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노보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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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으면 집에 있었다

삐뚜름관람· 2026. 10. 25.· 2,139자

고백부터 한다. 나는 초대를 받으면 일단 거절할 핑계부터 찾는 사람이다.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가서 어색하게 서 있을 내가 먼저 보여서다. 그러고는 그날 밤 집에서 남들이 올린 사진을 넘겨 보며 괜히 갔어야 했다고 중얼거린다. 네 문장 안에 끝내기로 했으니 고백은 여기까지다.

이런 사람이 「노보케인」을 보면 한 인물이 눈에 걸린다. 네이선 케인. 은행 부지점장이고, 태어날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안고 산다. 그래서 그의 하루는 조심으로 짜여 있다. 혀를 씹을까 봐 부드러운 것만 먹고, 집 안의 뾰족한 모서리마다 테니스공을 씌워 두고, 화장실 갈 시간은 알람이 알려 준다. 친구라고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로스코 하나다. 영화가 그를 소개하는 방식이 좀 그랬다. 저건 병을 가진 사람의 생활이라기보다, 겁이 많은 사람의 생활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생활과도.


같은 은행에서 일하는 셰리와 점심을 먹게 된다. 식탁에서 그는 자기 병을 털어놓고, 셰리는 체리파이를 한 입만 먹어 보라고 권한다. 평생 혀가 걱정돼 딱딱한 것을 입에 넣지 않던 사람이 그 한 입을 먹는다. 여기까지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에 앉은 사람이 권하면 한 입은 먹는다. 그 정도 용기는 나한테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셰리가 그날 저녁 전시회에 오라고 한다. 네이선은 집에서 게임이나 하겠다고 한다. 로스코가 미쳤냐고 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네이선보다 로스코가 더 얄미웠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네이선은 결국 나간다. 전시회에는 하필 학교 다닐 때 그를 괴롭히던 동창이 와 있고, 그 동창은 여전히 그를 노보케인이라고 부른다. 치과에서 쓰는 마취제 이름이다. 셰리는 그 동창을 상대로 장난을 쳐서 잔뜩 취하게 만들어 놓고, 두 사람은 자리를 뜬다. 그날 밤 셰리는 네이선에게 자기가 숨기고 살던 오래된 상처 자국을 보여 준다. 네이선은 물러서지 않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갔기 때문에 생긴 밤이다. 집에 있었으면 없었을 밤이다.

노보케인 스틸컷

다음 날 산타 복장을 한 강도 셋이 은행에 들이닥친다. 금고 번호를 내놓으라고 하고, 지점장을 쏘고, 경찰이 오자 셰리를 끌고 간다. 여기서 네이선이 하는 선택이 이 영화의 전부다. 그는 경찰을 기다리지 않는다. 경찰은 오히려 그를 의심한다. 그는 혼자 강도들을 쫓기 시작하고, 쫓다가 막히자 얼굴도 모르는 로스코에게 와 달라고 한다. 로스코는 처음엔 거절한다. 네이선이 말한다. 친구가 너뿐이라고. 그 말을 듣고 로스코가 온다. 함정이 잔뜩 깔린 집에 네이선이 붙잡혀 있을 때, 로스코는 정말로 그 집 앞에 나타난다.

나는 이 영화의 어떤 액션보다 이 부탁이 더 어려워 보였다. 끓는 기름에 손을 넣는 것은 그가 아프지 않으니까 한다 쳐도, 친구가 너뿐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통증이 없다는 설정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건 그냥 창피한 일이고, 그는 그 창피를 감수했다. 나였으면 집에 있었다. 부탁도 안 했을 것이다. 부탁을 못 하는 사람은 거절도 안 당하지만, 아무도 안 온다.


다시 나로 돌아온다. 내가 초대를 거절하는 진짜 이유는 어색함이 아니라, 나갔다가 다치는 것이 싫어서다. 창피한 것도 다치는 것이다. 그런데 네이선은 다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 끝에서 그는 온몸에 깁스를 한 채 병원에서 깨어나고, 가택연금 여섯 달과 보호관찰 다섯 해를 받는다. 다친 것을 못 느낄 뿐이지 다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갔다는 점이 나와 다르다. 나는 다칠까 봐 안 나가고, 그는 다칠 걸 알면서 나갔다. 이 차이가 영화 한 편이다.

노보케인 포스터

일 년 뒤 그는 교도소 면회실에서 셰리를 만나 체리파이를 나눠 먹는다. 셰리가 강도 일당의 공범이었고, 처음엔 금고 번호 때문에 접근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 알고도 간다. 나는 이 장면에서 졌다. 초대를 거절하는 데 선수인 사람이, 거절당할 이유가 가장 많은 사람을 먼저 찾아가는 장면을 보고 할 말이 없어졌다. 부럽고, 솔직히 좀 얄밉다. 저 사람은 아프지도 않으면서 용기까지 있다.

네이선, 다음에는 알람 없이도 좀 나가라. 그리고 나한테도 그 말 한 번만 해 달라. 아무튼 「노보케인」을 봤다.

추신. 전시회에 간 것이 셰리 때문이었는지 로스코의 한마디 때문이었는지 영화는 말해 주지 않는다. 나는 후자였으면 좋겠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해 주는 친구가 가끔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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