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4
논스톱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논스톱
뉴욕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입니다. 연방 항공보안관 빌 마크스는 탑승 전 차 안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 돼 보안용 휴대폰으로 문자를 받습니다. 1억 5천만 달러를 보내지 않으면 20분마다 한 명씩 죽이고 비행기를 폭파하겠다는 내용이죠. 20분 뒤 정말로 사람이 죽고, 돈을 받을 계좌는 빌의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승객 150명이 전원 용의자이고, 그중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수사관 본인인 상황이에요. 4만 피트 상공이라 내릴 수도 없습니다.
자움 콜렛 세라 감독과 리암 니슨의 두 번째 작업입니다. 전작 「언노운」에서 둘은 이미 자기 정체를 증명해야 하는 남자 이야기를 한 번 했죠. 이번엔 무대가 비행기 한 대로 줄었고, 촬영도 대부분 뉴욕 퀸스의 스튜디오에 지은 객실 세트에서 했다더군요. 비행기 안 테러물은 「패신저 57」부터 「플라이트플랜」까지 계보가 꽤 깁니다. 이 영화가 거기에 보탠 소품은 문자 메시지예요. 범인은 끝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문자로만 말하고, 그 문자는 화면 위에 자막처럼 떠오릅니다.
오프닝은 꽤 친절합니다. 빌은 공항 주차장 차 안에서 위스키를 칫솔로 저어 마십니다. 딸이 어릴 적 쥐던 파란 끈을 아직 지니고 다니는 남자예요. 터미널에선 라이터를 빌리러 온 남자와 통화 중인 남자를 스쳐 지나가죠. 나중에 보면 그 둘이 범인입니다. 범인을 탑승 전에 관객 앞에 세워 두는 건 추리물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데, 이 영화는 그걸 지킵니다. 다만 너무 공평하게 지켜서, 보신 분들은 두 번째 볼 때 좀 심심하실 수 있어요.

이런 설정은 대개 두 가지 길로 빠집니다. 하나는 비행기를 금방 벗어나 지상의 상관과 호위 전투기를 번갈아 비추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범인을 일찌감치 공개하고 액션으로 넘어가는 길이죠. 「논스톱」은 둘 다 택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끝까지 객실에 남고, 범인은 마지막까지 숨겨 둡니다. 밀실 추리물의 규칙을 꽤 성실하게 지키는 편이에요. 전투기가 호위라는 이름으로 따라붙긴 하지만 영화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관심사는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죠.
항공보안관이라는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았습니다. 승객 150명을 좌석표로 걸러내는 절차, 기내 보안 카메라, 조종실과의 교신 규칙 같은 것들이죠. 영화는 그중 몇 개를 쓰긴 씁니다. 기장은 계좌 명의를 확인하자마자 빌에게 배지와 총을 내놓으라 하고, 빌은 승객들의 휴대폰을 걷어 남의 문자를 읽어요. 다만 범인을 좁혀 가는 방법은 대체로 직감과 완력입니다. 옆자리 승객이 소개해 준 프로그래머가 사진 파일에 바이러스를 심어 범인의 전화를 울리게 하겠다는 대목에선 추리물의 간판을 잠시 내리죠. 폐소공포증 쪽은 잘 돌아가는데, 수사 쪽은 좀 헐겁습니다.
통하는 건 첫 번째 살인입니다. 20분이 다 되어 갈 때 빌은 화장실에서 동료 보안관 해먼드와 싸우고, 그를 죽입니다. 해먼드의 가방에선 코카인이 나오죠. 그러니까 범인은 첫 희생자를 직접 죽인 게 아니라 빌이 죽이게 만들었어요. 주인공을 범인으로 모는 데 이보다 경제적인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좁은 화장실에서 클로즈업으로만 찍은 격투도 나쁘지 않아요. 그 뒤로 기장과 변호사가 한 명씩 더 죽는데, 둘 다 독침입니다. 살해 수법이 하나로 통일된 건 장르 팬으로선 반가운 일이죠. 화장실 벽의 작은 구멍이 조종석 쪽으로 뚫려 있었다는 뒷설명도 꽤 성실합니다.
문자 메시지를 다루는 방식도 통하는 쪽입니다. 범인의 말은 전부 화면에 글자로 뜨고, 빌의 답장도 글자로 뜨죠. 목소리가 없으니 성별도 나이도 자리도 알 수 없고, 객실 어디서든 보낼 수 있습니다. 용의자 150명을 한 명도 줄이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는 데 이만한 장치가 없어요. 빌이 휴대폰을 노려보는 시간이 총을 드는 시간보다 깁니다. 액션 영화치곤 드문 비율이죠. 그래서 중반까지는 추리물에 가깝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좋은 구간입니다.
