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100일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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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몫

즉흥한모금· 2026. 10. 11.· 1,824자

사람은 대의 때문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대개는 제 몫 때문에 건다. 몫이 걸린 자리에서만 사람은 끝까지 간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결국 어딘가에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

1932년 경성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소매치기다. 하루에 일 원 이상을 모아야 그날이 끝난다. 어릴 때 선교사의 집에서 조선말과 일본말과 영어를 배웠지만 그 말로 밥을 벌어 본 적은 없다. 밀항에 한 번 실패했고, 그러고도 미국에 갈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항일 단체가 그에게 조선총독부에 들어가 밀정 노릇을 하라고 제안한다. 기한은 백 일이다.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흔한 거짓말은 각성이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시작했지만 차차 민족을 알게 되었다는 식의 순서. 첫 회는 그 문을 열어 두고도 들어가지 않는다. 주인공은 제안을 받고 이렇게 말한다. "저 미국 보내주세요. 그럼 할게요, 밀정." 조건이 먼저고 대의는 뒤에도 오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100일의 거짓말 스틸컷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 착할 것이라고 믿는다. 빼앗긴 쪽은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다. 주인공이 경성역에서 터는 가방은 독립운동 단체 사람의 것이다. 가방 속 쌀자루에서 총알이 나오자 그는 그 사실을 값으로 바꾼다. 육십 원을 부른다. 총독부 이인자에게 일러바친다고 자기한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덧붙인다. 협박이다. 작품은 그 장면을 변명하지도, 귀엽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구조는 단순하다. 등장인물이 저마다 가짜 이름을 하나씩 갖고 있다. 소매치기는 금서희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들어간다. 그가 지갑을 턴 엘리트 통역관에게는 조선 이름과 일본 이름이 둘 다 있다. 정무총감의 양자다. 통역이라는 직업 자체가 남의 말을 제 입으로 옮기는 일이다. 거짓말을 재료로 쓰면서 거짓말에 대해 훈계하지 않는 것, 그게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미덕이다.

십삼 년 전에 조선인 스물세 명이 죽었다. 죽인 자는 지금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부임한다. 승강장에서 그는 환영을 받는다. 죽인 쪽은 올라가고 잃은 쪽은 십삼 년을 기다렸다. 나는 이 장면에서 화가 나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생겼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보다 기다린 쪽의 얼굴을 보는 편이 낫다. 그 얼굴은 울지 않는다.

100일의 거짓말 스틸컷

1932년의 경성을 다시 세우는 데 돈과 시간이 들어갔다는 것은 첫 회만 봐도 안다. 완성도에 대해 할 말은 그 정도다. 시대극에서 중요한 것은 때깔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 무엇으로 먹고사는지를 보여 주느냐다. 이 작품은 그것을 숫자로 말한다. 하루 일 원. 지갑 속 삼 원. 입막음 값 육십 원.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주인공은 억울해하지 않는다. 자기 처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가난을 명분으로 바꾸지 않는다. 훔친 지갑에 삼 원밖에 없으면 특등석 손님이 고작 이것뿐이냐고 아쉬워한 다음 바로 다음 주머니로 간다. 나는 이런 인물을 신뢰한다. 자기 처지를 사연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끝까지 가기 때문이다.

100일의 거짓말 스틸컷

첫 회의 끝은 암살이다. 미국 여권을 쥐고 나가려던 주인공이 문 앞에서 지갑 주인과 마주친다. 지갑을 돌려 달라는 실랑이 중에 케이크를 든 남자가 들어와 총을 꺼낸다. 주인공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영어로 암살이라고 외친다. 선교사 집에서 배운 말, 평생 밥 한 끼 벌어 주지 못한 그 말이 처음으로 쓸모를 얻는 순간이다. 대단한 장면이 아니다. 대단하지 않아서 좋았다.

백 일이 아직 남았다. 남은 회차에서 주인공이 변할 수도 있다. 변해도 시작점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아무 명분 없이 돈 때문이라고 해도,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제 몫을 챙기는 사람이 끝까지 간다. 명분은 나중에 붙는다. 안 붙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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