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100일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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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총알

정담뜰· 2026. 10. 11.· 1,857자

경성역 승강장에서 여자가 가방 하나를 들고 달아났다. 가방의 주인은 모자를 쓴 나이 든 여자였다. 나이 든 여자가 새로 부임한 정무총감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여자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에서 여자가 사내와 부딪쳤다. 사내는 한 팔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여자가 사내의 지갑을 뺐다.

100일의 거짓말 스틸컷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쌀이 있었다. 쌀 속에 총알이 있었다. 여자가 총알을 꺼내 보았다. 일본 경찰이 객차를 검문했다. 쌀은 먹는 것이고 총알은 죽이는 것이다. 한 자루 안에 둘이 같이 있었다.

여자는 소매치기다. 하루에 일 원 이상을 모아야 했다. 여자는 어릴 때 선교사의 집에서 자랐다. 거기서 조선말과 일본말과 영어를 배웠다. 배운 말로는 밥을 벌지 못했고 손으로 벌었다. 여자는 한 번 밀항에 실패했다. 실패한 뒤에도 돈을 모았다.

여자가 사는 곳은 토막촌이다. 흙과 거적으로 지은 집들이 붙어 있다. 그 방 안에서 수염이 긴 사내가 여자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눈을 들지 않았다. 여자의 몸은 작고 손은 빨랐다. 빠른 손으로 버는 돈은 언제나 하루치였다.

100일의 거짓말 스틸컷

지갑을 잃은 사내는 통역을 한다. 남의 말을 받아서 다른 말로 내놓는 일이다. 사내는 조선말과 일본말과 영어를 한다. 사내는 정무총감의 양자다. 그래서 이름이 둘이다. 사내는 십 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날 기차에서 지갑을 잃었다.

기차에서 사내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한 팔로 아이의 엉덩이를 받쳤다. 아이는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팔이 묶여 있는 동안 안주머니가 열려 있었다. 여자는 열린 쪽으로 손을 넣었다. 무게를 안은 몸은 느렸고 빈손은 빨랐다.

100일의 거짓말 스틸컷

여자의 손은 남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사내의 입은 남의 말 속으로 들어간다. 손은 물건을 옮기고 입은 뜻을 옮긴다. 옮겨지는 동안 물건과 뜻은 주인을 잃는다. 둘 다 제 것이 아닌 것을 쥐고 하루를 산다.

지갑 안에는 종이가 있었다. 동경의 제국대학 문학부에서 영문학을 했다는 서류였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긴 내역도 있었다. 현금은 삼 원이었다. 여자는 특등석 손님의 주머니에 삼 원뿐인 것을 아쉬워했다. 여자는 나이 든 여자의 집으로 갔다. 여자는 육십 원을 불렀다. 총알을 보았다는 말을 돈으로 바꾸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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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여자가 정무총감을 집으로 불렀다. 집 안에 상이 차려졌다. 초대한 쪽과 초대받은 쪽이 한 상에 앉았다. 그 집 안에 총알이 들어와 있었다. 상 위에는 접시가 놓였다.

나이 든 여자는 십삼 년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놈의 행방을 찾고 이 기회가 오기까지 십삼 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십삼 년 전에 조선인 스물세 명이 죽었다. 죽인 자가 지금 정무총감이다. 나이 든 여자는 총독부 안에 사람을 심으려 했다. 정무총감은 이번에 그 단체의 뿌리를 뽑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독립을 말하지 않았다. 여자는 미국에 보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밀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조선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하다고 말했다. 값이 먼저였고 뜻은 뒤에도 오지 않았다.

나는 이 거래가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굶은 자가 뜻을 먼저 말할 때 그 뜻은 대개 빌려 온 것이다. 나는 여자의 셈을 비웃을 수 없다.

여자가 미국 여권을 집었다. 여자가 그것을 품고 문으로 갔다. 문 앞에서 사내와 마주쳤다. 사내가 지갑을 돌려 달라고 했다. 케이크를 든 남자가 들어왔다. 상자 대신 총이 나왔다. 여자가 영어로 암살이라고 외쳤다. 선교사의 집에서 배운 말이 그 순간에 쓰였다.

나는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말할 수 없다. 백 일이 어떻게 끝나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쌀 속에 총알이 있었다. 그 가방을 연 손은 하루에 일 원을 버는 손이었다. 그 손이 총알을 다시 쌀 속에 묻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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