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룩백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문틈으로 들어가고 창으로 나온다

지도대장· 2026. 10. 28.· 3,054자

밤이고, 책상이고, 등이다. 영화는 네컷 만화를 그리는 초등학교 4학년 후지노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한 자리에 오래 서서 그 등을 본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첫 컷이 1분 30초짜리 긴 컷이라고 말했고,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책상 위 거울에 후지노의 얼굴을 비추었다고 했다. 벽에는 메모지가 붙어 있고 침대와 창가에는 책이 쌓여 있다. 58분짜리 영화의 첫 1분 반을 방 하나, 그것도 책상 하나에 쓴 셈이다.

왜 이 영화는 사람 얼굴보다 등을 먼저 보여 줄까? 내 가설은 이렇다. 이 이야기는 두 소녀의 우정이기 전에 방 두 개의 이야기다. 한 방에는 거울이 있고 다른 방에는 문틈이 있다. 두 방이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곧 두 사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다.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은 방마다 되물어 보겠다.

공간 1 · 거울이 있는 책상

후지노의 책상에는 거울이 있다. 혼자 그릴 때 그 거울은 바쁘다. 등을 보이고 앉은 아이의 표정을 관객이 볼 수 있는 유일한 틈이기 때문이다. 학교 신문에 네컷 만화를 실어 친구들의 칭찬을 받던 후지노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지면을 나눠 갖게 된 등교 거부 동급생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멈춘다. 배경 그림이 자기보다 훨씬 좋다. 그날부터 후지노의 방은 연습실이 된다. 창밖으로 계절이 바뀌고 책상 옆에 스케치북이 쌓인다. 영화는 이 시간을 거의 같은 구도로 반복해서 찍는다. 책상, 등, 거울. 방은 그대로인데 스케치북의 높이만 달라진다.

공간으로 보면 거울이 있는 책상은 한 사람을 위한 자리다. 거울이 보여 주는 얼굴은 늘 자기 얼굴이다. 혼자 쓰는 방에서 거울은 경쟁자이자 관객이고 선생이다. 일상에도 비슷한 자리가 셋 있다. 독서실의 칸막이 책상, 새벽 헬스장의 거울 앞, 혼자 들어간 노래방. 셋 다 남이 없는데 남을 의식하는 자리다. 후지노가 연습을 그만두는 것도 이 방에서다. 아무리 그려도 쿄모토를 따라잡지 못하자 그리기를 접는다.

그런데 거울은 뒤에 가면 조용해진다. 감독은 후지노와 쿄모토가 함께 그릴 때는 거울을 특별히 강조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쿄모토가 옆에 있으니까. 같은 책상인데 거울이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방이 바뀐 게 아니라 방에 있는 사람 수가 바뀌었다. 가설을 되물리면, 공간이 관계를 정한 게 아니라 관계가 공간의 쓰임을 바꿨다.

룩백 스틸컷

공간 2 · 문틈

초등학교 졸업식 날, 후지노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학교에 오지 않는 쿄모토의 집에 졸업장을 가져다준다. 집 안에는 스케치북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그리고 닫힌 문이 있다. 후지노는 기척 없는 문 앞에서 장난삼아 쿄모토를 놀리는 네컷 만화를 그리는데, 그 종이가 문 밑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문이 열리고 쿄모토가 나온다. 쿄모토는 후지노가 학교 신문에 그린 만화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말하고 사인을 청한다. 후지노는 쿄모토가 입은 옷의 등에 사인을 해 준다.

문틈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작은 공간이다. 사람은 못 지나가고 종이 한 장만 지나간다. 그런데 이 집의 모든 일이 그 틈으로 벌어진다. 쿄모토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방에 머무는 아이였고, 후지노는 그 방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둘을 이어 준 것은 초인종도 전화도 아니고 바닥과 문 사이의 몇 센티미터다. 나중에 쿄모토는 후지노에게 방에서 나오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 말이 가리키는 것도 결국 이 틈이다.

영화는 이 틈을 한 번 더 쓴다. 쿄모토는 만화 연재 대신 미대에 가고, 후지노는 혼자 연재를 이어 가다가, 2016년 1월 10일 미대에 침입한 남자에게 쿄모토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례를 치르고 혼자 쿄모토의 집에 간 후지노는 옛날에 자기가 그린 그 놀리는 네컷을 찢는다. 찢긴 조각 가운데 「나오지 마」가 적힌 부분이 다시 문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영화는 다른 시간을 보여 준다. 그 조각을 본 쿄모토가 방에서 나오지 않고, 후지노와 만나지 못한 채 미대에 가고, 그래도 사건의 날에 만화 대신 운동을 계속한 후지노가 범인을 막는 세계다. 같은 문틈으로 같은 종이가 들어갔는데 한 번은 사람을 밖으로 불러냈고, 한 번은 안에 머물게 했다. 문틈이 한 일은 같다. 종이를 통과시킨 것뿐이다. 달라진 것은 종이에 적힌 글자다.

룩백 포스터

공간 3 · 창

다른 시간 속에서 쿄모토는 후지노가 자기를 구하는 네컷 만화를 그리고, 그 종이는 열린 창으로 날아가 원래 시간의 후지노 앞에 떨어진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방에 들어간다. 그 방에는 자기가 혼자 연재한 만화의 단행본과 관련 물건들이 있다. 쿄모토는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그 책을 읽고 있었다. 후지노는 그 네컷을 집으로 가져와 책상 앞 창에 붙이고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다시 그 등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종이가 드나드는 구멍이 둘 있다. 문틈과 창. 문틈으로는 후지노의 종이가 쿄모토에게 들어갔고, 창으로는 쿄모토의 종이가 후지노에게 나왔다. 방향이 반대다. 첫 번째 종이는 바닥으로 기어 들어갔고 두 번째 종이는 공중으로 날아 나왔다. 아마 감독이 둘을 짝으로 놓고 그렸을 것이다. 확인한 것은 아니다.

창에는 작은 변화가 하나 더 있다. 후지노가 혼자 연습하던 때 창은 계절을 보여 주는 쪽이었다. 창밖이 바뀌는 동안 방 안은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 창에는 종이가 붙어 있다. 바깥을 보여 주던 면이 안쪽을 보는 면이 된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의자도 원작의 짐볼에서 등받이 의자로 바꿨다고 말했다.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면 책상을 마주한 후지노의 마음이 관객에게 전해지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창에 붙은 종이와 흔들리지 않는 의자. 방은 그대로인데 이 두 가지가 처음의 방과 마지막의 방을 다른 방으로 만든다.

처음 가설로 돌아간다. 방 두 개가 두 사람을 정했는가. 반은 맞다. 거울이 있는 책상이 후지노를 혼자 그리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문틈이 둘을 만나게 했고, 창이 마지막 종이를 건넸다. 나머지 반은 틀렸다. 거울을 조용하게 만든 것은 옆에 앉은 사람이었고, 문틈으로 종이를 밀어 넣은 것은 손이었다. 공간은 길을 냈을 뿐이고 그 길을 걸은 것은 사람이다. 후지노는 영화 어딘가에서 쿄모토도 자기 등을 보면서 성장하는구나, 하고 말한다. 등은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등은 책상과 창과 문 사이에 놓인 가장 작은 방처럼 보인다.

댓글

0 / 1,00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룩백의 다른 리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