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프로젝트 헤일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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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유전되는가
건강검진 문진표에는 가족력을 묻는 칸이 있다. 고혈압, 당뇨, 암, 뇌졸중. 나는 해마다 그 칸 앞에서 잠깐 멈춘다. 어머니 쪽인지 아버지 쪽인지 헷갈려서가 아니다. 거기에 없는 항목을 자꾸 찾기 때문이다. 겁. 우리 집은 대대로 겁이 많다. 그 칸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체크할 것이다. 양쪽 다.
그런 내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가족력에 관한 영화로 보였다. 이 영화는 겁쟁이에게 약을 놓아 우주선에 태운 다음, 그가 겁쟁이였다는 기억까지 지워 버리는 영화다. 중학교 과학 교사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자기 이름을 모른다. 옆에는 동료 둘이 죽어 있고, 로봇 팔 하나가 그를 돌보고 있다. 지구에서 11광년 넘게 떨어진 곳이다. 그는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른다. 관객도 모른다. 영화는 두 시간 반 동안 이 질문을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 속도로 돌려준다. 친절한 속도는 아니다.
기억은 교실에서 시작된다. 그가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태양에 미생물이 붙어 빛을 먹고 있다. 이대로면 삼십 년 안에 세상이 얼고 굶는다. 그다음에 에바 스트라트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이 일을 지휘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레이스를 데려가고, 전 세계에서 모인 과학자들 앞에 세우고, 박수를 치게 한다. 박수는 늘 그가 먼저 친다. 출발 몇 시간 전, 사고로 가기로 한 과학자들이 죽는다. 남은 사람은 그레이스뿐이다. 그레이스는 거절한다. 도망친다. 붙잡힌다. 바닥에 눌린 채 빈다. 스트라트는 울면서 약을 놓게 한다. 영화는 이 사실을 거의 끝까지 숨긴다. 숨기는 게 아니라, 그레이스 자신이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 들여다본 건 대사 한 줄이다. 지구에서, 그레이스가 한 우주비행사에게 말한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자원하다니 용감하다고. 비행사가 답한다.
"유전자가 아니에요. 용감해질 이유가 되어 줄 사람이 있으면 돼요."
나는 이 말을 메모했다. 용기가 유전되지 않는다면 우리 집 가족력은 무죄다. 그런데 뒷말이 더 무섭다. 사람이 있으면 된다. 그레이스에게는 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멀리 있고, 죽음은 가까이 있었다. 그는 아이들 대신 자기 목숨을 골랐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영화는 이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지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핑계를 잃는다는 뜻이다. 핑계를 잃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기대어 지금을 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깨어난 그레이스는 자기가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겁쟁이답게 굴지 못한다. 그는 할 일을 한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고, 왜 왔는지 알아내고, 별을 향해 간다. 로봇 팔 말고는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다. 박수도 없다. 그런데 한다. 그다음에 다리 다섯 달린 외계인이 나타나고, 그는 그 외계인의 소리를 녹음해서 표에 적어 가며 말을 배운다. 그리고 그 외계인을 잘 알기도 전에, 해치지 않겠다는 몸짓 하나만 믿고 헬멧을 벗는다. 지구에서 못 가겠다고 바닥을 기던 사람이다. 용기는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되지도 않는 모양이다. 겁은 어쩌면 몸이 아니라 이력서에 붙어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구멍이 있다. 그레이스가 용감해진 것은 기억을 잃어서가 아니라, 돌아갈 길이 없어서일지 모른다. 겁은 선택지가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치과 예약을 미루는 것도, 사표를 서랍에 넣어 두는 것도, 선택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나는 선택지가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겁이 많다. 선택지가 없는 사람은 용감한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라트가 한 일은 용기를 만든 게 아니라 선택지를 없앤 것이다. 영화는 이 점에서 정직하다. 그가 한 일을 사정이 있었다고 포장하지 않고, 울면서 했다고 보여 준다. 운 사람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운 사람도 틀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영화는 한 번 더 꺾는다. 둘은 태양을 먹는 미생물을 잡아먹는 더 작은 생물을 찾아내고, 그것을 길러 낸다. 그런데 그 생물이 통을 빠져나와 외계인 배의 연료까지 먹기 시작한다. 외계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처지가 되고, 그레이스에게는 외계인이 나눠 준 연료로 지구로 돌아갈 길이 생긴다. 이번에는 선택지가 있다. 그는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는다. 연구 결과와 그 생물을 탐사선에 실어 지구로 보내고, 자기는 친구 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선택지가 있는 사람이 처음으로 겁의 반대쪽을 고른 것이다. 이번에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다리가 세 개 많지만.

우리는 사람을 구할 때 「자원」이라는 말을 쓴다. 자원봉사, 자원입대, 자원해서 남은 야근. 매끈한 말이다. 그 말 뒤에는 보통 선택지가 없는 사정이 있다. 영화의 지구도 다르지 않다. 전 세계가 모여 박수를 치고, 영웅을 세우고, 그 영웅이 도망치자 약을 놓는다. 그러고는 이십 년 넘게 소식을 기다린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자원자를 받겠다고 하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으면,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자원자가 된다. 그 사람은 다음 날 회의록에 자원했다고 적힌다. 회의록은 기억을 잃은 그레이스와 같다. 자기가 어떻게 뽑혔는지 모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회의록은 끝까지 기억을 되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가 겁을 이겨 내는 과정이 아니라, 겁을 든 채로 할 일을 하는 과정을 그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레이스는 끝까지 무서워한다. 무서운 채로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외계인의 별에 지어진 방 안에서 그곳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친다. 지구로 돌아갈 배가 준비됐다는 말에 생각해 보겠다고 답한다. 겁쟁이의 대답이 아니다. 선택지가 있는 사람의 대답이다.
내년 문진표에서도 겁은 항목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칸을 찾다가, 없는 칸에 체크하는 대신 다른 것을 적어 볼 생각이다. 용감해질 이유가 되어 줄 사람의 이름. 한 명이면 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나는 아직 그 칸을 못 채웠다. 그래도 칸이 있다는 건 알았다. 문진표에는 없고 영화에는 있는 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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