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100일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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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간수에 관한 보고
동네 헬스장 탈의실에는 사물함이 마흔 개쯤 있는데, 그중 자물쇠가 걸린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나머지는 문짝이 반쯤 열린 채로 각자의 사정을 성실하게 공개하며 서 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물쇠들이 대체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고리를 거시는 분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금붙이를 넣어 두시는 것도 아니어서, 내가 곁눈으로 확인한 바로는 해진 수건 한 장과 바닥에 물때가 앉은 샴푸통, 그리고 뚜껑이 잘 닫히지 않는 가루 한 통이 그 안에 든 전부였다. 그렇다면 저것은 물건을 지키려고 건 자물쇠인가 아니면 자물쇠를 걸 자격을 지키려고 들여놓은 물건인가, 지킬 것이 있어서 채우게 된 것인가 채우고 나니 지킬 것이 생긴 것인가, 그리고 번호를 늘 0000에 맞춰 두시면서도 매번 꼬박꼬박 고리를 거시는 저 어르신께서는 지키는 쪽인가 여는 쪽인가.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100일의 거짓말〉 되겠다. 1932년 경성을 무대로, 하루에 일 원 이상은 긁어모아야 그날이 겨우 끝나는 소매치기 처자 한 분이, 어릴 적 선교사 집에서 주워들은 조선말과 일본말과 영어를 유일한 밑천으로 삼고, 밀항에 이미 한 번 실패한 전력을 품은 채, 그럼에도 바다 건너로 뜨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의 주머니를 부지런히 비우며 살아가다가, 끝내는 조선총독부에 통역생으로 위장해 들어앉아 밀정 노릇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라고 적어 놓고 보니 다소 민망할 정도로 굵고 단순한 이야기다. 그 굵고 단순한 것을 열여섯 번에 나누어 들려주시겠다는 것이 이 작품의 계획이라 하겠다.
영화 좀 보셨다는 분들은 다음 수순을 이미 맞히셨을 것이다. 하필 그날, 하필 그 역에서, 하필 그 가방을, 하필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될 분의 것으로. 그러고는 쫓기다 올라탄 기차 칸에서, 하필 앞으로 백 일간 얼굴을 맞대야 할 사내와, 하필 어깨를 부딪치는 것이다. 업계가 수십 년간 갈고닦은 표준 공정의 정수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다 차려진 밥상을 물리기는커녕 숟가락을 두 개쯤 더 얹는다. 가방 하나로는 모자랐던지 같은 날 지갑까지 하나 더 털게 하시고, 그것도 부족했던지 그 가방 속 쌀자루 안에서 총알을 꺼내 보이신다. 과연.

지갑 쪽은 따로 적어 둘 만하다. 처자께서 털어 온 지갑 안에는 동경의 제국대학 문학부에서 영문학을 하셨다는 서류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긴 내역이 들어 있었고, 정작 현금은 삼 원이 전부였다. 처자는 특등석 손님이 고작 이것밖에 없느냐고 아쉬워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턴 쪽보다 털린 쪽이 더 딱했다.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나오고 특등석에 앉아 다니는 분의 안주머니에 삼 원과 전당포 영수증이 들었다면,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가난한 것인지 나로서는 판정할 길이 없다. 다만 그 사내의 형편을 설명하는 데 대사 한 줄 쓰지 않고 지갑 속 종이 두 장으로 끝내 버린 솜씨는, 차라리 장인의 것으로 보인다.
그 사내가 기차 칸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다는 점도 적어 둔다. 한 팔로는 남의 집 아이를 받치고 다른 팔로는 부딪쳐 온 처자를 떼어 내느라, 정작 제 안주머니는 활짝 열어 둔 셈이 되었던 것이다. 뒤에 다시 마주쳤을 때 그 사내께서 처자에게 건네신 말씀은 소매치기 솜씨가 굉장히 훌륭하더라, 였다. 털린 쪽이 턴 쪽의 기량을 공손히 평가해 주는 이 장면은 앞으로 두 분이 백 일 동안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실지를 꽤 정확하게 예고한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통역이라는 직업을 사건 한복판에 세워 두었다. 남의 말을 옮기는 일로 먹고사는 사내와 남의 주머니를 옮기는 일로 먹고사는 처자가 한 건물에서 백 일을 지내게 되는 배치인데, 둘 다 원래 제 것이 아닌 것을 잠시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엄연한 동업자라 하겠다. 이 배치를 생각해 낸 쪽은 아마 꽤 오래 즐거웠을 법하다.
한편 가방을 잃으신 쪽의 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경성역 승강장에서 새로 부임한 정무총감 영감과 인사를 나누시던 중에 가방을 털리셨는데, 그 안에 든 것이 쌀과 총알이었다. 그놈의 행방을 찾고 이 기회가 오기까지 십삼 년이 걸렸다고 말씀하시는 분의 짐이다. 처자는 그 댁을 찾아가 육십 원을 부른다. 총독부 이인자에게 아주머니가 총알을 몰래 들여왔다고 일러바친들 누가 자기에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는, 과연 민간인다운 셈법이다. 나는 여기서 이 작품이 독립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숭고하게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에게는 십삼 년이고 누구에게는 육십 원이다.

민원을 하나 보태자면 이렇다. 하루에 일 원씩, 날마다 거르지 않고 모았다고 치자. 뱃삯과 서류값과 건너가서 버틸 돈까지 셈해 보면 그 처자가 미국 땅을 밟는 날이 대체 몇 해 뒤인지에 관하여 이 작품은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물론 해명이 없는 편이 옳다. 셈이 똑 떨어지는 꿈이었다면 애초에 백 일을 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민원을 넣는 쪽의 입장에서는 접수증 한 장쯤은 받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 집 안에서 미국 여권을 발견한 처자가 그것을 품고 나가려다 지갑 주인과 문 앞에서 마주치고, 지갑을 돌려 달라는 실랑이가 붙은 바로 그때, 케이크를 들고 들어온 배달부가 총을 꺼낸다. 처자는 영어로 암살이라고 외친다. 그게 다다.
다음 날 탈의실에서 나는 자물쇠들을 한 번 더 보았다. 지킬 것이 있어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울 것이 하나라도 생긴 사람이 자물쇠를 산다. 처자가 백 일을 걸고 사려는 것도 결국 자물쇠 하나다. 뭐, 남의 주머니를 그렇게 열고 다니던 사람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제 것을 잠그는 법이라는 건 조금 쓸쓸한 일이다.
조만간 0000 어르신께 번호를 한번 바꿔 보시라는 말씀을 드려 볼까 한다. 백 일쯤 쓸 만한 번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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