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끝장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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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차로 잠복하는 법
고백하건대 나는 잠복 장면을 몹시 좋아한다. 두 사람이 차 안에 갇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인데, 사건은 한 치도 나아가지 않건만 사람 사이는 어쩔 수 없이 나아간다. 수사극이 인물을 붙여 놓는 가장 게으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게으르다고 썼지만 흉이 아니다. 나는 잘 쓰는 사람이 게으른 수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이 영화의 계약서는 포스터에 적혀 있다. 하나의 사건, 두 명의 용의자. 조항이 이보다 더 분명할 수는 없다. 지도 위에 붉은 실이 가위표로 지나가고, 압정에 눌린 지문 카드와 피 묻은 손 사진이 실 끝에 매달려 있다. 아래에는 경광등을 켠 순찰차 한 대가 놓여 있다. 관객은 이 종이를 보는 순간 알게 된다. 둘 중 하나는 죄가 없고, 영화가 끝날 때쯤 어느 쪽인지 알려 주겠다는 약속이다. 제목까지 끝장이라 적어 두었으니 중간에 접고 나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포스터에는 조항이 하나 더 숨어 있다. 다섯 얼굴 가운데 경찰 정복을 입고 정모까지 갖춰 쓴 젊은 사내가 선글라스를 낀 채 휴대폰을 들어 제 얼굴을 찍고 있다. 수사물의 포스터에서 수사관이 수사 대신 자기를 찍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배치를 한참 보았다. 저 자리에 흉기나 수갑을 놓는 편이 편했을 터인데 굳이 휴대폰을 쥐여 주었다. 영화가 자기 패를 미리 깐 셈이다.
본편의 조항은 더 뻔뻔하다. 서장이 늙은 형사를 불러 신입을 제 발로 나가게 만들라고 이른다. 대가로 감찰을 덮어 주겠다고 한다. 각본가라면 누구나 여기까지는 자다가도 쓴다. 둘을 떼어 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저 유명한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떼어 놓으라는 지시를 받은 두 사람은 반드시 붙는다. 이 영화는 그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다만 붙는 이유를 우정이 아니라 사건에 맡겨 둔 점이 자못 영리하다.
이제 휴대폰을 뜯어보자. 포스터에서 신입이 그것으로 자기를 찍었다면, 본편의 한 장면에서는 늙은 형사가 그것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여다본다. 복싱 체육관이다. 뒤로 링이 보이고 샌드백이 걸려 있고 사람들이 오간다. 사내는 그 소란 가운데서 작은 화면에만 눈을 붙이고 있다. 같은 기계가 한쪽에서는 자기를 비추고 다른 쪽에서는 남을 들여다보는 데 쓰인다. 소품 하나를 이렇게 갈라 쓰는 손이라면 나머지도 믿어 줄 만하다. 나는 그 배분에 감탄하다가 조금 분해졌다.

차 이야기를 해야겠다. 두 사람이 밤에 잠복을 서는데 타고 있는 것이 주황색 차다. 잠복은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일인데, 이 영화는 어두운 골목에 가장 눈에 띄는 색을 세워 두고 그 안에 형사 둘을 접어 넣었다. 좁은 자리라 두 사람의 어깨가 거의 닿아 있다. 창밖을 보는 두 얼굴의 높이가 다르다. 흰 벽돌담 앞에 주황색 한 덩어리가 서 있는 꼴이라, 숨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 차는 신입의 것이다. 식품회사 대표의 아들이고 물려받을 것이 이백억이라고 하니 차를 고를 형편은 된다. 내기에 이기려고 경찰이 된 사내다. 돈이 필요 없는 자가 월급 받는 일을 하는데, 그 사정이 잠복용 차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잠복에 어울리지 않는 차가 이 인물의 이력서인 셈이다. 소품에 신분을 적어 넣는 수법은 오래된 것이고, 오래된 수법이 잘 들을 때 나는 늘 조금 분하다. 더 얄미운 것은 이 차가 두 사람을 억지로 가깝게 만든다는 점이다. 비싼 차일수록 안이 좁고, 좁은 안에서는 싫은 사람과도 어깨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신분을 자랑하려고 산 물건이 신분을 지워 버리는 자리로 쓰인 것이다.
갇힌 쪽의 설계도 들여다볼 만하다. 그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던 사내이고, 처음 등장할 때 말을 와르르 쏟아내며 웃음을 가져간다. 억울하다고 말할 인물을 웃기게 들여보내는 것은 위험한 수다. 관객이 그를 가볍게 치부해 버리면 뒤의 억울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위험을 알고도 밀어붙인다. 전 정말 억울합니다, 라고 그가 말할 때 앞서 웃은 관객은 자기가 웃었다는 사실 때문에 한 번 더 찔린다. 웃음을 미리 받아 두었다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는 셈인데, 돈놀이하던 인물에게 이런 구조를 지워 준 것은 짓궂다. 나는 그런 종류의 짓궂음을 사랑한다.
