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부활남: 더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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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꽃등심
냄비에 물을 부었다. 물의 양을 두고 사내와 여자아이가 다퉜다. 둘은 남매다. 라면 한 봉지에 물을 얼마나 부을 것인가를 두고 둘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내는 서른한 살이다. 일이 없다. 남들에게 하나씩 있는 인턴 경력이 사내에게는 없었다. 서류에서 떨어졌다. 면접까지 올라가도 떨어졌다.
떨어지는 까닭이 있었다. 사내는 바른말을 참지 못했다. 면접장에서 불합리한 것을 보면 화를 냈다. 화를 내고 떨어졌다. 떨어지고 또 지원했다. 사내는 그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사내가 바라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 월급으로 가족과 꽃등심을 먹는 것. 동생의 학비에 보태는 것. 그게 전부였다.
동생이 오빠의 면접을 받아 주었다. 집에서 둘이 마주 앉아 모의 면접을 했다. 묻는 쪽이 동생이었다. 답하는 쪽이 오빠였다. 동생이 오빠보다 어른이었다.
면접을 망친 밤이었다. 사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낯선 자들이 사내를 덮쳤다. 사내가 죽었다. 일흔두 시간이 지났다. 사내가 눈을 떴다.
죽은 몸이 다시 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흔두 시간이었다. 사흘이다. 사흘은 짧지 않다. 사흘 동안 사내는 없다. 없는 동안의 일을 사내는 알지 못한다.
사내는 죽을수록 강해졌다. 강해질수록 머리털이 붉어졌다. 몸이 저를 어디까지 바꿨는지가 머리털에 적혔다. 숨길 수가 없었다.
골목에서 차가 뒤쫓았다. 차는 좁은 길로 밀고 들어왔다. 사내가 달렸다. 추격이 끝났다. 사내는 붉어진 제 머리털을 보았다. 그러고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 사람은 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린다. 붉은 것을 보고 붉은 것을 떠올린다. 몸이 먼저 대답한 것이다.
사내의 손에 쥐어진 것은 적었다. 사내는 작은 잔 하나를 두 손으로 쥐고 앉아 있었다. 방에는 지구본과 도자기와 낡은 액자가 쌓여 있었다. 남의 물건들이었다. 사내의 것은 잔 하나였다.

여자아이가 작은 화면 앞에 앉았다.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사내가 옆에 앉아 손을 모으고 같은 화면을 보았다. 찾는 일은 여자아이가 했다. 사내는 기다렸다. 이 집에서 셈을 맞추는 쪽은 어린 쪽이었다.

사내에게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친구는 사내에게 쓴소리를 했다. 사내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일흔두 시간 뒤에 되살아난 저를 찾으러 와 달라고 했다. 친구는 사내를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갔다. 나라 밖으로 나갈 일을 접고 사내를 찾으러 갔다.
이 부탁은 죽은 뒤를 남에게 맡기는 말이다. 맡기는 쪽은 그 사흘을 보지 못한다. 맡은 쪽은 사흘을 혼자 센다. 센 쪽이 가서 꺼낸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사내를 쫓았다. 그 자는 남을 조종했다. 사람을 세우고 앉히고 걷게 했다. 그 힘이 이 사내에게만 듣지 않았다. 그 자에게도 사내의 몸이 필요했다.
그 자는 말을 아꼈다. 낮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우리말로 말하다가 다른 나라 말로 넘어갔다. 말을 줄인 자리에 몸이 들어섰다. 밤의 물가에 그 자가 서 있었다. 멀리 도시의 불빛이 번졌다. 두 사내가 그 자의 좌우에 서 있었다.
싸움이 붙었다. 그 자가 차 지붕 위에 올라섰다. 유리가 깨져 있었다.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다.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자의 몸은 사람의 몸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기차 안에 여자가 하나 앉아 있었다. 여자는 삶은 달걀을 먹었다. 여자는 노래를 불렀다. 순한 얼굴이었다. 뒤에 그 여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여자가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달걀을 먹던 손과 같은 손이었다.
이 영화에는 색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이 나왔다. 붉은 쪽이 있고 푸른 쪽이 있고 검은 쪽이 있었다. 이름 대신 색으로 부르는 것은 사람으로 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부르는 쪽이 따로 있었다. 부르는 쪽은 끝까지 얼굴을 적게 보였다.
사내가 붙잡혔다. 손에 쇠가 채워졌다. 복면을 쓰고 총을 든 자들 사이를 걸어갔다. 벽은 둥근 구멍이 박힌 회색이었다. 사내는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머리만 환했다.
뒤로 갈수록 화면이 커지고 빨라졌다. 사람의 몸이 할 수 없는 일이 늘었다. 몸과 몸이 부딪치던 자리에 빛과 빛이 들어섰다. 앞의 한 시간 반 동안 이 영화는 몸을 보여 주었다. 넘어지는 몸, 끌려가는 몸, 잔을 쥔 두 손. 마지막에 그 몸이 줄었다.
영화는 백한 분이다. 열다섯 살부터 볼 수 있다. 연재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에서 옆집에 살던 여자아이를 영화는 한집에서 자란 동생으로 바꾸었다. 바꾼 쪽이 라면 물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그 다툼이 왜 남았는지를 생각했다. 죽었다 살아나는 일은 지어낸 것이다. 라면 물의 양은 지어낼 수 없는 것이다. 지어낸 것 옆에 지어내지 않은 것을 하나 놓아야 이야기가 선다. 나는 이 영화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꽃등심이 화면에 나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은 사내가 그것을 먹겠다고 말했다는 것뿐이다. 말한 쪽은 그때 직장이 없었다. 직장이 없는 사람의 상차림은 늘 다음으로 밀린다.
낮의 길에서 사내가 경찰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순찰차의 문이 열려 있었다. 뒤로 상점 간판이 늘어서 있었다. 사내는 흰 겉옷을 걸쳤고 그 안에 입은 옷에는 웃는 얼굴이 하나 크게 박혀 있었다. 머리털은 붉었다. 경찰 하나가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사내는 앞을 보고 있었다.
옷은 웃고 사람은 웃지 않았다. 둘이 한 몸에 붙어 있었다. 이 영화는 그 몸을 자주 길 위에 세웠다. 골목에 세우고, 차 앞에 세우고, 총 든 자들 사이에 세웠다. 세울 때마다 머리털의 붉기가 달랐다.
사내의 하루는 그렇게 갔다. 떨어지고, 죽고, 살아나고, 붙잡히고, 다시 걸었다. 그 사이사이에 먹었다. 라면을 끓이고 떡볶이를 떠올리고 꽃등심을 말했다. 죽는 일은 사흘마다 끝났고 먹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에 놓인 것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 냄비였다. 가장 큰 것은 싸움이었다. 냄비는 손으로 들 수 있고 싸움은 들 수 없다. 나는 이 영화가 들 수 있는 것을 놓고 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라면 물은 남았다. 물의 양을 두고 다투던 두 사람은 끝까지 한집에 있었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영화가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 물이 얼마였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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