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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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한 대의 이력서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은 감독이 아니다. 카메라다. 1983년 어느 저녁 누나가 소리를 지른 뒤로 이 집에는 의사가 둘 있었고 환자가 하나 있었고, 한참 뒤에 카메라가 하나 들어왔다. 나는 그 카메라의 이력서를 써 보려 한다. 사람 대신 물건의 경력을 따라가면 가끔 사람이 더 잘 보인다. 가끔이라고 했다. 늘은 아니다.
1986년, 사진 한 장
포스터에 쓰인 가족사진은 누나가 아프기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아버지의 환갑을 기념해 찍은 것이라고 한다. 감독은 스무 살이었다. 그 사진에서 카메라를 보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게 감독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고 포스터를 다시 들여다봤다. 네 사람이 한 틀 안에 있는데 한 사람만 다른 곳을 본다. 가족사진이란 무엇인가. 전원이 같은 방향을 봐 주기로 합의한 몇 초다. 그 합의에 들지 않은 아들이 나중에 카메라를 들게 된다. 이력서의 첫 줄은 그러니까 피사체였던 시절이다.
1992년, 녹음기
감독은 1992년부터 집 안의 소리를 녹음했다. 영상은 2001년부터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은 없었고 단순한 기록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왜 기록했는가. 인터뷰에서 그는 이대로라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될 것 같았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는 더 솔직한 말을 했다. 부모는 대단한 권위와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에 대항하려면 기록을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고.
여기서 나는 멈췼다. 아들이 부모에게 쓸 수 있는 무기가 녹음기였다는 것이다. 의사 둘을 상대로 의학은 쓸 수 없다. 그쪽이 전문가다. 돈도 쓸 수 없다. 그쪽이 가진 쪽이다. 남는 것은 들은 것을 남겨 두는 일, 즉 증거다. 이 영화를 가족 이야기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힘이 없는 쪽이 힘이 있는 쪽을 상대로 20년에 걸쳐 모은 증거 자료이기도 하다.
2001년, 캠코더
카메라가 집에 들어오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쓸쓸한 대목이다. 감독은 부모의 경계를 낮추려고 가족 행사를 기획했다. 아버지가 어릴 적 살던 지역으로 여행을 가고, 큰 공원에 가서 밥을 먹고, 그 시간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명절 영상처럼 보여야 찍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가끔 의도를 알아채고 촬영을 거부했다. 그 거부가 영상에 남아 있는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거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카메라가 집에서 환영받는 손님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카메라는 스무 해 동안 기종이 몇 번 바뀌었다. 끝에 가서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도 섞였다. 바뀌지 않은 것은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이다. 부모를 보고, 누나를 보고, 집 안을 본다. 음악은 한 음도 깔리지 않는다. 내레이션도 감독이 원고를 읽는 방식이 아니다. 협력자가 감독을 인터뷰한 녹음을 그대로 썼다. 자기가 쓴 글을 자기가 읽으면 숨이 부자연스럽다고 감독은 설명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자기 목소리마저 남에게 묻게 한 것이다. 겸손이라기보다는 철저함일 것이다.
2008년 이후, 남겨 둔 장면
누나는 2008년에야 입원했고, 석 달 치료로 좋아졌다. 그 뒤로도 카메라는 계속 돌았다. 편집은 2021년 5월 누나가 세상을 떠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혼자 편집할 때는 세 시간에서 더 줄지 않았다고 한다. 협력자가 합류해 지금의 101분이 됐다.
줄이는 과정에서 지워질 뻔한 장면이 하나 있다. 불꽃놀이다. 러닝타임을 줄이려고 빼려 했는데 협력자가 남기자고 했고, 감독은 결과적으로 남기길 잘했다고 말한다. 20년의 기록에서 한 가족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몇 분이 편집 회의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나는 이상하게 안도가 된다. 증거 자료에도 증거가 아닌 장면이 한 장은 들어가야 한다.
또 하나. 아버지가 외출할 때 누나가 손을 흔드는 장면이 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는 누나가 배웅하는 쪽이고 나가는 쪽은 자기인데, 누나가 손을 흔들며 화면 밖으로 빠져서 영상으로는 누나가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는 이 영상을 보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나 하는 마음이 되고, 잘됐다는 영상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카메라는 사실을 기록한다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한다. 그렇다. 그런데 같은 사실이 틀 하나 때문에 배웅이 아니라 작별이 된다. 카메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동시에 사실을 조금 비튼다.
마감 닷새 전, 마지막 인터뷰
영화는 원래 누나의 장례로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끝난 느낌이 들지 않아서, 영화제 출품 마감 닷새 전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추가로 찍어 붙였다고 한다. 그제야 전부 갖춰진 느낌이 들었다고 감독은 말한다. 카메라 한 대의 이력서는 그러니까 피사체로 시작해서, 증거 수집으로 길어지고, 마지막에는 질문하는 도구로 끝난다. 20년을 돌던 카메라가 마지막에 한 일은 아흔 넘은 아버지 앞에 앉아 묻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내 해석을 한 번 의심한다. 카메라를 권력에 맞선 무기로 읽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 편에 서는 일이다. 한 평론은 이 영화에서 누나가 끝내 이해되지 않는 대상으로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카메라가 부모를 상대하는 동안 누나는 줄곧 찍히는 사람이었다. 증거 자료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증거 안에서 가장 말이 없다. 이 영화가 그 점을 모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알고 있다는 것과 해결했다는 것은 다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1986년 사진에서 혼자 다른 곳을 보던 아들은 그 뒤로 20년 동안 가족을 봤다.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이 가족사진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영화가 그 당연한 일을 101분짜리로 늘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101분이 끝나도 사진의 네 사람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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