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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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장을 그려서 몇 초를 산다
143쪽. 원작 만화의 분량이다. 2021년 7월 19일에 한 웹 만화 플랫폼에 올라와 첫날 250만 번 읽혔고 이틀 만에 400만 번을 넘겼다고 한다. 이 143쪽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영화가 58분이다. 엔딩 크레딧이 53분쯤에 올라간다고 하니 본편만 치면 어림잡아 1분에 2.7쪽, 한 쪽에 22초꼴이다. 나는 이 숫자를 들고 영화를 봤다. 그리고 영화가 그 평균을 어디서 깨는지를 세어 봤다.
계산 1 · 한 컷이 몇 초인가
영화 전체는 700컷 안팎이라고 한다. 58분을 700으로 나누면 한 컷에 5초다. 보통의 극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다. 그런데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 첫머리의 긴 컷이 1분 30초라고 말했다. 평균의 열여덟 배다. 4학년 후지노가 책상에서 네컷 만화를 그리는 뒷모습을 그 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본다. 평균 5초짜리 영화가 첫 장면에서 90초를 쓰면, 다른 장면 열일곱 개가 그만큼 짧아져야 한다. 영화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쿄모토의 그림을 본 뒤 후지노가 연습에 매달리는 시간은 창밖 계절이 바뀌고 스케치북이 쌓이는 짧은 컷들로 지나간다. 1분 반 동안 한 장 그리던 아이가 몇 분 만에 몇 해를 보낸다.
이 배분이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리는 일은 한 장이 길고 세월은 짧다. 책상 앞에 앉아 본 사람은 안다. 한 장을 완성하는 저녁은 길고, 그 저녁이 쌓인 몇 해는 돌아보면 한순간이다. 영화의 시간 배분이 그 체감과 같은 방향이다. 틀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은 그 몇 해를 더 길게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계산 2 · 195장으로 몇 초
졸업식 날 후지노는 학교에 오지 않는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하러 갔다가, 쿄모토가 자기 만화의 팬이었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 비가 오는 논길이다. 걷던 걸음이 커지고, 뛰다가, 발을 구르고 물을 튀긴다. 감독은 이 한 컷에 배경 없이 인물만 195장을 그렸다고 했다. 자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여러 번 찍어 가며 그렸고, 치마에 흰 선 하나를 빠뜨린 걸 뒤늦게 발견해 모든 장을 다시 고쳤다고도 했다.
195장이 몇 초인지 셈해 보자. 영화는 1초에 24장의 그림을 보여 준다. 한 장을 한 번씩만 보여 주면 195장은 8초다. 애니메이션은 한 그림을 두 번씩 보여 주는 경우가 많으니 그러면 16초다. 섞어 썼다면 그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길어야 20초 남짓한 장면에 195장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 영화의 평균 컷이 5초라고 위에서 계산했으니, 이 장면은 길이로도 평균의 두세 배고 그림 수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
이 계산은 이야기를 흔들지 않는다. 오히려 받친다. 감독은 후지노가 라이벌에게 진 뒤 몹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테니 이 장면에서만큼은 하늘로 솟을 만큼 기뻐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몇 해의 연습이 몇 분짜리 몽타주로 지나갔다면, 그 몇 해가 보상받는 순간은 그 반대로 길고 촘촘해야 셈이 맞는다. 짧게 지나간 시간과 길게 늘인 시간이 같은 저울 위에 있다.
계산 3 · 단행본 11권의 햇수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두 사람은 주간 만화 잡지의 연재 제안을 받는다. 쿄모토는 그림을 더 배우겠다며 미대로 가고, 후지노는 혼자 「샤크 킥」을 연재한다. 영화는 이 만화가 단행본 11권까지 나오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고 알려 준다. 그리고 2016년 1월 10일, 미대에 침입한 남자가 쿄모토를 살해한다.
11권이 몇 해인지 셈해 보자. 주간 연재 만화는 보통 단행본 한 권에 아홉 화에서 열 화가 들어간다. 11권이면 100화 안팎이고, 매주 한 화씩이면 2년 남짓이다. 휴재와 단행본이 연재보다 늦게 나오는 사정을 보태면 3년 가까이로 늘어난다. 쿄모토가 미대에 간 뒤 적어도 두세 해가 흘렀다는 계산이다. 가정이 많으니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후지노가 쿄모토의 방에 들어가 거기서 「샤크 킥」 단행본과 관련 물건들을 발견하는 장면은, 이 햇수가 길수록 무거워진다. 두세 해 동안 매주 나오는 만화를 쿄모토가 자기 방에서 계속 읽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둘이 헤어져 있던 시간의 길이가 곧 그 방에 쌓인 책의 높이다.
작품이 알고 비튼 것
이 영화가 수를 알고 비튼 지점이 하나 있다. 쿄모토의 죽음 뒤, 후지노는 쿄모토의 집에서 어릴 적 자기가 그려 문틈으로 들여보낸 네컷 만화를 찢는다. 찢긴 조각이 다시 문틈으로 들어가고, 영화는 그 조각을 본 쿄모토가 방에서 나오지 않은 다른 시간을 보여 준다. 그 시간의 후지노는 만화 대신 운동을 계속했고, 사건의 날 미대에서 범인을 막는다. 그리고 그 세계의 쿄모토가 그린 네컷 만화 한 장이 바람에 날려 원래 세계의 후지노에게 온다.
종이 한 장이 다른 시간에서 날아올 확률은 계산할 수 없다. 0이라고 쓰는 게 정직하다. 영화도 그걸 안다. 후지노가 집에 돌아와 창에 붙이는 그 종이는 화면에서 그림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쿄모토가 그린 것인지, 후지노가 빈 종이를 붙인 것인지 영화가 정해 주지 않는다. 확률이 0인 사건을 보여 주되 그것이 일어났다고 못 박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이 비틀기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종이 한 장에서 의미를 보는 사람이 놀랍다. 후지노는 그 종이 아래에서 다시 그린다. 감독은 그것이 후지노의 완전한 회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도 셈에 맞다. 195장을 그려 몇 초를 사는 일이 보장하는 것은 그 몇 초뿐이다. 그래도 사람은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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