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직장인들 시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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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과 나간 사람
직장에서 부당함은 사건이 아니다. 날씨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늘 거기 있고, 사람은 그 안에서 우산을 쓰거나 젖거나 나가거나 한다. 이 시트콤은 대본 없이 배우들이 애드리브로 굴리는 가짜 회사 이야기인데, 가짜라서 그 날씨가 더 잘 보인다. 대본이 없으니 부당한 말이 날아왔을 때 받는 쪽도 즉석에서 받아야 한다. 아홉 회 동안 두 사람이 그 날씨를 가장 많이 맞았다. 한 사람은 남았고 한 사람은 나갔다. 나는 그 둘만 보겠다.
백현진 부장, 남은 사람
2화에서 투자사가 보낸 리스크 매니저 강지영이 사무실에 들어온다. 첫 평가가 회사 전체가 다 리스크라는 말이다. 부장은 그 말을 그 자리에서 받는다. 자존심이 상했고, 물러서지 않고, 맞댄다. 그게 2화의 부장이다.
6화의 부장은 다르다. 회식 자리에서 쌓인 서러움이 터진다. 짠하고 웃긴 장면이라고 기사들은 쓰는데, 나는 짠한 쪽만 보였다. 그러고 나서 첫 팝업스토어 현장이다. 화가로 온 의뢰인의 작품 세계를 당나귀 모티브 체험존으로 옮겨 놓았고, 의뢰인의 표정이 굳어 간다. 부장은 리스크 매니저와 언쟁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 의뢰인이 보는 데서.
연출자가 이 시즌 최고의 장면으로 꼽은 것도 부장이다. 실제 기업의 회장 앞에서 발표를 하다 오열했다고 한다. 제작진도 예상 못 했다고 한다. 그 자리는 가짜 회사의 가짜 부장이 진짜 회장 앞에 선 자리였다. 대본이 없는 상대 앞에서 부장은 우는 쪽을 골랐다.
7화에서 맞은 쪽도 부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는 굿즈 회사 대표가 와서 발표를 할 때 직원 몇이 열광했고, 부장은 질문으로 제동을 걸었다. 그 사람이 사라진 뒤 사무실 물건이 없어졌다. 부장이 옳았다. 옳았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다음 회에 그는 구조조정 공기 속에 똑같이 앉아 있다.
이 사람이 한 것은 셋이다. 맞섰고, 울었고, 또 맞섰다.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다. 나가지 않았다. 리스크라는 말을 듣고도, 의뢰인 앞에서 언쟁을 하고도, 회장 앞에서 울고도 다음 회에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연출자는 이 배우가 카메라가 꺼져도 부장 말투로 답한다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이 사람은 버티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버티는 중이다.
김원훈 주임, 나간 사람
7화에서 틀린 쪽에 섰던 사람이 주임이다. 굿즈 회사 대표의 발표에 열광해 기존 업체를 바꾸자고 한 사람. 작품은 7화와 8화를 대놓고 잇지 않지만 나는 잇는다. 한 번 크게 틀린 사람의 다음 제안은 가볍게 거절당한다. 그것도 날씨다.
8화는 구조조정의 회다. 투자사 인사팀장이 와서 서늘한 압박을 깔고, 직원들은 자기 자리와 역할을 돌아본다. 그 공기 속에서 의뢰인의 이미지 전략 회의가 열린다. 주임은 아이디어를 낸다. 거절당한다. 또 낸다. 또 거절당한다. 주임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고, 사무실을 떠난다.
여기까지는 흔하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9화에서 주임은 새 회사에 있다. 그랩웨이브. 비서가 플러팅을 걸어오고, 실무 책임자는 텃세를 부린다. 새 자리는 옛 자리보다 낫지 않다. 다른 종류로 나쁘다. 그리고 옛 사무실에는 새 직원이 앉았다. 대표가 커피를 권하자 같이 안 마셔도 된다고 답하고, 핸드드립 도구로 혼자 커피를 내리는 사람. 카페에서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이 마주친다. 기사는 미묘한 신경전이라고 썼다. 나는 그 신경전이 주임의 몫이라고 본다. 나간 사람은 남은 사람들 앞에서 잘 지내는 얼굴을 해야 한다. 그게 나간 사람의 두 번째 부당함이다.
주임이 한 것은 나간 것이다. 하지 않은 것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아홉 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떠난 자리는 이미 채워졌다.
두 태도가 결말을 바꿨는가. 시즌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결말은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게 이 작품의 정직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사람에게 보상이 오지 않았고, 나간 사람에게 벌이 오지 않았다. 부장은 여전히 리스크 매니저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주임은 새 회사에서 다시 텃세를 맞는다. 남는 것도 나가는 것도 날씨를 바꾸지 못한다. 바꾸는 건 우산뿐이다.
실망한 게 있다면 하나다. 주임이 나간 이유를 작품은 회의실 한 장면으로 접었다. 거절 두 번과 박차고 나가는 발. 그 사이에 있었을 밤들, 그가 집에서 무엇을 셌는지를 나는 보고 싶었다. 애드리브 시트콤이라 그 밤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비었다.
당신이 지금 회의실에 있다면. 거절이 두 번째라면. 문은 거기 있다. 문 너머에도 회의실이 있다. 그걸 알고 나가는 것과 모르고 나가는 것은 다르다. 알고 남는 것과 모르고 남는 것도 다르다.
부장은 알고 남았다. 주임은 알고 나갔는지 아직 모른다. 다음 회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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