그에게 딸이 하나 있다는 설정도 공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갇힌 사람의 바깥에 기다리는 사람을 하나 세워 두면 갇힘의 길이가 비로소 재어진다. 일 년이라는 숫자는 서류에 적을 때는 짧고 밖에 서 있는 아이 쪽에서 세면 길다. 영화는 이 산수를 설명하지 않고 인물만 놓아 둔다. 놓아 두는 쪽이 설명하는 쪽보다 언제나 비싸다.
시골과 서울을 갈라 놓은 방식도 계약의 일부다. 시골 경찰서는 좀도둑과 헌금함을 다루고 서울 경찰서는 살인을 다룬다. 다루는 사건의 크기가 사람의 크기로 번역되는 것이 이 바닥의 오랜 관례인데, 이 영화는 그 환율을 뒤집는 데 아흔일곱 분을 쓴다. 헌금함을 뜯는 손을 쫓던 쪽이 살인을 다루던 쪽보다 먼저 진실에 닿는다. 뒤집는 재미가 수사의 재미보다 앞선다고 해도 나는 말리지 않겠다.
불만도 하나 적어 두어야 공평하겠다. 두 사람이 서울로 올라가 공조를 청하자 그 사건을 맡았던 강남경찰서 팀이 미적거린다. 팀장이 앞장서서 미적거린다. 끝난 사건을 지키려는 조직이 진짜 적이라는 구도인데, 이쯤 되면 관객은 다음 장면을 보지 않고도 그 팀장의 서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해 버린다. 장르의 가장 닳은 수순을 가장 닳은 순서로 놓은 것은 관객을 너무 얕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포스터에 조항을 두 개나 숨겨 둔 솜씨를 생각하면 더 아깝다.
만든 사람들의 사정을 내가 알 길은 없으나, 이 영화가 큰돈을 들여 찍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화면 곳곳에 적혀 있다. 시골 경찰서의 낡은 사무실, 유리 한 장으로 갈린 접견실, 노란 벽의 작은 식당. 돈이 모자랄 때 각본은 대개 수다스러워지는데 이 영화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아흔일곱 분이라는 길이도 그 선택에 속한다. 더 길게 끌 자리가 분명히 있었건만 끌지 않았다.
계약서가 두 장이라는 점도 적어 두고 싶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궁극의 콤비라는 뜻이다. 한국 제목은 수사를 끝까지 하겠다는 말이고 영어 제목은 두 사람이 짝이라는 말이다. 한쪽은 사건을 걸고 다른 쪽은 사람을 건다. 어느 쪽을 보고 들어오느냐에 따라 관객이 기다리는 것이 달라지는데, 이 영화는 두 약속을 다 지키려고 아흔일곱 분을 꽤 바쁘게 쓴다. 두 장을 다 지키려는 욕심을 나는 나무라지 않는다.
포스터로 한 번 더 돌아가자면, 가운데에 서류철을 펼쳐 든 여자가 있다. 극 중에서 그는 검사이고, 두 형사가 끝난 사건을 다시 열려 할 때 그쪽에서 손을 내민다. 수사극에서 검사가 맡는 자리는 대개 둘 중 하나다. 도장을 쥐고 안 찍어 주거나, 도장을 쥐고 찍어 주거나. 이 영화는 뒤쪽을 골랐다. 포스터에서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총이 아니라 종이이고, 극 중에서 그가 움직이는 자리마다 종이가 따라다닌다. 수사극에서 종이를 든 인물은 대개 늦게 오는데, 이 영화에서는 제때 온다.
계약은 어떻게 닫히는가. 두 용의자 가운데 갇혀 있던 쪽은 죄가 없었다. 진범은 시골 교회의 헌금함을 뜯던 좀도둑이었다. 살인범이 일 년 동안 붙잡히지 않고 살면서 한 일이 헌금함 털기였다는 것, 이 배치에는 제법 지독한 데가 있다. 큰 죄를 지은 자가 작은 죄로 걸린다는 수는 흔하지만, 그 작은 죄를 하필 교회에 두고 액수까지 끝자리가 맞아떨어지게 적어 넣은 것은 흔하지 않다. 나는 그런 종류의 악의를 사랑한다.
포스터의 조항은 지켜졌다. 하나의 사건에 두 명의 용의자가 있었고, 영화는 끝내 한쪽을 가리켰다. 지키겠다고 적어 둔 것을 지키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다. 지키는 동안 관객이 먼저 답을 알아차리면 그 계약은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흔일곱 분 동안 답을 쥐고 있었다.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든다.
모름지기 잠복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안 두 사람이 서로를 견디는 일이지, 범인을 잡는 일이 아니다. 주황색 차를 세워 둔 쪽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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