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옵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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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가 정하는가
나는 선물을 고를 때 상대의 취향을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안목이 어떻게 보일지를 먼저 생각한다. 포장지, 리본, 손글씨 카드, 카드에 적을 문장, 그 문장을 쓰는 내 글씨체. 고르는 동안 내가 내내 보고 있는 것은 받을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선물을 건네는 내 얼굴이다.
그런 내게 이 영화는 그 얼굴을 크게 확대해서 보여 준다. 「옵세션」은 사랑을 얻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받았다는 증거를 모으는 영화다. 음반 가게 점원 베어는 같은 가게 동료 니키를 오래 좋아해 왔고, 그 마음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는 말하는 쪽 대신 비는 쪽을 고른다. 골동품 가게에서 산 물건에 대고, 니키가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사랑하게 해달라고.
소원은 이루어진다. 니키는 그를 사랑한다. 아주 많이 사랑한다. 식당 한구석에서 그가 전화를 거는 동안, 그녀는 뒤쪽 어둠에서 그를 지켜본다. 밤에는 문틈을 테이프로 막는다. 사랑이 선물처럼 왔다가 설비처럼 설치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소원을 빌기 전에 그가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고백을 연습하는 것이다. 혼자서, 입만 움직여서. 짧고 우스꽝스럽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장면이기도 하다. 연습은 상대를 생각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대사를 다듬는 일이다. 그가 무서워한 것은 거절이 아니라 거절당하는 자기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다는 것은 확인받고 싶다는 뜻이다. 확인받고 싶다는 것은 증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은, 상대가 그 증거를 매일 새로 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가 빈 것은 사랑이 아니다. 출근 도장에 가깝다. 니키가 하루도 빠짐없이 찍어야 하는 도장이고, 찍는 사람에게는 쉬는 날이 없다.
그렇다고 이 청년을 괴물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그는 누구를 해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묻지 않았을 뿐이다. 묻지 않고 받는 것을 우리는 선물이라고 부르고, 묻지 않고 가져오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두 이름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 이 영화가 겨누는 자리다.
국내 포스터에는 한 줄이 적혀 있다. 사랑해 줄게, 죽을 때까지. 광고 문구로 읽으면 달콤한 서약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한이 박힌 계약서의 문장으로 읽힌다. 소원은 한 번뿐이고 취소도 변경도 되지 않는다. 안내를 맡은 고객센터는 있는데 해지 창구는 없다. 사랑의 언어와 약관의 언어가 이렇게 잘 포개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고약한 농담이다.

뒤쪽은 길게 적지 않는 편이 낫겠다. 한 가지만 적어 둔다. 피를 뒤집어쓰는 쪽은 결국 소원을 빈 사람이다. 밝은 타일 벽 앞에 선 그의 얼굴에 묻어 있는 것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영화 내내 자기만 보고 있었고, 그 얼굴이 되고 나서야 남이 보인다.
감독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이 언제부터 사랑이 아니게 되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 시점을 알 것도 같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다음 생일에는 받는 사람이 풀기 편한 포장지를 고르려고 한다. 물어보고 사면 더 낫겠지만, 그건 아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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