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0

아비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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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시계를 가리켰고, 한 사람은 구멍을 막았다

조용한근육맨· 2026. 10. 27.· 3,120자

두 영화 사이에는 꼭 십 년이 있다. 아비정전은 1990년 12월 홍콩에서 개봉했고, 화양연화는 2000년 9월 홍콩에서 개봉했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고, 같은 배우 둘이 나오고, 인물 이름까지 나눠 쓴다. 아비정전 끝에 잠깐 나오는 남자의 이름은 주모운이고, 화양연화의 남자 주인공도 주모운이다. 매표소의 여자는 소려진이고, 화양연화의 여자도 소려진이다. 이야기의 해도 이어진다. 아비정전은 1960년이고 화양연화는 1962년에 시작한다. 그래서 두 영화를 한 세계의 앞뒤로 읽는 사람이 많고, 나도 그렇게 읽는다. 다만 이 글에서 보고 싶은 것은 세계관의 연결이 아니다. 두 영화가 같은 문제를 받았고, 다르게 풀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나가는 한순간을 어떻게 붙드는가.

먼저 적어 둘 것이 있다. 화양연화가 더 완성된 영화라는 평이 많다. 평론가들이 뽑는 역대 영화 목록의 윗자리에 자주 오르는 쪽은 화양연화다. 아비정전은 개봉 당시 홍콩에서 관객의 외면을 받아 제작사가 문을 닫았고, 한국에서는 2주 만에 간판을 내렸다. 그 평가를 나는 상당 부분 받아들인다. 화양연화는 버릴 장면이 없고, 아비정전에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남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 약점이기만 한지는 따져 봐야 한다.

아비정전

1960년 홍콩. 아비는 체육관 매표소에서 일하는 소려진에게 매일 찾아와 시계를 보라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그 순간 당신은 나와 함께 있었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1분 친구라고. 영화는 이 장면 뒤로 시계를 자주 보여 준다. 초침 소리가 들리고, 인물들은 수시로 시간을 묻는다. 소려진은 그 1분에 걸려 넘어진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순간이란 정말 짧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오랜 시간이 될 수도 있네요.」

아비정전의 방법은 이것이다. 순간을 붙들고 싶으면 날짜와 시각을 입 밖에 내어 못 박고, 그 못을 상대에게 박는다. 못을 박은 사람은 자유롭고, 못이 박힌 사람이 그 시간을 짊어진다. 아비는 소려진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를 내보내고, 댄서 루루를 데려오고, 루루에게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다. 소려진은 아비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 야간 순찰 경찰 초자를 만나고, 초자는 공중전화 번호와 시간을 알려 주며 생각나면 전화하라고 한다. 소려진은 걸지 않는다. 초자는 경찰을 그만두고 선원이 된다. 영화 끝에 그 공중전화가 한 번 더 나오는데, 울리지 않는다.

아비정전 스틸컷

아비는 필리핀으로 가고, 거기서 선원이 된 초자를 다시 만나고, 둘은 기차를 탄다. 기차 안에서 아비는 초자에게 발 없는 새 이야기를 꺼내고, 초자는 소려진에게서 이미 들었다며 화를 낸다. 초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비는 총에 맞는다. 죽어 가며 그가 남기는 말 가운데 하나는 그 1분에 관한 것이다. 다시 본다 해도 아마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말. 그러니까 1분을 선언한 사람은 그 1분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선언을 들은 사람의 몫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순간을 다루는 방식의 잔인한 데고, 동시에 정확한 데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비가 죽은 뒤 루루가 필리핀에서 그를 찾고, 소려진은 홍콩의 매표소로 돌아가고, 그다음에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남자가 좁은 방에서 외출 준비를 한다. 손톱을 다듬고, 양복을 입고, 담배와 카드와 돈을 챙기고, 불을 끄고 나간다. 2분 반쯤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2부작으로 기획했고 2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남자는 열어 둔 문으로 남았다.

화양연화

1962년 홍콩.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두 가구가 이사 온다. 신문사 편집기자 주모운과 무역회사 비서 소려진. 둘은 국수를 사러 가는 계단에서 보온통을 들고 마주친다. 어느 날 소려진은 주모운이 자기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맨 것을 알아보고, 주모운은 소려진이 자기 아내와 같은 핸드백을 든 것을 알아본다.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둘은 그렇게 안다. 둘은 호텔 2046호에서 무협소설을 함께 쓰고, 자기들은 그 사람들과 다르다고 되뇌며 선을 지키려 한다. 주모운이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하자 둘은 골목에서 이별을 미리 연습한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말이 거기서 또 나오고, 연습인데 소려진은 운다.

1963년 싱가포르. 소려진이 주모운의 방에 다녀가지만 둘은 만나지 않는다. 주모운은 사라진 실내화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와 아무 말 없는 전화로 그녀가 왔다 갔음을 안다. 1966년 홍콩. 주모운은 옛집을 찾지만 아무도 없다. 그리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그는 돌벽의 구멍에 입을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다 말하고 나서 그는 풀로 구멍을 막는다.

아비정전 포스터

화양연화의 방법은 이것이다. 순간을 붙들고 싶으면 말하되, 아무도 듣지 못하게 말하고, 말한 자리를 막는다. 못을 박는 게 아니라 묻는 것이다. 여기서는 선언을 들은 사람이 없으므로 기억의 짐이 누구에게도 옮겨 가지 않는다. 짐은 말한 사람이 가지고 간다.

두 방법을 나란히 놓으면 화양연화 쪽이 어른의 방법으로 보인다. 아비는 남에게 시간을 떠넘기고 죽었고, 주모운은 자기 시간을 자기가 묻었다. 화양연화가 더 완성됐다는 평은 아마 이 차이를 말하는 것일 테고, 거기까지는 나도 같은 편이다. 그러나 두 영화가 택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태도다. 화양연화는 문을 닫는 영화다. 속삭임을 막고, 두 사람을 다시는 마주치게 하지 않는다. 그 닫힘이 아름답다는 데 이견이 없다. 아비정전은 문을 열어 두는 영화다. 선언한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고, 공중전화가 울리지 않고, 모르는 남자가 불을 끄고 나간다. 이 열림은 반쯤은 사고였다. 2부가 없어졌으니까. 그런데 사고로 열린 문이 십 년 뒤 화양연화가 들어오는 문이 됐다. 아비정전이 남겨 둔 두 이름을 화양연화가 받아 썼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화양연화는 아비정전이 못 한 것을 해낸 영화가 아니다. 아비정전이 하지 않기로 한 것을 한 영화다. 하나는 순간을 상대에게 맡기고 자기는 떠났다. 하나는 순간을 자기가 갖고 떠났다. 어느 쪽이 더 사랑에 가까운지 나는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1분을 못 박는 쪽이 먼저 있었기에 구멍을 막는 쪽이 가능했다는 것, 그 순서만은 분명하다.

십 년. 시계를 가리킨 남자와 구멍을 막은 남자 사이에 놓인 시간이다. 그 십 년이 짧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오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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