혁은 데님 재킷이 최선이다. 영화 안에서 누군가는 그놈이 범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죽이지 않았어도 그놈이 범인이라고 말한다. 그게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운 대사였다. 그 말을 하는 쪽이 악당처럼 생기지 않아서 더 그랬다. 구김 없는 옷을 입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더 그랬다.
결말을 적는다. 갇혀 있던 조동오는 그 술집 살인을 하지 않았다. 재혁과 중호가 그걸 밝혀낸다. 보통 영화는 여기서 정의가 이겼다고 음악을 깐다. 이 영화는 한 번 더 간다. 조동오는 다른 여자 셋을 죽인 사람이었고, 강남서는 그걸 증명하지 못하자 엉뚱한 사건으로 묶어 가둬 둔 것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순간 위험한 사람이 풀려난다. 그래서 두 형사는 자기들을 방해하던 강남서 팀장과 손을 잡고 그 사람을 다시 잡으러 간다. 수사를 두 번 한다. 제목에 끝장이라고 붙인 이유를 거기서 알았다.
다시 고백한다. 나라면 첫 번째 수사도 안 했다. 사만 팔천칠백 원은 분실로 처리했을 거고, 그 도둑이 뭐랑 엮여 있었어도 강남서에 전화 한 통 넣고 끝냈을 거다. 두 번째 수사는 말할 것도 없다. 억울한 사람 꺼내 줬으면 됐지, 그 사람이 뭘 더 했는지는 내 담당이 아니다. 나는 담당이라는 말을 그렇게 쓰며 산다.
재혁이 나와 다르게 한 건 하나다. 밀려난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처럼 일하지 않았다. 삼선 저지를 입고도 수사는 광역수사대 때처럼 했다. 서장 앞에서는 끄덕였으면서 사건 앞에서는 안 끄덕였다. 끄덕이는 데와 안 끄덕이는 데를 가릴 줄 안다는 뜻이다. 그게 부러웠고, 솔직히 얄미웠다. 나는 자리가 작아지면 일도 같이 줄이는 쪽이라서. 그리고 어디서든 일단 끄덕이는 쪽이라서.
아무튼 끝장수사를 봤다. 아흔일곱 분이고, 생각보다 웃기고, 생각보다 안 끝난다. 재혁 형사님, 진돗개 소리 얄밉다고 한 거 취소한다. 나는 아직 분실 처리 중이다. 다음 주쯤 한 번 물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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