걸리는 건 마지막 20분이에요. 범인은 교사 톰 보웬과 프로그래머 잭 화이트, 둘입니다. 보웬은 9·11로 아버지를 잃은 뒤 군에 다녀왔고, 미국 항공 보안이 얼마나 허술한지 증명하려고 이 일을 벌였다고 말해요. 화이트는 돈 때문이고요. 동기를 설명하는 데 쓰는 시간은 몇 문장 분량인데, 그 몇 문장이 영화 전체의 방향을 사회 비판 쪽으로 틀어 버립니다. 20분마다 한 명이라는 규칙도 폭탄이 발견되는 순간 30분짜리 타이머로 바뀌죠. 하여간 규칙이 중간에 바뀌는 영화를 좋아하긴 어렵습니다. 승객들이 빌을 제압하려 들 때 그를 구해 준 사람이 바로 범인이었고 그것도 다 계획이었다는 식의 설명은, 글쎄요, 꽤 편리합니다.
막판엔 밀실의 규칙도 풀립니다. 폭탄을 해체할 수 없게 되자 부기장이 고도를 8천 피트까지 내리고, 그 급강하 속에서 총이 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갑니다. 빌은 그 총을 잡아 보웬을 쏘고, 화이트는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려다 폭발에 휘말립니다. 20분마다 한 명씩이라는 시계가 멈춘 뒤의 영화는 그냥 비행기 액션이에요. 나쁘진 않은데, 앞의 한 시간과는 다른 영화입니다. 빌이 승객들 앞에서 죽은 딸 이야기를 꺼내 설득하는 장면도 그 전환의 일부죠. 문자로만 말하던 영화가 갑자기 말을 많이 합니다.

리암 니슨은 늘 하던 걸 합니다. 다만 이 영화에선 좀 자주 맞아요. 화장실에서 밀리고, 승객들에게 제압당하고, 술이 덜 깬 얼굴로 객실을 돌아다니죠. 그게 「테이큰」 쪽 이미지를 조금은 덜어 냅니다. 줄리앤 무어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데, 하는 일은 빌을 믿어 주는 것과 휴대폰을 고쳐 주는 것 두 가지입니다. 배우의 급에 비하면 좀 아깝죠. 미셸 도커리의 승무원 낸시도 비슷한 처지고, 루피타 뇽오는 승무원 그웬 역으로 몇 장면 지나갑니다. 조연이 이렇게 많은데 조연으로 할 일은 별로 없어요. 보신 분들 사이에선 젠이 사실 공범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는데, 각본이 그쪽으로 간 건 아닙니다. 범인 역의 스쿳 맥네이리는 반대로 끝까지 수상하지 않게 앉아 있어요. 그게 이 배우가 해낸 일입니다.
이름과 대사가 있는 인물은 열셋쯤 됩니다. 보안관 둘, 조종사 둘, 승무원 둘, 승객 일곱이에요. 그중 여성은 승객 젠, 승무원 둘, 어린 소녀 베카까지 넷입니다. 승객 중엔 뉴욕 경찰 라일리, 의사 나시르, 파산 전문 변호사 휠러가 있고, 각자 용의자 역할을 한 번씩 맡았다가 내려놓죠. 범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순서가 곧 영화의 진행입니다. 어린 소녀는 용의자가 아니라 보호 대상이고, 그 자리는 끝까지 바뀌지 않아요. 뉴욕 경찰 라일리는 승객들을 이끌고 빌을 제압하려 드는 역할이고, 그 역할이 끝나면 더 할 일이 없습니다. 주어진 대사가 딱 필요한 만큼이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에요.
착륙은 아이슬란드에서 합니다. 폭탄이 터져 꼬리 쪽이 상했는데도 비행기는 내려앉고, 승객 150명 중 145명이 살아남죠. 빌은 테러범에서 영웅이 됩니다. 비행기 한 대와 휴대폰 한 대로 106분을 끌고 간 것치곤 통하는 편이에요. 그 정도면 됐죠.
(덧) 한국 개봉판은 문자 메시지를 화면에 한글로 바로 띄웠습니다. 자막을 따로 읽지 않아도 되니 꽤 편해요. 이 영화에서 가장 바쁜 배우는 휴대폰 화면이니까, 그걸 알고 한 선택이겠죠.
(덧) 제목은 그냥 「논스톱」입니다. 직항이라는 뜻과 쉬지 않는다는 뜻을 같이 쓰겠다는 거겠죠. 실제로는 아이슬란드에 내리니까 직항은 아닌 셈입니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